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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장군의 군기 잡기 ‘롬멜공포증’ 깼다

임용한 | 28호 (2009년 3월 Issue 1)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하던 1945년 3월 24 독일 오펜하임 부근. 키가 헌칠하고 철모에 큼지막하게 3개의 별을 그린 은발의 장군이 라인 강에 설치된 부교 위를 걷고 있었다. 중간쯤 왔을 때 장군은 걸음을 멈추더니 넘실대는 강물을 향해 소변을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꿈까지 꾸었다네….”
 
이 일화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시사주간지 타임에 가장 많이 등장한 미국의 조지 스미스 패턴 장군이다. 패턴은 1943년 3월 튀니지에서부터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미2군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바로 한 달 전 전투에서 2군이 참패를 당하자 이로 인해 패턴 장군이 지휘봉을 넘겨받은 것이다.
 
‘캐서린 패스의 전투’로 불리는 한 달 전 전투는 미군과 독일군 간의 첫 교전이었으며, 당시까지 미군이 해외에서 당한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됐다. 겨우 2개 사단에, 그것도 단 이틀 만에 미군 1개 군단이 궤멸될 뻔했다. 그나마 패전으로 끝난 것은 당시 연료와 병력에서 거의 한계 수준에 도달한 독일의 롬멜 전차군단이 스스로 물러난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프랑스와 영군 군을 휩쓴 ‘롬멜 공포증’이 번져가고 있었다.
 
패턴 장군이 미군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먼저 미군의 사기를 되살려야 했다.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철모와 넥타이와 각반을 항시 착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위반자에 대해서는 장교 50달러, 사병 25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병원의 간호원이나 작업병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자동차 수리공도 철모를 쓰고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군복 안에는 모직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야 했다. 사막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셔츠의 단추 하나를 푸는 것도, 소매를 걷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어느 추운 날 오후 통신대 중위 한 명이 털실로 짠 머리 수건을 눌러쓰느라고 철모를 잠깐 벗었다. 그가 머리에서 철모를 들어 올리는 순간 패턴이 나타났다. 중위는 꼼짝없이 벌금 50달러를 물어야 했다. 패턴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충고 하나를 남겼다. “머리가 가려우면 철모를 쓴 채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긁어라.”
 
전방 정찰초소에 근무 중이던 한 중위에게 패턴의 전령이 도착했다. 당시 진지에서는 사소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순찰을 하던 패턴이 전투 광경을 목격하고 전령을 보낸 것이었다. 전투 중인 만큼 중위는 인사와 격식을 생략하고 전령에게 물었다. “뭔가?” 전령이 대답했다. “장군님께서 중위님께 각반을 착용하시라고 전하랍니다.”
 
험악한 연설로 군기 잡기
패턴이 시도한 또 하나의 군기쇄신책은 시도 때도 없는 연설이었다. 그의 연설은 온갖 저속한 욕설과 험악한 말로 채워졌다. 중세 이래 유럽의 군대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사관학교 교육은 귀족교육의 영향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미국은 귀족의 나라가 아니었지만 장교는 귀족과 같은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런 장교들에게 패턴의 험악하고 야비하며, 허풍과 과장과 자기자랑으로 가득 찬 말투는 충격이었다.
 
그의 연설에서 욕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피’와 ‘내장’이었다. 인간 내장의 용도에 대해 패턴만큼 고민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독일군의 내장을 뽑아 기름을 짜서 윤활유로 사용하자”“피 묻은 내장을 기름걸레로 써라” 등. 패턴 스스로 자기 연설의 효과를 ‘피와 내장의 효과’라고 불렀다. 그는 연설의 효과에 대해 언제나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연설에 관한 한 군대라는 계급사회의 이점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마구 지껄여도 청중이 싫은 기색을 하거나 퇴장할 염려는 없었다. 대신 그들도 일기에는 소감을 기록했다. “오늘 장군이 3시간 동안 연설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뭘 말하려고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패턴의 군기 잡기와 연설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패턴을 포함해서) 놀랍게도 단 일주일 만에 2군단이 싹 변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패턴과 함께 한 오마 브래들리 장군은 패턴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런 모든 규칙은 그 군단의 장교와 10만 병사들에게 이제는 옛날의 군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부대원들에게 자신은 일반 지휘관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애초부터 계획된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그가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브래들리도 이 방법의 효과에는 자신이 없었다. 브래들리의 시각에서 봤을때 패턴은 정말로 병사들의 심리를 모르고 있었다. 그의 독재적이고 잘난 척하는 행동은 오히려 병사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딱 알맞은 것이었다. 브래들리의 평가처럼 패턴은 자신이 이전의 지휘관과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한 가지 결과만은 이론의 여지없이 분명했다. 미군 병사들의 식은 가슴이 증오로 불타기 시작했다. 패턴을 독일군보다 더 미워하는 병사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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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email protected]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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