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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ism도 문화마다 다르다

조영호 | 1호 (2008년 1월)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원장 [email protected]

일본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시간에 쫓겨 빨리 좀 가자고 했는데 친절하게 “하이!”해 놓고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보행자도 없는데 빨간불도 좀 무시하고, 제한속도도 좀 어겼으면 했지만 고지식하게 룰을 지키는 것이었다. 답답해서 넌지시 “좀 빨리 갈 수 없느냐”고 운을 떼 보았다. 하지만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택시 기사는 “우리는 프로라서 규정대로, 모범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면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다. 속도위반은 다반사고, 신호위반, 유턴위반도 마다 않는다. “아저씨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하고 한마디 하면 그들은 “나는 운전의 프로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는 자랑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일본과 한국 택시기사 모두 ‘프로’를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개념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프로’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관념은 또 다르다. 파이프로 연결된 화학공장을 건설하면 마지막 단계에서 시운전을 해야 하는데, 서양 프로에게 이 과정을 맡기면 정말 답답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매뉴얼대로 일일이 점검하고 온갖 사항을 다 체크해보기 때문이다. 물론 밤샘해서 작업 기간을 단축시켜 달라고 부탁해도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한국 프로에게 맡기면 경우에 따라서는 서양 프로의 공기를 50%이상 단축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응축된 ‘감’을 동원하여 필요한 테스트를 단기에 마친다.
 
영어로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가 여럿 있다. ‘job’, ‘occupation’, ‘vocation’, ‘calling’, ‘career’, ‘business’ 등이다. 프로페션(profession)도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프로페션은 다른 단어와는 달리 고급기능이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을 말한다.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 말이다. 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이제는 프로페션의 종류도 무척 많아졌다. 전문직 종사자를 영어로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라고 말한다. 프로페셔널은 전문직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아마추어(amateur)는 전문직업에 관여는 하지만, 취미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은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소양이나 방법론 나아가서는 철학을 뜻한다.

서양 사람의 프로페셔널리즘은 아무래도 개인주의나 청교도 정신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인들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은 집단주의나 유교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조직과 직업의 중요성을 비교할 때 둘을 비슷하게 보거나 오히려 직업을 조직보다 우위에 두기도 한다. 그래서 조직 속에 들어있는 직업인이라 하더라도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높고,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강하며, 직업인간의 네트워크도 센 편이다. 그러나 동양인에게는 자신의 직업이나 직책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를 우선시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성취보다는 직장인으로서의 직위와 보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런 문화가 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직업보다 직장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약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프로페셔널리즘도 여전히 조직을 중시하는 동양적 색채를 갖고 있지만 우리보다는 서양인에 접근해 있는 것 같다. 사무라이시대부터 길들여진 ‘윗사람을 무서워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차리는 슬기’(김용운, 한일 민족의 원형, 1987)로 일본의 직업정신을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서양인 시각으로 볼 때 한국인에게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없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한국인의 프로페셔널리즘은 폭이 넓고, 탄력적이다. 직업윤리도 중요하지만, 조직문화나 조직의 요구를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직업인의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적절히 신호위반을 하며 총알처럼 달려가는 택시기사와 매뉴얼보다 감에 바탕을 전문시운전자 없이 오늘의 한국이 있었겠는가. 특히 한국인의 속도(speed)는 상시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디지털 지식경제 시대에 상당한 경쟁 우위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이제는 서구의 합리성을 받아들여 기존의 강점을 재정립하고, 기본을 단단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식과 창의성이 핵심 경쟁력이 된 시대에 무조건 빨리,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성공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면성만을 강조하는 기존 경영 방식으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하는’ 21세기의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과 직장인들이 합리성과 스피드를 겸비해 글로벌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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