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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中庸, 완벽의 극치

박재희 | 31호 (2009년 4월 Issue 2)
김연아
가 세계 피겨 스케이팅 여왕으로 등극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 태극기가 휘날리던 시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국민들의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완벽한 피겨 스케이팅 연기를 동양적 용어로 말하면 ‘중용(中庸)’의 극치다. 그녀의 연기에 녹아 있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완벽한 평형성은 미(美)와 선(善)이 어우러져 나오는 중용의 완벽함이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伋), 일명 자사자(子思子)가 쓴 책 이름이기도 하다. 아울러 중용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리더의 경영 철학으로 여겨져왔다. 12세기 신유교(New-confucianism)를 제창했던 주희(朱熹)는 중용을 이렇게 정의한다.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기울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無過不及)! 용(庸)은 언제나 그렇게 하라는 것(平常)이다.” 이 개념으로 김연아의 연기를 보면, 그녀의 연기는 중용의 극치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형을 이루고 있는 그녀의 연기 속에는 정지된 평형이 아니라 역동적 평형이 느껴진다. 일시적 균형이 아니라 지속적 균형이 떠오른다. 중용은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이다.
 
중용은 모든 개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A와 B의 수학적 중간이 아니다.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는 황금률이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進退)의 결정이고, 때로는 분노하고 기뻐할 줄 아는 감정의 평형이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침묵하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자세는 중용이 아니다. 중용은 실천이다. 그 실천은 평형성과 지속성을 담보로 해야 한다.
 
중용은 시중(時中)이다. 시중은 ‘주어진 상황(時)’에 ‘가장 적합한 답(中)’을 찾아내는 것이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한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이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中)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隨時)는 상황의 변화, 처중(處中)은 그 상황 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이다. 경영자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기초로 시간과 공간을 읽어내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용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감정과 실천을 조절하며, 가족이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정확한 중을 찾아내는 것이 중용의 일상이다. 공자는 중용적 삶의 어려움을 이렇게 강조한다. “천하 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하얀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쉽지 않다(天下國家도 可均也요, 爵祿도 可辭也요, 白刃도 可蹈也나 中庸은 不可能也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천하의 높은 자리를 사양할 수 있는 의리도,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기도 중용보다는 쉽다는 이 말은 중용의 실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처지를 정확히 파악해 역동적인 변화에 정확한 판단과 지속적 실행을 옮길 수 있는 리더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중용을 실천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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