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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

박재희 | 36호 (2009년 7월 Issue 1)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 말 한마디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훈계조로 말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배운 것과 아는 것이 많고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거리를 두게 된다.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도 거부감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사소한 일에 너무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마치 무슨 중대한 논란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이성까지 잃어가며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직선적이고 저돌적으로 말하는 것이 용납되는 요즘의 세태라고 해도, 그 사람의 성품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자신을 낮춰 눈높이를 맞춰야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온화한 분위기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라”고 제안한다. 일명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철학이다.
 
여기서 화(和)는 ‘온화하게 조절하라’는 뜻이다. 광(光)은 자신이 갖고 있는 ‘광채’와 ‘재능’을 말한다. 진(塵)은 ‘티끌’이라는 뜻으로 ‘속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화광동진’은 상대방을 정확히 분석하고 내가 갖고 있는 빛과 재능을 잘 조절해 상대방의 눈높이에 나를 맞춘다는 눈높이 철학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이 아무리 밝고 화려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갈 때 오히려 내 빛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노자의 역발상 철학이다.
 
조직의 리더가 회의 시간에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일방적으로 말하고, 참가한 사람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리더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 생각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연스럽게 내 의도에 맞게 접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추는 것도 화광동진 철학의 한 방편이다.
 
일보(一步) 뒤로 물러나보면…
노자는 <도덕경>에서 리더의 화광동진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진정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知者不言). 말이 많은 자는 정말 아는 자가 아니다(言者不知). 당신의 입을 닫아라(塞其兌). 당신의 그 머릿속의 의도를 닫아라(閉其門). 당신의 그 날카로움을 버려야 한다(挫其銳). 당신의 그 현란한 말을 쉽게 풀어야 한다(解其紛). 당신의 그 빛나는 광채를 줄여라(和其光). 그리고 당신 앞에 있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라(同其塵). 이런 사람이 진정 ‘현동(玄同)’의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是謂玄同).” ‘현동’은 리더가 자신의 주장과 광채를 줄여 상대방이 스스로 동화되게 만드는 철학이다.
 
화광동진은 불교에서 부처가 해탈한 자신의 본색을 감추고 속세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쉽게 불법을 설파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자신의 빛을 감추고 그저 속세에 동화돼 한세상 살라는 의미로 난세에 지식인들이 사는 철학이 되기도 했다. 청나라의 정판교(鄭板橋)라는 지식인은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 난득호도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 이렇게 읊었다.
 
“총명해 보이는 것도 어렵지만(聰明難),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렵다(糊塗難). 그러나 총명한데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放一着退一步), 하는 일마다 마음이 편할 것이다(當下心安). 그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非圖後來福報也).”
 
세상에는 총명하고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총명을 조절해 세속의 눈높이에 맞추고 사는 ‘화광동진’의 철학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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