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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갈수록 삶은 지루해진다?

한근태 | 211호 (2016년 10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일본은 고독이 일상이 된 고독순응사회이다. 한국은 아직 아니다.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하지만 고독에 익숙지 않은 자아가 위기를 맞는 순간이 있다. 명함에서 자신의 직함이 사라질 때다. 직장에 다니는 한국 남자의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과 관계가 있기에 이런 인간관계가 단절되면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이는 삶의 맥락이 바뀌어 자신의 존재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결과다.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가장 흔한 인사말 중 하나는바쁘시죠?”. 그 말 안에는 유능함, 사회에서의 인정, 나름 괜찮은 사람이란 자부심 등이 숨어 있다. 그래서 다들 바쁘다. 아니, 바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쓰거나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 자신을 바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근데 과연 바쁜 것이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냥 바쁜 건 의미가 없다. 그 바쁜 것이 영양가가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최악은 그저 바쁘기만 한 것이다. 자신이 왜 바쁜지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다. 바쁘면 정신이 없다.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자기반성을 할 수 없다. 열심히 해서 정상에 오른 후이 산이 아닌가 보네라는 한탄을 할 수 있다.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소개한다.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저자는 대학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에서 몇 년째 혼자 살고 있다. 그림 공부를 위해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데 그 과정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배우고 있다. 바로 외로움의 중요성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그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자꾸 사람을 만나고 일을 벌인다. 근데 외로움은 버릴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찾아야 할 대상이다. 인간은 외로워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고 자기 성찰이 가능하다.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은데 이게 외로움의 역설이다. 사람들과 섞여 지내니까 생각할 시간이 없고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세계여행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지 않으니 떠밀려 살게 되고 그럼 우울해지는 것이다. 우울과 짜증은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닐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일본은 고독이 일상이 된 사회이다. 고독순응사회다. 혼자 밥을 먹어도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 아니다.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된다.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개인이란 서구의 존재이론이 동양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세기 무렵이다. 동양은 당황했다. ‘Individual’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일상어로 자리잡은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이다. 인간에게는 여러 자아가 있다.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공간이 필요하다. 그 중 어느 쪽이 진짜 삶이냐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무대 위에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다.수용소 생활의 가장 큰 고통은 배후공간의 부재이다. 권력이 높아질수록 공간은 넓어진다. 사무실 공간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높은 사람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돼 있다. 아무나 곁에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돈과 권력은 공간으로 확인된다.

 

고령화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이다. 불안은 원래 젊은이들의 정서이다. 근데 요즘은 노인의 정서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불안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 원래 노인의 지혜는 숲같이 전체를 보는 데 있다. 시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질수록 전체 맥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자아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젊은 노인이 많아지면서 이런 혜안이 사라지는 것이다. 불안하면 젊은이나, 늙은이나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본다.

 

미국의 사회심리작자 토리 히긴스는 인간의 행동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좋은 것에 가까이 가려는 접근동기와 대상을 피하려는 회피동기가 그것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가가려는 접근동기는 전체지각()을 활발하게 한다. 반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도망치려는 회피동기는 부분을 뜯어보는 부분지각(나무)을 촉진시킨다. 불안하면 부분지각이 강해지고 행복하면 전체지각이 강해지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접근동기이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것은 회피동기이다. 상황에 따라 둘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회피동기(그렇게 하면 손해를 본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 결과가 나중에 나오는 것은 접근동기(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 은퇴설계를 설득할 때는 접근동기로 해야 한다. 은퇴설계를 하지 않으면 비참한 노년이 된다는 말은 호소력이 적다. 접근동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회피동기는 일을 치밀하게 하게 한다.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려면 긍정적 정서를 동반하는 접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놀듯이 일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 반대로 치밀함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은 회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터진다 같이 위협을 주는 방식이다.

 

자아는 시간적 연속성을 갖고 타인과 구별돼 확인돼야 하는 존재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E, H. 에릭슨의 발달이론에 따르면 자아는 계속해서 발달한다. 아동기에 발달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계단식으로 발달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런 자아가 위기를 맞는 순간이 있다. 명함에서 자신의 직함이 사라질 때가 그때이다. 직장을 다니는 한국 남자의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은 일과 관계가 있다. 일과 분리된 자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사람들, 업무상 관계 있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고, 골프를 친다. 그러나 은퇴하는 순간 그런 인간관계는 끝나면서 위기가 닥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가 헷갈리는 것이다.

 

이럴 때는 문제로부터 떨어져 이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삶의 맥락을 바꿀 시간이 필요하다.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혼자 어딘가를 걷는 것이 도움이 되고 올레길은 그런 면에서 효험이 있는 듯하다. 심리학자인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이를 그래엄 윌러스의 부화개념으로 설명한다. 창조적 사고에 관한 선구적 연구자인 월러스는 창조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문제로부터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어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며칠 올레길을 걷는 것만으로 생각이 바뀐다. 삶의 맥락이 바뀌면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 그렇게 속 썩이던 아이가 군대에 가면 전혀 다른 인간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일까? 둘 다 진짜다. 존재란 항상 자신이 속한 맥락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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