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국왕 정조에 따르면 옛날 임금들은 언제나 ‘세종실록’에 있는 글귀를 외우고 그 규례를 따랐다. 말하는 법과 일처리 방식에서 뛰어났던 세종대왕을 배우기 위해 먼저 그의 어록을 외웠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뛰어난 리더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한국인의 마음을 흥기(興起)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다고 한다. 역사 속 인재들의 열정에 불씨를 지피고 군주의 길을 밝힌 탁월한 어록을 통해 ‘한국형 리더십’의 원형을 발굴하고 참된 리더와 리더십을 발견해 보고자 한다.
“한 사람의 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군주가 스스로의 총명만을 믿는다면 여러 사람의 총명을 수렴할 수 없고, 그 아래 사람들이 속마음을 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주 자신의) 밝음이 도리어 밝지 못함이 되는 것입니다. (군주 자신의) 밝음을 사용하면 비록 작은 곳은 밝겠지만 큰 곳은 어둡게 됩니다. 따라서 모름지기 밝으면서도 감춤을 사용한 연후에야 크게 밝음이 되는 것입니다.”
[一人之聰明有限. 人君苟自用聰明則無以收衆人之聰明而群下亦無以盡其情 所以爲明者 反所以不明也. 用明則小處明而大處暗 必須明而用晦 然後乃爲大明](영조실록 07/10/05)
흔히 최고 지도자가 너무 똑똑하면 일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앞의 인용문은 영조 초년의 경연에서 시독관(侍讀官) 윤동형이 주역(周易) 명이괘(明夷卦) 부분의 ‘군주의 총명’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명이괘는 <그림>처럼 곤(坤)이 위에 있고 이(離)가 아래에 있는 괘(卦)다. 밝음이 땅 속(地中)으로 들어감을 나타낸다.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면 밝음이 상(傷)하여 혼암(昏暗)하기 때문에 명이(明夷)라 한 것이다.
이 말은 “군자가 명이의 때를 당하여 이로움이 곧 어려움이라는 것을 알아 그 곧고 바름(貞正)을 잃지 않아야 한다(君子當明夷之時利在知艱難而不失其貞正也)”는 것을 뜻한다. 즉 ‘겉으로 이롭게 보이는 것이 곧 어려움을 예고한다’는 의미로, 똑똑한 체하는 지도자가 오히려 조직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영조는 신하들을 자꾸 가르치려 하는 태도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 “전하께서는 가르칠 신하를 좋아하고 가르침을 주는 신하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유언협의 말(영조실록 15/03/11)이 대표적이다. 최고 지도자는 모름지기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 좋아해야 하는데, 영조는 경연 석상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스스로 총명한 체 해서 좋은 말을 가로막았다.
맹자는 탕왕과 이윤, 환공과 관중의 예를 들면서 “장차 크게 될 임금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 좋아하고, 자신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將大有爲之君…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고 말했다. 이 대목은 군주들의 경청하는 자세를 촉구하기 위해 신하들이 자주 사용한 구절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군주 자신의 밝음을 사용하면 작은 곳은 밝겠지만 큰 곳은 어둡다’는 말이다. 정말로 지혜로운 지도자는 ‘밝으면서도 감춤을 사용한다’는 것, 그래야 ‘진짜로 밝아진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런 리더야말로 ‘어두운 듯해도 오히려 밝은(用晦而明)’(성종실록 8/12/23)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낮에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밤에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