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레벨은 점점 높아진다. 업무적으로는 한 해 사업성과를 점검하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한층 분주해진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무엇인지, 향후 나아가야 할 전략적 방향성은 무엇인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 논쟁을 벌이다보면 어느새 언성이 높아지고 때론 갈등도 발생한다.
회사 일에 한참 열을 올리다 정작 개인사를 돌아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데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건 아닌지 허탈할 뿐이다. 이러다 직장 상사에게 싫은 소리라도 한 자락 듣게 되면 자괴감과 좌절감에 빠지기 다반사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의사 결정을 통해 개인과 회사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결국 업무 판단도 자기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경계해야 할 인지 편향(cognitive bias) 중 하나로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이란 게 있다. 어떤 사안을 판단하거나 그 실현 가능성을 점칠 때 가장 최근의 사례, 혹은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 등 자신이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에 집착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심리학 개념이 ‘초점주의(focalism)’다. 현재 눈앞에 벌어지는 특정 사건에 과도하게 초점을 둔 나머지 그 사건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혹은 앞으로 벌어질 다른 일들에 대해 잊어버리는 습성을 말한다.
가용성 편향이 인간의 논리적 판단과 주로 관련돼 있다면, 초점주의는 주로 인간의 감정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초점주의가 ‘영속성 편향(durability bias)’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를 예측(affective forecasting)할 때, 실제보다 그 영향력과 지속 기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쁨이든 슬픔이든 현재의 감정이 실제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장차 벌어질 다른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눈앞에 벌어진 사건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요약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제한된 틀에 가둬놓고 편협한 시각에서 어떤 일을 판단한 후 그에 따라 수반되는 감정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종종 왜곡된 예측과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진다.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보의 편식을 자제하고, 현재 있는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큰 그림’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 특수한 환경 하에 벌어진 특정 성과를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 느끼는 자괴감과 좌절감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직장 상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길버트 교수의 주장처럼,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영원토록 행복하거나 비참해지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그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할 뿐이고, 바로 그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대부분 이 같은 오류에 붙들려 산다. 하지만 감정의 기복들을 통제하고,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가능성들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역량은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