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디지털 전환으로 일하는 공간, 오피스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게 됐다. 재택근무가 점차 막을 내리면서 다시 오피스로의 출퇴근이 시작됐지만 이전에는 당연히 여겨지던 것들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며 오피스 공간에 대한 많은 회의를 낳게 된 것이다. 이제는 회사로 출퇴근하는 과정조차 업무의 연장선으로 포함됐고 이는 ‘오피스 저니’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에 오피스 설계자들은 기존처럼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상을 구겨 넣는 게 아니라 일의 효율도 높이고 사용자의 이용 환경도 고려하는 새로운 오피스 설계를 고민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인재 밀도와 공감 감도를 높이고, 직원들의 부정 경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양한 공간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4월 네이버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제2사옥인 ‘네이버 1784’를 열었다. 첫 삽을 뜨고서 완공까지 6년이나 걸려 지은 이 건물은 단순한 사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공간이자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를 실험해보는 테스트베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1784를 비롯해 한국타이어의 테크노플렉스 등 사옥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내는 선례가 등장하면서 오피스 설계부터 기획에 직접 참여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넘어서, 그들이 일하는 공간까지도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큰 프로덕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는 2가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원격 근무의 발달로 인해 오피스가 도심이 아닌 더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오피스는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가장 좋은 도심에 위치해야 했다. 도심의 높은 임대료 탓에 기업들은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좌석 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성을 따져 업무 공간을 구성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와 워케이션 등 유연한 근무 방식을 경험했고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은 공간의 밀도는 낮추고 감도는 높이는 좋은 오피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째, 오피스 공간이 소위 말하는 ‘인재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무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일할 사람 역시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계속해서 높아져야 하는데 모셔 올 인재는 줄어드는 인재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성장 비결을 다룬 책 『규칙 없음(No Rules)』에서도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인재 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원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보다 뛰어난 인재 몇 명을 채용해 이들이 밀도 있게 협업하고 소통하며 상승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피스 공간 역시 우수한 인재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재들의 사소한 고민조차 줄여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에 필자와 같은 공간 기획자들은 일의 효율도 높이고 사용자의 이용 환경도 고려하는 새로운 오피스 설계를 고민하고 있다.
필자는 업무 공간, 상업 시설 등 건축 공간 안에서 다양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공간 기획자다. 간삼건축 브랜드팀을 거쳐 간삼기획에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마스터플랜, 삼성전자 DS부문 미래오피스 컨설팅, 하나금융그룹 청라 HQ 공간기획 등 다수의 오피스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다. 필자가 소속된 간삼기획은 간삼건축의 기획 자회사로서 공간 브랜딩, 사업기획, 상환경컨설팅 등 공간 기획 업무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최종 공간 소비자 관점에서 가치를 규명하고 운영사업 확장을 통해 ‘간삼’이라는 일관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