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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총정리

ADC와 AI 화두 뜨겁지만 쏠림 우려도
제약바이오, 생존의 길은 속도와 차별화

김윤진 | 411호 (2025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5년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 달군 화두는 최근 몇 년간 제약바이오 업계의 주류 트렌드로 부상한 2A, 바로 ‘ADC’와 ‘AI’였다. 하지만 해외 빅파마(대형 제약사)도, 국내 바이오테크도 ADC 등 새롭게 각광받는 분야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가열됐고 한편에서는 쏠림 현상과 다양성 저하에 대한 경고등도 커졌다. 또한 어김없이 AI의 활용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AI의 장기 가치는 단백질 설계 등 혁신 치료제 연구에서 나오겠지만 단기 가치는 임상시험 모집 및 운영, 조직 최적화, 프로세스 자동화 등 운영에서 더 빛을 발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동시에 특허 절벽을 앞둔 글로벌 제약사들의 M&A 가속화와 중국의 질적 성장도 돋보였다. 이렇게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속도와 유연성을 앞세워 파레토 효율을 추구하는 최적화 전략으로, 셀트리온은 리더의 보부상 정신과 목표를 향한 조직의 정렬으로, SK바이오팜은 틈새시장 개척을 기반으로 한 프랜차이즈화로 각사의 비교 우위를 앞세워 차별화된 입지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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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2025년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이하 JP모건)를 달군 화두는 최근 몇 년간 제약바이오 산업의 주류 트렌드로 부상한 2A, 바로 ‘ADC’와 ‘AI’였다.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만 찾아가 약물을 투여하는 ADC(Antibody-Drug Conjugates, 항체-약물접합체)1 는 높은 치료 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차세대 항암제로 떠오르고 있는 플랫폼 기술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3년 97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ADC 시장은 2028년 3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이번 행사에서는 제약바이오에서 AI의 활용 가치, 특히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AI 기반 단백질 설계와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흘러나왔다. 글로벌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기업 역시 차세대 먹거리로 ADC 개발 생산이나 AI 플랫폼 사업화와 관련된 청사진을 연달아 발표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주소와 미래를 소개하기 위해 DBR이 2025년 JP모건 콘퍼런스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이뤄진 글로벌 제약사 경영진의 발표와 부대 행사2 의 패널 토론, 연단에 오른 국내 기업 CEO 발표와 간담회 내용을 토대로 핵심 비즈니스 시사점을 정리하고 국내 주요 기업의 차별화 전략과 비교 우위를 분석했다.


Key Business Takeaways

(1) 쏠림 현상(Herding)에 대한 경고등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당면한 문제는 자본력을 가진 해외 빅파마(대형 제약사)도, 국내의 영세한 바이오테크 기업(이하 바이오테크)도 ADC,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3 , 이중특이 항체(BsAB, Bispecific Antibody)4 등 새롭게 각광받는 분야에 뛰어들면서 점점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들은 전 세계 ADC 분야의 유망 신약 후보물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관련 기술을 가진 바이오테크를 인수하기 위한 ‘쇼핑’에 분주하다. JP모건에서도 이렇게 대세를 추종하는 쏠림 현상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아라다나 사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4년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일종의 ‘무리지음(Herding)’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모두가 같은 목표, 같은 기술을 추구하고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모두가 ADC를 이야기하거나 이중특이 항체를 연구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술에 지나치게 많은 회사가 몰려들면서 풍부한 자금을 조달해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회사를 제외하고는 경쟁력이 없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고조되고 있다. 쏠림이 강해진다는 것은 혁신이 둔화된다는 증거인 동시에 개별 기업이 혁신을 통해 독점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져 제약사들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린 CFO는 “기존에는 같은 기전의 세 가지 완제품이 출시되기까지 약 6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3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면서 “마찬가지로 특정 제품으로 최대 매출을 달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4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복 경쟁으로 시장 지배 기간이 줄고 업계 전반의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노바티스의 아론 갈 최고전략책임자(CSO, Chief Strategy & Growth Officer) 역시 “한두 개 회사에서 개발한 좋은 메커니즘을 빠르게 발견한 회사들이 시장에 뒤따라 진입하는 ‘패스트 팔로워’ 모델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1상 후기나 2상에서 같은 기전을 가진 약물이 서너 개 이상이 되다 보니 수익성을 예측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신약 개발의 다양성 저하가 외부에서 약물을 도입하는 빅파마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혁신 신약 개발은 물론이고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생산시설을 자체적으로 구축할 여력이 없는 신생 바이오테크, 설비투자 비용을 절감하고 신속하게 시장에 대응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 생산을 아웃소싱함에 따라 CDMO 수요가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10년 후를 내다본다면 지금처럼 견조한 수익성을 담보할 수만은 없다. 아직까지는 ADC를 비롯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이중특이 항체(BsAB),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 새로운 모달리티5 의 등장으로 시장 파이가 커지면서 수요를 견인하고 있으나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 과열 우려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존 림 대표는 “한국의 경우 한 회사가 잘하면 다들 그 방향으로 따라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미래 성장성을 고민하면서 신규 모달리티를 확장하고 다양한 공장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고정비를 상쇄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때 신중하게 공장을 짓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성 모니터링은 연구소와 사업전략팀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생산 역량을 내재화해 독립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도 있고 대형 플레이어들의 공격적인 증설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CDMO 시장의 재편과 수급은 계속해서 주시해야 한다. 가령 지난해 12월에는 덴마크 소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운영 지주사인 노보홀딩스가 세계 최대 CDMO 업체 중 하나인 미국 카탈란트(Catalent)를 165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이 완료된 바 있다. 이는 노보노디스크의 당뇨 및 비만치료제인 ‘위고비’와 ‘오젬픽’의 생산 역량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둔 거래로 외부 CDMO와의 계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인하우스 역량을 강화하려는 빅파마의 행보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탈란트의 알렉산드로 마셀리 CEO는 “이번 인수로 대형 CDMO 하나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면서 “생산 인프라가 없고 독자적으로 의약품 품질을 관리하거나 제조공정을 확립할 역량이 부족한 기업이 많기 때문에 향후 몇 년은 CDMO 기업에 성공적일 것이고 대형 업체들 간 합종연횡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향후 몇 년간의 수익성은 자신했지만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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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I의 장기 가치-‘연구’, 단기 가치-‘운영’

