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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디자인과 경영

과학경영의 시대가 가고, 인문경영의 시대가 온다

김경묵,조성환 | 247호 (2018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인문경영은 과학경영과 달리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다. 한국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인문경영의 전통을 상실했다. 조선시대 ‘활인원’이 ‘병원’으로 바뀌고, 서양의 ‘뮤지엄’이 ‘박물관’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이 거세됐다. 역사적으로 세종은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문학적 본질을 추구함으로써 ‘한글’이란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낸 한국형 인문경영을 펼친 리더의 모범이다. 인문디자인경영은 다음의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한다. 당신의 기업은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가? 그 세계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과학경영과 인문경영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편집장을 지낸 조안 마그레타는 경영이라는 학문의 성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경영은 경제학이나 공학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경영은 사람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1

여기서 경제학이나 공학은 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람은 인문학의 영역에 속한다. 경영은 인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이나 공학에 기반한 경영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즉, 적은 비용으로 많은 것을 생산하는 것을 가장 좋은 경영이라고 여긴다. 이른바 ‘테일러식’ 과학경영(Scientific Management)으로 가치의 기준은 생산성과 비용이다.2

과학경영에서는 모든 것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존재한다. 직원이나 고객도 생산과 판매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적 존재로 인식된다. 인재나 타깃 같은 개념들이 그러한 인식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직원이나 고객을 사람 그 자체로 보기보다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위한 수단(tool)이나 자원(resource)으로 보는 것이다. 이른바 MBA식 경영이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 과학경영을 말한다.

반면에 인문경영은 사람에 주목한다. 가치의 기준이 사람들의 삶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경영에서는 인재와 타깃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다.

이러한 경영관을 반영하는 고전 한자어가 바로 ‘경제(經濟)’다. 경제는 ‘세상을(世) 경영해(經) 사람을(民) 살린다(濟)’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다. 경영의 본질이 효율이나 수익보다는 구제나 살림에 있다는 뜻이다.

경세제민과 활인원

지금은 구제라고 하면 복지사업이나 구호단체를 떠올리기 쉬운데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는 정치(국가경영)의 본질이었다. 중국과 조선이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유교의 이상은 모든 사람을 두루(兼) 살리는 데(濟) 있었다. 이것을 ‘겸제(兼濟)’라고 하는데 겸제는 경세제민의 사상적 토대였다.

이러한 겸제 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생활용어로 개념화한 예 중 하나가 활인원이다. 활인원(活人院)이란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당시 국립병원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 개념에는 나라 살림의 본질이 사람 살림에 있다는 유교적 경영 이념이 담겨 있다. 병은 물론이고 사람을 총체적으로 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병원이라는 개념에는 ‘병을 다루는 곳’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의미 이외에 다른 뜻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 전체보다는 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어도 개념적으로만 보면 병원은 과학실험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활인원이 인문경영을 대변하는 말이라면 병원은 과학경영을 상징하는 용어다. 과학경영에서는 가치가 배제된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가치지향적이고 전일적인(holistic) 인술(仁術)보다는 가치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기술(技術)이 강조된다. 이것이 ‘근대’라는 세계의 본질적 속성이다. 우리가 ‘근대화됐다’는 것은 인문의 눈으로 보던 세계를 과학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눈이 인문렌즈에서 과학렌즈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에는 전일성이나 창조성보다는 전문성과 객관성이 강조된다.

뮤지엄과 박물관3

활인원이 병원으로 바뀐 시기는 동아시아가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다.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는 서양어의 번역이었다. 번역을 통해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없던 새로운 한자어가 생겨났는데 병원이나 경영이 그런 예다.

박물관도 예외는 아닌데 박물관의 원어에 해당하는 ‘뮤지엄’은 학문과 예술을 담당하는 ‘뮤즈’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에는 예술적 영감이나 인문적 상상력이 담겨 있다. 작품에 깃들어 있는 뮤즈와 대화하는 공간이 뮤지엄인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뮤지엄에 가보면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예술가들은 거기에서 받은 영감을 자기 스튜디오로 가져와서 창작의 원천으로 삼기도 한다.

반면에 박물관(博物館)은 단순히 ‘특정한 주제하에 물건을(物) 많이(博) 모아놓은 곳(館)’이라는 의미만 담고 있을 뿐이다.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보다는 학습이나 구경을 하러 가는 곳으로 개념화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박물관에 가보면 입구에서부터 연대기표로 대표되는 상세한 설명과 해설이 즐비해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해 감상자 스스로가 스토리 라인을 잡게 하는 서양의 뮤지엄과는 대조적이다. 학습이나 관광 위주로 개념화된 박물관은 감상자의 생각을 전시자의 의도대로 유도함으로써 오히려 감상자의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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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와 물음의 상실

박물관이라는 번역어 역시 병원과 마찬가지로 뉴턴 물리학적인 세계관의 관점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뉴턴으로 상징되는 근대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존재를 단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대상, 즉 ‘물체(body)’로 인식한다.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감상자들에게 능동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가져다주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단지 공간 속에 놓인 수동적 물체로만 파악된다.

