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12일 이틀간 전 세계의 경제 수도는 서울이었다. 세계 GDP의 9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의 정상이 모였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열렸던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120개 기업들의 연간 매출액도 4조 달러에 달한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정부와 민간 리더들이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주제로 의미 있는 토론을 이어 갔고 참여 기업인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이에 다음 G20 회의 때도 비즈니스 서밋이 함께 열린다. 서울은 이번 G20를 성공적으로 주최했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 서밋이라는 민간 차원의 글로벌 회의체를 출범시키는 산파 역할도 톡톡히 담당했다.
플레시먼 힐러드는 서울 비즈니스 서밋의 커뮤니케이션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에 필자도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이 어떻게 ‘사고의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을 펼치는지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가졌다. Thought leadership은 국제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제안하는 활동을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에게‘사고의 리더십’이 우선 순위가 높은 핵심 업무였다는 사실이다. 각자의 회사가 당면한 문제를 바로 처리하는 일 못지 않게 이런 국제 회의에 참석해 지혜를 얻고, 협력을 모색하는 일이 글로벌 CEO들에게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사고의 리더십’으로 무장한 이들 CEO에게서 필자는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철저한 준비다. CEO들은 한국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자사의 홍보 및 마케팅 담당자, GR(Government Relations) 담당자, 보안 팀 등으로 구성된 사전 준비 팀들을 한국에 보내 사전 준비를 맡겼다. 이 사전 준비 팀들은 자신의 CEO가 회의에 참석해 어떤 말을 할지, 무엇을 얻어 갈지에 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서울에 왔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둘째, 냉정과 열정의 균형이다. 글로벌 CEO들은 극도로 냉정하게 정제된 메시지를 매우 열정적으로 전달하려고 애썼다. 자사에게 이득이 될 수 있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 즉시 스케줄을 조정하고, 예정에 없던 사람과도 만나려는 열정을 보였다. 그처럼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함이 그들을 글로벌 기업의 수장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셋째, 상생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다. 글로벌 CEO들에게는 ‘우리 회사만 잘 하면 된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는 경영 환경에 대처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상생, 공존,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CEO들이 많았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점은 사고의 리더십이 늘 글로벌 1,2위 기업의 CEO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 해도 글로벌 이슈에 대한 참신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CEO가 있다면 세계적 기업의 CEO 못지않게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대표적 예가 덴마크 풍력발전업체 베스타스의 디틀레프 엥겔 회장이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의 4대 주제 중 하나는 녹색 성장이었다.이 주제에 관해 가장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은 기업인이 바로 엥겔 회장이었다. 그는 녹색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국가별 맞춤 전략 및 각국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 등을 꼼꼼하게 짚어내 참석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G20 서밋에 참석한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의 모습은 한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한국에도 훌륭한 경영자가 많지만 아직 글로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녹색 성장이나 글로벌 빈곤 퇴치와 같은 인류 공동의 문제에 관해 다른 나라의 리더들보다 더 참신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한국 기업 리더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거듭나는 일 못지 않게, 한국 기업 리더들이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는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주립대에서 광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일본 사운드 디자인, 아그파 코리아 등을 거쳐 플레시먼 힐러드 코리아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커뮤니케이션 전략 및 Public Affairs 분야의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