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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날, 배를 버리고 솥을 부숴라!

박재희 | 37호 (2009년 7월 Issue 2)
회사의 운명이 결정되고, 개인의 미래까지 걸려 있는 결전의 날이 내일이다. 지금은 그 전날 밤이다. 당신이라면 오늘 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손자(孫子)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정신 자세에 대해 <손자병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감
첫째, “모든 병력을 집결시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곳으로 몰아넣어 다른 선택이 없게 하라(聚三軍之衆, 投之於險).” 이는 험(險)하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에 던져지면(投),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돌격한다는 말이다.
 
손자는 이를 ‘배(舟)를 불태우고(焚), 솥(釜)을 깨뜨린다(破)’는 뜻의 ‘분주파부(焚舟破釜)’ 효과라고 했다. 전투에서 지면 타고 돌아갈 배도 없고 더 이상 밥해 먹을 솥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오로지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는 말이다.
 
한(漢) 고조 유방과 천하를 두고 다투던 초(楚)나라 항우는 이 전술을 자주 사용했다. 그는 결전의 날 전장에 도착하면 병사들이 보는 가운데 배를 가라앉혀 위기감이 들게 하고, 솥을 깨뜨려 더 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병사들과 장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정신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져도 도망갈 때 탈 배가 있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식량이 있다고 생각하는 조직에서는 전력투구할 힘이 나올 수 없다.
 
손자는 이와 비슷한 전술로 ‘등고거제(登高去梯)’를 말했다. 전투 날짜가 결정되면 사람을 ‘높은 곳(高)에 올려놓고(登) 사다리(梯)를 치우듯(去)’ 해야 한다. 그래야 병사들이 절박함 속으로 자신을 던져 ‘이번 전쟁에 지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불굴의 정신력을 갖추게 된다. 일명 ‘배수진(背水陣)’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전술들은 정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주로 사용된다.
 
조직원들의 인화(人和)와 일체감
둘째,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일심동체의 분위기를 만들라(上下同欲者勝).” 전쟁이든 경영이든, 장수나 경영자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전 구성원이 하나가 돼 목표를 공유할 때 나오는 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손자는 이런 군대를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상산(常山)에 사는 ‘솔연(率然)’이라는 뱀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했다.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장군은 부대를 마치 솔연처럼 만든다. 솔연은 상산에 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뱀이다. 누군가 뱀의 머리를 때리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때리면 머리가 달려들며, 몸통을 때리면 머리와 꼬리가 동시에 달려든다. 그래서 솔연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뱀이 될 수 있었다.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은 서로 원수지간이다. 그러나 같은 배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원수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솔연처럼 될 것이다.”
 
노사(勞使)가 하나가 되고 가족이 돼 꿈을 공유하는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이 똘똘 뭉쳐 있는 가정은 아무리 모진 풍파가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기상 조건인 ‘천시(天時)’도, 지형적 이점인 ‘지리(地利)’도 아니다. 결국 ‘인화(人和)’가 깨져 그렇게 된다”는 맹자의 주장과 그 맥을 같이한다. 조직원의 일체감은 결전의 날에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다.
 
난세에 조직이 살아남는 조건
<손자병법>에서는 이렇게 결전의 날에 필요한 2가지를 ‘절박함’과 ‘일체감’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조직에 미치는 결과를 4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불수이계(不修而戒)다.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경계하는 조직이 된다는 말이다. 둘째는 불구이득(不求而得)이다. 위에서 요구하지 않아도 직무를 다하는 조직이 된다는 뜻이다. 셋째는 불약이친(不約而親)이다. 억지로 묶지 않아도 상호간에 친한 조직을 말한다. 넷째는 불령이신(不令而信)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장수가 명령하지 않아도 병사들이 스스로 군율을 지킨다.
 
오늘날 이 시대가 원하는 조직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난세에 조직이 살아남는 조건으로 반드시 자금과 기술, 인력만 있는 건 아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감과, 조직 구성원들의 일체감에 기초한 자발적인 생존에 대한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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