한편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도 어김없이 제약바이오에서 AI의 활용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난해 젠슨 황 CEO가 깜짝 등장해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BioNeMO)’를 발표했던 엔비디아의 세션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고 같은 해 유동성이 마른 바이오 투자 시장에서 1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 유치로 스타덤에 오른 바이오테크 ‘자이라 테라퓨틱스(Xaira Therapeutics)’를 향한 관심도 뜨거웠다. AI 기반 항체·단백질 신약 설계 기술을 보유한 자이라 테라퓨틱스는 AI를 활용한 질병 치료 약 발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등이 창업한 회사다.

자이라 테라퓨틱스의 마크 테시에 라빈 CEO는 “막대한 초기 자금 조달이 필요했던 이유는 10년 전, 5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됐고 신약 발굴과 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혁신할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라며 “신약 발견, 표적 식별, 약물 제조 등 전 단계에 AI를 적용한 플랫폼을 만들고 풍부한 파이프라인을 갖춰 성장의 변곡점을 넘으려면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분자 단백질 및 항체에서 시작해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신약부터 만들고 나아가 더 어려운 표적, 전통적으로 공격하기 어려웠던 표적에 접근해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는 설명이다.

엔비디아의 킴벌리 파월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 역시 “단백질 기반 치료제는 안전한 치료법이지만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는데 AI를 통한 혁신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의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 인실리코메디신이 AI 플랫폼을 활용해 사람 대상 임상 단계 직전까지 통상 5~6년이 걸리던 것을 18개월로 줄이고 투입 비용도 절반으로 낮춘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의 경영진은 아직 AI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회사는 소수인 만큼 단기적인 AI의 가치는 ‘연구’보다는 ‘운영’의 영역에서 빛을 발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장기적으로 AI가 혁신 치료제의 발굴 속도를 단축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아직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운영 효율화에 활용할 여지가 더 크다는 평가다. PwC의 싯다르타 바타차라 제약&생명과학 분야 대표는 “AI를 활용한 임상시험 설계와 제출, 공급망 관리, 제조, 품질 관리, 불량 검수 등의 자동화가 먼저 이뤄질 것”이라며 “AI를 통해 차세대 신약을 발견하는 것만큼 섹시하게 들리진 않겠지만 작은 거미줄이 모여서 큰 거미줄이 된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도 올해 JP모건에서 AI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에 단백질 설계 툴을 추가했다고 밝힌 동시에 아이큐비아(IQVIA), 일루미나(Illumina), 메이요클리닉, 아크 인스티튜트(Arc Institute) 등 기관과의 협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신약 개발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 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계 최대 임상시험 서비스 기업인 아이큐비아와는 엔비디아의 AI 파운드리를 활용해 임상 연구를 가속화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고 대형 종합병원인 메이요클리닉과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칩과 이미징 오픈소스 의료 AI 플랫폼을 활용해 방대한 환자 기록을 기반으로 한 AI 기반 병리학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아이큐비아의 아리 보스빕 CEO는 2025년 JP모건 행사 기간 이뤄진 젠슨 황 CEO와의 담화에서 “의료 전문 지식을 훈련시킨 AI를 통해 임상시험의 효율성을 높이고 효과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이하 길리어드)도 임상시험 운영 및 모집에 AI를 접목하는 등 비즈니스 중심의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길리어드의 패트릭 로어 임상 데이터과학 수석부사장은 “길리어드 기업 협의회에서는 AI가 의존하는 데이터들을 중앙집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워크플로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AI의 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면서 “실제 임상시험 운영 및 모집의 속도가 AI로 인해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다케다제약 역시 AI를 조직 최적화와 프로세스 자동화에 먼저 적용하기 시작했다. 다케다제약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레오 바렐라는 “AI를 활용해 조직을 최적화하려면 데이터를 잘 집적하고 시스템 소유권이나 애플리케이션 소유권에 있어 부서 간 칸막이(silos)를 허물어 기업 전체가 공유하는 자산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며 “단일 작업을 자동화하는 게 아니라 AI를 기반으로 전체 시스템을 재설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다케다제약은 2023년 12월부터는 GPT 기반으로 전사 채팅 기능을 통합하고 ‘Takeda.ai’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설해 직원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실험 결과 신약 개발 실패의 교훈을 도출하고 해석하는 데도 생성형 AI가 유용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바렐라 CTO는 “신약 개발 회사들은 실패를 많이 하는데 실패 과정에서 생성된 모든 문서를 인간이 해석할 수 없다 보니 실패의 교훈들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데 에이전트AI는 마치 대부분의 임직원보다 더 오래 근무한 직원처럼 레거시 자산을 이해하기 때문에 실패를 방지하고 개선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M&A 가속화와 중국의 내실 성장

