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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함정

박재희 | 33호 (2009년 5월 Issue 2)
중국 저장(浙江)성 시골 나무꾼의 딸이었던 서시(西施)는 ‘미인계’의 대명사로 불린다. 월(越) 왕 구천(句踐)은 서시를 발탁, 훈련해 오(吳) 왕 부차(夫差)를 무너뜨리는 미인계에 이용했다. 이후 서시는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경국지색(傾國之色), 즉 미인을 경계하라는 교훈으로 자주 회자되는 오명을 얻었다.
 
서시와 관련된 고사로 ‘동시효빈(東施效顰)’이 있다. 남의 것을 따라 하다가 결국 자신의 것마저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우화는 이렇다. 어느 마을에 ‘시(施)’씨 성을 가진 미모의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집이 마을 서쪽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서시(西施)’라고 불렸다. 그 마을 동쪽 언덕에는 역시 시씨 성을 가진 추녀가 살았다. 이 여인은 동쪽에 사는 시씨라고 해서 ‘동시(東施)’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시와 동시,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둘은 미녀와 추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마을에서 미인으로 인정받던 서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추녀인 동시는 예쁜 여인들이 입는 옷을 사 입고, 그들의 행동과 자태를 흉내 내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했다. 서시가 입은 옷을 따라 입고, 서시가 어떻게 꾸미든 그 머리 모양을 흉내 냈다. 동시는 오로지 서시처럼 되기 위해 살았다. 늘 서시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했다.
 
어느 날 선천적으로 가슴 통증이 있던 서시가 길을 가다 갑자기 아픔을 느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를 본 동시도 가슴을 쥐어뜯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서시가 남들에게 미인으로 인정받는 행동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본받을 ‘효(效)’자에 찡그릴 ‘빈(顰)’자를 쓰는 ‘효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따라 하는 맹목적인 행동을 나무랄 때 쓰는 말이다. 그렇잖아도 못생긴 동시가 얼굴까지 찡그리며 다니자, 동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을 걸어 잠그고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렸다는 얘기다.
 
얼굴 찡그린 것도 본받다니…
동시효빈은 ‘동시가 서시의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남의 모습만 흠모하고 따라 하려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까지 잃어버린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 우화를 쓴 장자의 의도는 물론 따로 있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지나간 시대의 가치관을 본받으며 전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비유로 이 이야기를 썼다. 지나간 과거는 서시고, 그 과거에 집착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동시다. 아울러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이유는 없다. 학은 긴 다리가 본성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는 동시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무조건 따라 한다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조직의 혁신이든 개혁이든, 자신의 환경에 맞는 고민과 생각 없이 시행했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맹자(孟子)는 연(燕)나라에서 조(趙)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실패한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동시효빈의 우화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 조나라의 걸음걸이가 유행해 많은 사람들이 조나라에 가서 걸음걸이를 배워와 뽐내고는 했다. 연나라의 어느 부자도 아들을 조나라로 유학 보내 그 걸음걸이를 배워오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어설프게 조나라 걸음걸이를 흉내 내던 젊은이는 자신의 원래 걸음걸이까지 잊어버리고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남의 것을 본받고 따라 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의 동력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신의 가치를 버려둔 채 외형적인 모방만 일삼는 것이다. 내가 지닌 가치의 재발견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갈 때 흔들리지 않는 그 조직만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수만큼 다양한 모습과 가치가 존재한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하면 논리에 맞지 않는다. 긴 다리를 지닌 학이든, 짧은 다리를 가진 오리든 모두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남들의 눈치와 분위기에 발목이 잡혀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장자의 일갈(一喝)이다.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물고기처럼 떼를 지어 떠도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문화를 가진 사람이나 집단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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