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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혼돈(混沌) 속에 답이 있다

박재희 | 29호 (2009년 3월 Issue 2)
흔히 우리가 사는 시대를 혼돈의 시대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무질서, 불확실성 등으로 표현되는 혼돈의 개념은 다양하다. 성경에는 창조주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무질서의 혼돈세계를 7일 동안 질서의 세계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나온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질서가 아닌 혼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중국인들이 아침마다 자주 먹는 음식에는 우리나라의 만둣국과 비슷한 혼돈탕이 있는데 이것저것 섞여 실체를 모른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
 
혼돈의 개념은 무엇인가. 정확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거나 마구 섞여 있는 불확실한 실체에 대한 개념이다. ‘장자(莊子)’의 응제왕(應帝王) 편에도 혼돈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해의 왕 숙(), 북해의 왕 홀(忽), 중앙의 왕 혼돈(混沌)이 살고 있었다. 숙과 홀은 자주 중앙 혼돈의 땅에 가서 서로 만났다. 혼돈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려고 의논을 했다.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고 한다. 그런데 혼돈은 구멍이 없으니 우리가 그 구멍을 뚫어주어 보답하자.” 그들은 날마다 혼돈에게 구멍 한 개를 뚫어 주었다. 7일째 되는 날 7개의 구멍이 뚫린 혼돈은 죽어버렸다.’
 
‘장자’에 나오는 혼돈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구멍도 질서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두 신(神)은 인간처럼 7개의 구멍을 뚫어 혼돈에게 선물하려다가 결국 혼돈을 죽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인위와 질서보다 어쩌면 무질서와 모호성에서 더 큰 생명력을 찾을 수 있다는 장자의 역설의 철학을 보여 준다. 잘 정리되고 짜인 인생의 길보다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서 더 큰 자유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건축가 아시하라 요시노부(芦原義信)가 쓴 책 ‘도쿄의 미학’의 부제는 ‘혼돈과 질서’다. 저자는 무질서 속에 부드러운 질서가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프랙털 기하학을 통해 도쿄의 무질서한 건축물에 존재하는 내적 질서를 찾아보고자 했다. 저자는 질서 정연한 뉴타운 개발만이 정답이 아니라 도시 건축 역시 혼돈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미국인들이 선택한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혼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모호함, 하와이·인도네시아·미국을 넘나드는 모호함, 명문대 출신의 유명인과 빈민운동을 하는 변호사 간의 혼돈스러움 등을 지녔다. 미국인들은 이를 미국의 정신으로 여기며 혼돈의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나눔과 구별, 차별이 아닌 소통과 포용, 상생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혼돈은 질서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질서가 언제나 아름답고 안정적인가에 대해 회의해 보고, 혼돈은 늘 추하고 불안하고 제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짜인 틀에 맞춰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이들과 비슷한 질서 정연한 인생을 사는 것이 과연 가장 아름다운 삶인지, 안정적인 경영 환경 속에서 아무런 문제나 흔들림 없이 기업을 경영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회의해 봐야 한다.
 
질서와 합리성만이 해답은 아니다. 어쩌면 질서보다 무질서 속에서 더욱 예쁜 꽃이 필 수 있고, 순종보다 잡종이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혼돈 속에서 더욱 다양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많은 기업이 부도와 파산이라는 혼돈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현 상황의 무질서와 모호함이 오히려 조직의 체력을 보강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 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21세기 경제전쟁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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