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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나를 이용하는 사람? 단호하고 명쾌하게...

최명기 | 58호 (2010년 6월 Issue 1)

세상을 살다보면 비단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게 피해를 줄 때가 있다. 흔히 동양권에서는 어지간한 피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에게 인간성이 좋다고 한다. 꾹 참아 넘기는 것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매번 양보를 하는 것이 꼭 바람직할까? 예를 들어 한 납품업자가 평소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챙겼던 거래처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양보를 많이 하는 만큼 해당 거래처에서 본인을 챙겨줄 것으로 믿지만, 아무리 관계가 좋아도 가격이 매력적인 쪽으로 구매를 하게 마련이다. 비즈니스에서 거래처의 사업이 기울어졌을 때 과거에 상대방이 베푼 은덕을 기억해 끝까지 돌봐주는 이는 많지 않다.
 
반면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을 신조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문서로 된 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상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깬다. 계약서를 작성했어도 안 지키기 일쑤다. 소송을 건다고 협박해야 반응이 있다. 설혹 소송에서 질 것이 뻔하더라도 시간을 끌어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면 소송을 건다. 이렇게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을 보면 성공할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잇속만 챙기는 태도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경계한다. 만약에 같은 조건이면 다른 이와 거래를 하려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너무 양보만 해서도, 상대방을 이용하려고만 해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다.
 
죄수의 딜레마
1950년 미국 RAND협회의 메릴 플러드와 멜빈 드레셔가 개발해 프린스턴 대학의 앨버트 터커가 발전시킨 ‘죄수의 딜레마’ 이론을 필자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고쳐보았다. 예를 들어 보자. 두 사람이 공모를 해서 강도와 살인을 저질렀다. 강도에 대해서는 증거가 확실하지만 살인은 불확실하다. 두 명 모두 강도짓은 했지만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강도짓에 대해서만 처벌받고, 살인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 한 형사가 죄인 중 한 명에게 다른 한 명이 살인했다는 것을 자백하면 살인은 무죄, 강도에 대해서도 형을 줄여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형사는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공범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만약 한 쪽은 배신을 하고, 다른 한 쪽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배신을 당한 사람은 살인에 대해서 사형 혹은 종신형을 받게 되는 반면 배신한 사람은 강도에 대해서도 감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양쪽 다 배신을 한다면? 둘 다 살인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확보된다. 두 명 모두 종신형을 선도 받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꼭 무리한 부탁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부탁을 들어줘야 할지, 안 들어줘야 할지 고민된다. 자기 잇속만 차리고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을 하는 죄수에 해당된다. 매번 대가도 따르지 않는데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는 이는 배신을 당하는 죄수에 비유할 수 있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는 상호협력에 해당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이러한 선택이 한 번에 그치지만 인생에서는 반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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