이처럼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AI 열기가 뜨거운 까닭은 경쟁이 치열해지고 신약 개발의 수익성이 둔화될수록 ‘속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미라도르 테라퓨틱스의 마크 맥케나 CEO는 “이제는 속도가 새로운 통화”라면서 “경쟁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 경제적 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으며 미국보다 빠른 속도와 적은 비용으로 기술을 검증하는 중국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제약사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줄리 로젠블룸 수석부사장은 “이제 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차별화’”라면서 “업계 최고, 업계 최초,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말했다.

속도가 중요해지면서 될성부른 약물 파이프라인을 도입하기 위해 국경을 뛰어넘은 M&A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제품들의 특허가 만료되는 ‘특허 절벽(patent cliff)’이 임박하면서 독점적 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된 빅파마들이 차세대 신약을 선점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M&A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신생 바이오테크가 탄생하기가 무섭게 M&A가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2024년의 침체를 이끈 고금리 등 장애물과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M&A 큰 장이 열릴 것으로 점쳐지는 배경이다. JP모건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은행의 벤 카펜터 공동대표는 개막식에서 “M&A 시장을 억눌렀던 반독점 규제 당국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더가 교체되면서 헬스케어 규제가 완화되고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 JP모건에선 미국 생물보안법6 발의 이후 격화된 미·중 갈등으로 중국 참여 기업들의 숫자는 현저히 줄긴 했지만 그 틈새에서도 초청을 받고 투자 유치를 한 중국 바이오테크의 위상과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다. 미국 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간 중국의 양적 성장보다도 질적 성장이 매섭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024년 진행된 글로벌 제약사들의 기술 이전과 M&A 거래의 30% 이상이 중국 바이오테크가 발굴한 물질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7 특히 ADC와 다중항체 같은 트렌디한 분야에서 중국 바이오테크가 앞선 기술로 글로벌 제약사의 낙점을 받으며 미국 자본을 독식하는 중이다. 올해 행사에서도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가 중국 심시어자이밍의 삼중항체 항암제를 10억5000만 달러 규모로 기술 도입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로슈도 중국 이노벤트로부터 ADC 신약 후보물질을 최대 10억 달러 규모로 도입한 바 있다. 굵직굵직한 딜이 성사되면서 글로벌 거물들이 잇달아 신약 후보물질을 중국 바이오테크에서 도입하고 기술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2025년 JP모건에서는 핵심 신약 포트폴리오에서 유망 자산을 발굴하려는 빅파마들의 대형 M&A 소식이 잇따랐다. 존슨앤드존슨(J&J)은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조현병·양극성 장애 신약을 보유한 바이오 회사 ‘인트라-셀룰러 세러피스’를 146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으며 일라이릴리도 미국 바이오 기업 ‘스콜피온 테라퓨틱스’의 유방암 치료제 후보물질을 25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암 치료제 전문 기업 IDRx를 11억5000만 달러에 인수해 위장관기질종양(GIST)을 타깃하는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이처럼 혁신의 첨병에 있는 미국과 중국의 아성이 견고한 가운데 이 레드오션에서 한국 기업들이 차별화된 입지를 구축하기가 쉽지는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ADC 분야에서 리가켐바이오, 오름테라퓨틱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테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대기업 집단을 중심으로CDMO 사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JP모건에서도 이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알리고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한국 기업 리더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주요 기업들의 차별화된 전략과 비교 우위는 무엇일까.


