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같은 문을 사용한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걸어 들어온 행복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불행이라는 손님으로 변해 있기도 하고, 지금 나에게 다가온 견딜 수 없도록 힘든 불행이 결국 행복이란 손님으로 변하기도 한다면 행복과 불행은 같은 문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한비자(韓非子)>에는 불행과 행복이 같은 문을 사용한다는 ‘화복동문(禍福同門)’의 글이 있다. 행복과 불행은 완전히 정반대인 것 같지만 같은 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행복이 지나고 나면 불행으로 번지고, 불행이 끝나면 행복으로 변하는 것이 인생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새옹지마(塞翁之馬)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니 하는 말은 결국 세상의 어떤 일이든 절대적인 행복과 불행으로 가를 수 없으며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손해가 되기도 하고, 그때는 손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이익이 돼 돌아오는 경우는 인생사에서 너무나 자주 마주치는 일이다. <한비자>는 이익과 손해 역시 이웃지간이라고 한다(利害爲隣). 너무나 가까운 이웃이기에 멀리서 바라보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답은 간단하다. 지금 다가온 상황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담담하게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 화복(禍福)과 이해(利害)를 장악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렇게 다가온 운명을 완전히 장악한 사람을 <중용(中庸)>에서는 ‘자득(自得)’의 인간이라고 한다. 부귀(富貴)와 빈천(貧賤), 이적(夷狄)과 환난(患難), 인간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사람이 자득형 인간이다.
요즘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는 기쁨도 잠시, 오히려 인생의 불행이 돼 마음을 졸이며 평생 살아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는 경우를 본다. 당선과 낙선, 같은 문으로 들어오기에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는 당장 분간할 수는 없다. 행복과 불행, 이익과 손해, 승리와 패배는 확실히 동기(同期), 동창(同窓), 동문(同門)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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