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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맥아더: 제왕적 리더십도 사랑받을 수 있다

임용한 | 58호 (2010년 6월 Issue 1)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대 초반, 당시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교장이던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준장이 차를 타고 허드슨 강가를 달리고 있었다. 웬 사람이 손전등을 켜 들고 돌연 길 한가운데로 들어와 차를 세웠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노상강도였다. 그는 총을 휘두르며 지갑을 내 놓으라고 했다. 그때 맥아더의 지갑에는 40달러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돈을 주고 강도에게서 벗어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 무기도 휴대하고 있지 않았지만, 맥아더는 강도와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강도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맥아더는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맞섰다. 그는 “네가 날 죽이면 사법당국이 너를 체포해 끓는 기름에 집어넣어 죽여 버릴 거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높은 사람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기사도 정신에 투철했던 맥아더는 결코 권위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았다. 일단 권위로 강도를 멈칫거리게 한 후 맥아더는 공평한 제안을 했다. “총을 내려 놔라. 내가 너하고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겨뤄 보마. 내 이름은 맥아더이고, 내가 사는 곳은 ….” (마지막 멘트는 엉뚱해 보이지만 자신의 이름과 사는 곳을 밝히는 것은 중세 기사의 결투 예절이었다.) 그러자 강도는 갑자기 총을 내려놓았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저는 (맥아더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지휘했던) 레인보우 사단에서 하사로 복무했습니다. 장군님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렇게 맥아더는 강도와 헤어졌다. 그 강도를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극단적이며 모순된 평가
맥아더는 생전에 시기와 존경을 함께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받았던 평가 역시 항상 극단적이며 모순적이었다. 알렉산더, 한니발, 나폴레옹 등 원래 위대한 지휘관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지만, 20세기에 활약한 미군 장성 중 세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로는 맥아더가 으뜸이다. 그만큼 그의 진면목에 접근하기가 힘들다. 그 중에서도 유별난 부분이 맥아더의 리더십이다. 맥아더의 전기 <아메리칸 시저>를 쓴 윌리엄 맨체스터는 맥아더를 ‘리더십의 화신’이라고 표현했다. 이 전기에 따르면, 웨스트포인트 교장 시절 술에 취한 생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5분 안에 전 생도들을 돌처럼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은 맥아더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의 리더십을 ‘제왕적 리더십’이라며 비판한다. 맥아더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거의 신처럼 행동했고, 찬양을 넘어 자기숭배의 수준으로까지 치달았으며, 부하들의 인격까지도 지배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그런 면모가 있었던 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맥아더는 물리적으로 그런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제왕적 리더십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맥아더는 그 순간을 즐겼을지는 몰라도 - 당연히 즐겼겠지만 - 공적인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자신의 리더십을 활용했다. 사실 리더십이 제왕적이냐 서민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제왕적이라고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떻게 유효적절하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의 복잡한 성격과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는 레인보우 사단의 참모장과 사단장을 역임했던 1차 세계대전이다. 그가 최초로 실전에 뛰어들었던 시기이며, 군인으로서 병사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레인보우 사단, 즉 미군 42사단은 1차 세계대전에 최초로 참전한 미군 사단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주(州) 단위로 병력을 편성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참전을 둘러싸고 어느 주에 병력을 먼저 투입하느냐가 미묘한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래서 여러 주의 병력을 무지개처럼 혼합해서 편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42사단이 추후 레인보우 사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당시 소령이었던 맥아더는 대령으로 파격 승진해서 42사단 참모장으로 발탁됐다.
 
제왕적 리더십과 서민적 리더십
맥아더는 타고난 조직력과 행정력을 발휘해 그 어떤 사단보다도 전투 준비를 빠르게 완료했다. 하지만 전선에서 보다 화제가 됐던 것은 맥아더의 복장이었다. 그의 복장은 완벽한 ‘군기위반’이었다. 철모는 절대로 쓰지 않았으며, 무기도 휴대하는 법이 없었다. 철모 대신 챙을 짧게 만든 특유의 캡(맥아더의 트레이드마크인 바로 그 모자다!)을 썼고, 무기 대신 승마용 말채찍을 들었다. 독가스로 기관지가 상해 입원까지 했지만, 방독면 또한 철저히 거부했다. 외투 안에는 목이 긴 스웨터를 즐겨 입었다. 어떨 때에는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이 입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의는 승마용 바지에 기병용 부츠를 신었다. 압권은 그가 목에 두르는 머플러. 어머니가 짜 준 니트 머플러였는데, 보라색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복장만 놓고 봤을 때 맥아더는 병사들에게 위화감을 일으킬 소지가 충분했다. 더구나 그는 휘하 병사들에 대한 복장 군기에 매우 엄한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제왕적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이와 동시에 서민적 리더십 역시 갖추고 있었다. 초고속 승진을 한 덕에 그는 병사들과 나이 차이가 가장 적은 장교였다. 맥아더는 이 장점을 아낌없이 활용해 병사들과 격의없이 어울렸다. 1차 대전을 전후해 최고의 인기 장교로 맥아더가 꼽혔던 데는 분명 병사들과의 잦은 스킨십이 크게 작용했다.
 
맥아더는 서민적 리더십의 한계 또한 잘 간파하고 있었다. 스킨십을 통해 병사들과 친숙한 유대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비처럼 퍼붓는 포격 속에서 병사들을 진정시키거나, 방어망이 적들에게 무너지려는 순간 병사들에게 반격지점을 가르쳐 주고 돌격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병사들은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병사들은 형님 같고 그들을 이해해 주는 지휘관을 좋아한다. 하지만 생명이 오고가는 절박한 상황에선, 형님에 대한 의리보다 지휘관의 능력을 택하기 마련이다. 공포 상황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공격명령을 받았을 때 필요한 것은 지휘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다.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의 확신이 아니다. 나뿐 아니라 동료 병사들도 저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해 포화를 뚫고 함께 돌격할 거라고 신뢰하게 만드는 지휘관의 카리스마에 대한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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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email protected]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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