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 하이브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은 그동안 양적 성장에만 집착해온 ‘K엔터 산업’의 근본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일단 연예기획사와 아티스트의 권력 균형이 무너졌다. 과거 ‘노예 계약’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절대 갑 위치에 있던 연예기획사들은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한 아티스트들의 파워 앞에서 권력이 약화됐다.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 등 K팝식 판촉 상술 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갈등이 본질적으로 청각 아티스트와 시각 아티스트의 충돌이라는 시선도 있다. K팝 태동 30년을 맞아 K팝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킨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어떻게 고도화할지 고민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들이나 간과되는 기능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2024년 가요계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몇 개의 키워드가 있다. 하이브, 어도어, 민희진, 뉴진스 등…. 이들은 모두 ‘근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사내에서 해결할 문제를 여론전으로 먼저 몰고 간 하이브를 지적한다. 카카오톡 내용 등 ‘불법 취득한 사적 대화’를 언론에 먼저 공개하며 인신공격을 자행했다며 하이브를 ‘근본 없는 회사’라 일컫는다. 다른 누군가는 모기업의 지원을 업어 성공해 놓고 이제 와 등에 칼 꽂고 나갈 궁리만 한다며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근본 없는 인간’이라 칭한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중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이 일궈둔, 그래서 단단한 땅 밑에 묻혀 있어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해 온 근본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바로 2020년대 우리 사회의, 또는 K팝의 상황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동아일보와 헤럴드경제에서 15년간 취재기자로 근무했으며 대중음악 등 문화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힙합어워즈 스림뉴웨이브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기』 『망작들 3: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 등이 있고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과 『K-POP으로 보는 대중문화 트렌드』 등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