국내 기업의 차별화 전략과 비교 우위

1) 삼성바이오로직스:
속도와 유연성으로 파레토(pareto) 효율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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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가 주력으로 삼는 CDMO 사업 모델은 한마디로 ‘바이오의 TSMC’로 요약된다.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회사인 TSMC와 동일한 전략을 삼성이 바이오의약품에서 구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곧 그동안 삼성이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증명한 성공 공식을 그대로 복제해 이식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바이오 CDMO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삼성바이오 역시 대규모 생산 능력8 과 공정 최적화, 높은 수율, 글로벌 회사와의 장기 계약 등 ‘삼성이 가장 잘하는 것’의 집약체다. 이 시장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파악한 삼성바이오는 2011년부터 선제적인 투자로 바이오의약품 CDMO 수요 확대에 대비해 왔다. 그리고 이 같은 투자의 효과는 2024년 연 매출 4조5000억 원 돌파, 창사 이래 누적 수주 금액 176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의 기록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JP모건에서도 회사는 유럽 소재 제약사와 2조747억 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수주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2020년 이후 매출액도 매년 20%씩 성장하며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는 중이다.

신약 개발 대비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고 수익성이 좋다는 이점으로 인해 CDMO 시장이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SK팜테코, 대웅바이오 등 국내 기업들의 격전지로 변하고 있지만 생산 규모나 운영 효율 측면에서 10여 년 앞서 선제적 투자를 감행했던 삼성바이오와 견줄 만한 곳은 없다. 경쟁사들 역시 규모의 경제나 브랜드 인지도에 있어 삼성을 추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소형 CDMO로서 틈새시장을 어떻게 공략해 전문화하고 차별적 지위를 점할지를 두고 고심하는 중이다.

이렇게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삼성바이오가 경쟁사가 쉽사리 따라갈 수 없는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CDMO 사업의 본질이 고객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데 집중해 철저한 ‘고객 중심 서비스’로 승부를 본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삼성바이오라고 첫술부터 배부르거나 빅파마와의 계약을 쉽게 따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삼성 브랜드에 힘입어 짧은 기간인 2년 반 만에 첫 계약을 성사시키긴 했지만 수주 이력 등 트랙 레코드(track record)가 중요하고 신뢰가 생명인 시장에서 초반에는 스위스 론자, 카탈란트 등 선발 주자를 상대로 수주에 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CDMO도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할 수도 있겠지만 판가 인하의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완제품의 시장가격 대비 생산 비용은 미미하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품질과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기에 고객사들이 불량 위험을 감수하면서 위탁업체를 교체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판가를 낮추면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자칫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유의미한 전략이 되기 힘들다.

이에 삼성바이오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 즉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을 차별점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운영을 효율화해 한 고객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다른 고객의 맞춤형 요구에 부응하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9 선택지를 찾는 데 집중했다. 패스트 팔로워인 만큼 고객의 디테일한 요구에 얼마나 신속,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 본 것이다. 존 림 대표는 “기술 이전(technology transfer, 고객사가 보유한 제조 기술을 자사 시설과 시스템에 적용하는 과정)을 최대한 빨리하고, 생산도 빨리하고, 배치 성공률10 99% 등 시간과 품질로 경쟁할 뿐 판가로 경쟁하진 않는다”라면서 “우리가 앞선 영역은 고객 요구에 맞춤식으로 대응하는 커스터마이제이션이고 이게 삼성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TSMC보다 약 18년 늦게 출발했지만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삼성전자의 성장 전략을 재현하고자 한 셈이다.

