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맥킨지 쿼털리>에 실린 글 ‘Remapping your strategic mind-set’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경영진은 불확실한 세계화 시대에 잘 대처하기 위한 ‘사고 지도(mental map)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각종 지표들을 통해 전체 경제 활동에서 글로벌 사업의 비중이 10∼25%에 불과함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거리와 문화적 차이가 의미 없어지고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진 세계에 무한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필자는 여러 도서와 기고문 등을 통해 세계화의 본질과 경영진이 거리와 문화적 차이의 영향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에 대해 제안해 왔다. 본 글에서는 ‘근원지도(rooted map)’라고 불리는 특수한 지도가 세계화 추세 속에서 기회와 위협에 대한 경영진의 직관을 개발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근원지도는 ‘세계는 관찰자의 시점이나 목적에 상관없이 일정한 모습을 띤다’는 기존 사고의 오해를 바로잡아 줄 수 있다. 문화 및 정책의 차이와 지리적 거리는 결코 간과돼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근원지도는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런 요소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고려한다. 공간적 위치와 형태를 기존의 사고 모델대로 유지하는 한편 특정 국가 혹은 기업과의 상대적 규모 및 위상을 조정하는 식이다. 산업이나 기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근원지도는 솔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의 ‘뉴욕에서 바라본 세계1
’처럼 재미있는 관점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경영 측면에서의 활용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행히 관련 기술이 최근 몇 년간 크게 발전해 경영진은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만으로 맞춤형 근원지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근원지도를 이용한 기회의 이해
근원지도에서 거리는 국경을 넘어 가치를 창출할 거대한 기회를 의미한다. 근원지도를 작성하는 첫 단계는 특정 국가 혹은 기업의 위치를 반영하지 않은 산업 환경 중심의 참고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영화사 경영자의 사례를 예로 들면, 각 국가별 박스오피스 매출을 기준으로 각 국가의 영화 산업의 크기와 내수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을 각기 다른 색상으로 표시한 형태의 참고지도를 만들 수 있다.(지도 1) 이 지도는 각 지역별 시장 잠재력과 내수 기업들의 영향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경영진은 참고지도와 근원지도를 비교함으로써 국경, 거리, 문화적 차이 등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지도 2>는 세계 영화 시장에서 미국 영화(할리우드)와 인도 영화(발리우드)의 매출을 비교한 근원지도다. 국가 간 거리나 문화적 차이가 증가하면 국제적 교류는 감소한다는 ‘거리의 법칙’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국어로 제작된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미국 영화가 지배하는 주요 시장은 모두 영어권 국가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막이나 더빙이 필요한 국가들에서도 어족(語族)2
이 유사한 국가의 영화가 더 선호된다는 것이다. 유럽이 할리우드 영화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다. 언어는 문화적 차이를 대표하며 이런 경향은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발리우드 지도에서의 수출 패턴 역시 공용어인 영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이들 영화에 사용되는 언어는 힌두어다. 따라서 영어보다는 해당 지역 내 인도계 주민의 규모와 같은 다른 문화적 요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두 수치 간 상관도는 0.67이다. 지도 3)
영화 산업에 대한 각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른 행정적 거리도 반영된다. 외국 영화 상영 비중 제한, 검열, 외국 영화 더빙 규제, 국산 영화 제작에 대한 보조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행정적 장벽은 중국이 참고지도에서보다 지도 2에서 훨씬 작게 나타나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된다. 중국은 외국 영화 상영을 연간 20여 편으로 제한하고 있어 최근 세계무역기구는 규정 위반을 판정하기도 했다. 불법복제도 큰 장애 요인이다. 중국 내 불법 복제 DVD의 매출은 극장의 박스 오피스 매출의 4배 정도로 추정된다.3
지리적 요소 역시 여전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미국과의 거리가 멀수록 영화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어 및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영화가 인근 남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도 거리의 힘이다. 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국경을 넘어 운반할 필요가 없는 상품은 지리적 요소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 상품 및 서비스에서도 지리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론적 기회에 대한 참고지도와 문화적 차이들을 반영한 근원지도를 비교하면 기업의 목표와 이를 달성할 역량 사이의 불일치를 확인할 수 있다. 경영진은 자산 활용 정도나 경영 실태를 보여주는 내부 근원지도를 만들고 이를 외부 근원지도와 비교함으로써 기업의 거리 민감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본사 또는 연구개발센터의 입지는 매출 증대를 극대화하는 지역과 비교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날까 등을 볼 수 있다. 또 대규모 신흥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거리 민감도를 줄이기 위해서 어떤 맞춤형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거리 민감도를 줄여왔다. 외국 스타를 캐스팅하고 문화적 거리가 더 중요한 로맨틱 코미디 대신 액션 영화의 제작 편수를 늘렸다. 또 주요 해외 시장에서 검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주제를 조사하는 한편 외국 정부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지리적,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현지 촬영, 국가별 가격 및 배급 모델의 다양화, 해외 합작 등의 방법도 사용했다.
거리 민감도의 영향과 성격은 산업별로 편차가 크다. 영화는 대륙 간 운반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냉장고 등 대형 가전제품보다 언어적 차이에 대한 민감도는 높지만 지리적 차이의 민감도는 낮은 식이다. 하지만 경영진이 낯선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데 있어 산업 및 기업 차원의 근원지도는 여전히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