여기에다 유교적인 가르침(敎)의 전통은 감상자 또한 수동적인 학습자로 설정하고 있다. 박물관이 대붕(大鵬)의 상상력이나 인문적 통찰을 자극하는 곳이 아니라 전통이나 서양이라는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장소로 이해되고 있다. 수동적 물체와 수동적 학습자가 만나는 곳에서는 ‘왜?’라는 철학적 물음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무엇’이라는 과학적 질문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란 전통적 유교와 새로운 과학이 만나면서 인문적 물음을 상실한 시대로 규정될 수 있다. 성인(聖)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바뀌었을 뿐 ‘학습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거기에 가르침(敎)이 유학에서 과학으로 대체됨에 따라 인문학의 위기까지 초래됐다. ‘잘살아보세!’라는 거대한 슬로건하에 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물음은 묻히고 말았다. 근대화란 기본적으로 수치화된 성장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과학경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은 시험을 위한 공부용 지식이나 권위에 맞서기 위한 이념적 무기에 만족해야 했다. 인문학이 시대를 내다보고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과학경영에서 인문경영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회적 신호이다. ‘잘산다’의 기준이 경제적 수치에서 인문적 가치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경영이 거기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과학경영 시대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무엇이 진짜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인문학적인 물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경영을 다시 물은 세종

우리 역사상 사람들이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물음이 가장 진지했던 시대, 사람들의 삶의 질의 향상을 국가경영(나라 살림)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리더는 단연 세종이다.4 세종은 한국형 인문경영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은 당시 중국 황제의 갑질 행태에서 경영자가 아닌 지배자의 얼굴을 봤다. 제민(濟民)이 아닌 학민(虐民)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래서 국가경영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다시 묻기 시작했다. 종래의 중국식 경영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한국적 경영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후가 아닌 제왕의 길을 가기로 했다.5 제왕은 남의 세계를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자다(물론 여기에서의 세계는 ‘인문세계’ 또는 ‘문화세계’를 말한다).

공자는 “정치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개념을 바로잡겠다(正名)”고 대답했다. 순자 역시 후대의 제왕은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념 규정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後王制名). 그렇다면 세종은 조선 역사에서 ‘국가경영’이라는 개념을 재규정한 후왕이라고 할 수 있다. 제후경영에서 제왕경영으로 경영의 의미를 다시 물은 것이다.

이처럼 세종이 경영의 의미를 다시 물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다른 자기만의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6 남과 다른 자기의 발견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계기가 됐다. 세종은 한국인들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문세계를 디자인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개념화할 수 있는 도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는 경영자가 모든 것을 개념화해 아랫사람들을 교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즉, 위에서 정한 세계관을 아래로 전파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글은 일반인들 스스로가 자기 세계를 개념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7 일반인들도 자기 세계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한자를 모르는 평민들도 자신의 생각을 개념화할 수 있게 됐다. 자기에게 맞는 문자를 습득함으로써 자기 삶을 디자인하고 꾸려갈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경영은 ‘디자인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자기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근원적인 도구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세종의 디자인경영과 유학자의 사대경영

반면 당시 최만리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유학자는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왜냐하면 유학이란 기본적으로 ‘한문으로 쓰인 중국고전만이 올바른 인문학’이라는 믿음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유학에서는 주체나 창조 대신 학습과 계승이 강조된다. 유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가 강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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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들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보다는 선진 문화를 학습하는 데 익숙한 자들이다. 장자식으로 말하면 선진문화에 기대어(待) 있는 이들이다. 발(所以跡)이 되기보다는 발자국(跡)을 따라가는 자들이다.8 그래서 그들은 창조경영보다는 관리경영을 선호한다. 당시 유학자들이 한글을 반대했던 것도 중화질서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이른바 실학자에게도 나타나는데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할 것을 주장한 박제가는 중국어 공용론자로도 유명하다. 한글 대신 한문을 사용하면 나라의 문화 수준이 높아진다고 여겼다. 지금으로 말하면 한글을 폐지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9

한글이 오늘날처럼 한글이라고 당당하게 불린 것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한국인들이 나라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 한국 역사에서의 창조와 사대의 문제가 존재한다. 세종은 의존적인 사대(事大)의 문화를 독립적인 창조의 문화로 전환시키고자 한 디자인경영자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조선의 유학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세종을 단지 어진 유학 군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유교적인 사대경영에 맞서 싸운 창조적인 디자인경영자였다. 그가 오늘날 한국형 창조경영의 원조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을 다시 묻는 인문디자인경영

패션으로 20세기의 여성 문화를 주도했던 코코 샤넬은 “내가 바로 패션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종식으로 말하면 패션이라는 ‘업’의 개념을 다시 물은 것이고, 그 물음의 출발은 ‘나’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샤넬은 자신이 재규정한 패션 개념을 담은 새로운 상품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패션 세계를 구축했다.

이것이 바로 인문디자인경영이다. 과학경영이나 효율경영이 남이 만들어 놓은 개념을 상품화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라면 인문디자인경영은 내가 만든 개념을 상품화해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세종의 한글이나 샤넬의 패션처럼 말이다.

기업의 인문디자인경영은 기업의 박물관이 아닌 뮤지엄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 박물관에는 기업의 제품이 보란 듯이 진열돼 있지만 기업 뮤지엄에는 기업의 세계가 상품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그 세계가 보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상품을 통해 기업이 추구하는 세계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나라가 추구하는 독자적인 세계가 모든 제도와 정책 속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과연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이야말로 한국을 인문디자인경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경묵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원장 [email protected]
조성환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편집팀장 [email protected]

김경묵은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부회장 겸 원장, 인문학공장 대표다. 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동 회사 디자인철학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조성환은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상임이사, 인문학공장 편집팀장이다. 와세다대와 서강대에서 수학했으며 철학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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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묵

    김경묵[email protected]

    -(현)성균관대 초빙교수,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부회장 겸 원장, 인문학공장 대표, 디자인철학 자문위원
    -(전)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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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환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상임이사, 인문학공장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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