CDMO 전통 강호들의 경우 이미 안정적인 고객사와 장기 계약을 다수 확보한 선발 주자인 만큼 고객사 요구에 맞게 일하는 방식을 변경하거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평판 자산과 레거시를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패스트 팔로워인 삼성바이오는 후발 주자의 격차를 추격하기 위해 바이오 최신 트렌드를 모니터링하면서 차세대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설계를 미리 준비하고 고객사의 변경된 요구가 있을 때마다 적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생산시설을 최대한 빠르게 짓는 것은 물론 공장 가동 시간의 공백, 즉 비가동 시간 없이 설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연속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래야 공장 가동률을 높여 생산 중단 기간을 최소화하면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에 따르면 신규 수주를 했을 때 기존 수주 물량의 생산 일정을 조율해 빈 슬롯(가동 여유)을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은데 고객사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생산 일정을 최적화하는 게 관건이다. 다행히 삼성바이오의 경우 삼성전자가 공장 자동화에 있어 최첨단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삼성SDS 등 계열사들이 시스템 자동화와 운영 효율화를 전방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 고객사들에 더 빠른 생산을 약속하거나 보관료를 대신 부담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기도 하면서 생산 일정을 최적화하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선택지를 모색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반도체 공장 시공에 적용하던 3D 설계와 위생 배관 시공 기술을 바탕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의 시공 시간과 비용을 동종 업계 대비 40%가량 낮췄다.

공장을 빨리 짓기 위해서는 생산 적절성 검증(validation)11 단계에서 속도를 높여 공사 기간을 단축했다. 가령 2023년 4월에 착공해 2025년 4월 완공 예정인 5공장의 공사 기간은 24개월로 동일 규모인 3공장을 짓는 데 걸렸던 35개월보다 약 1년 가까이 짧아졌다. 표준화된 디자인을 적용해 동일 구조 및 생산 기능을 갖는 건물을 복제한 결과다. 해외 공장 M&A에 신중한 까닭도 고객 수요에 신속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공장의 표준화와 디지털화가 핵심인데 기존 생산시설의 제품교체시간(PCO)을 고려할 때 새 공장을 짓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존 림 대표는 “공장을 다 똑같은 구조로 지어야 속도가 나고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다”라며 “기존 공장을 리노베이션할 수는 있지만 뼈대를 고치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젊은 조직과 낮은 부서 간 칸막이(silo)도 이런 ‘빨리빨리’를 가능케 하는 삼성바이오의 특징으로 꼽힌다. 업력이 짧아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30세로 젊은 데다 삼성 다른 계열사들에 비하면 조직이 작은 편인 것도 효율적 운영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는 관리자를 제외하면 평균 연령대가 20대로 더 낮아지는데 젊은 직원 개개인이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일이 빠르게 진척된다”라면서 “아직 분업화와 세분화도 덜 돼 있기 때문에 부서 간 칸막이를 뛰어넘어 고객 니즈를 해결한다는 목표를 향해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에 따르면 고객사가 우려할 만한 잠재적 위험을 제거하는 데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인 ADC 의약품 생산시설을 기존 공장 부지와 별도 공간에 건립하고 ADC 생산만을 위한 500리터 규모 전용 시설을 갖춘 것도 고객사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초반에는 기존 공장에 층만 분리해 건립하는 방안이 고려됐다. 하지만 ADC의 경우 다른 항체 의약품 생산시설과는 다르게 세포독성 약물(payload)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리 확산 방지 조치를 취하더라도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이런 고객사들의 반응을 접한 뒤 삼성바이오는 기존 1~4공장이 모여 있는 제1바이오캠퍼스와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할 수 있도록 별도 생산시설을 두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12월 완공했다. 정형남 ADC개발팀장(상무)은 “ADC 의약품 공정 개발부터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생산까지 모든 과정에서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생산 설비를 구축했다”면서 “고객사가 요구하는 고품질의 ADC 의약품을 제공할 수 있게 개발 분석법을 내재화하고 FDA의 강화된 품질관리 기준에 맞는 의약품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경영 철학처럼 고객사가 민감할 수 있는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사업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의 100%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와 자체 신약 개발을 모두 진행 중이다. 그런데 CDMO 업체가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비경쟁성’인 만큼 삼성바이오는 고객과의 이해 상충을 피하기 위해 삼성바이오에피스와는 별도의 경영진과 조직 구조를 기반으로 독립 경영 방침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가 24시간 실시간으로 고객사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게 공개한 것도 고객사의 ‘확장된 공장(expansion of their factory)’이라고 느끼고 언제든지 의구심이 생기면 눈으로 실시간 생산 및 개발 현황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이처럼 철저한 고객 중심 서비스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이제 삼성바이오는 글로벌 상위 제약사 20곳 중 17곳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다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ADC 등 신규 포트폴리오를 추가해 다각화에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회사는 현재 인재를 영입해 mRNA,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등 세포·유전자치료제(CGT)와 같은 다양한 모달리티의 개발 역량을 키우고 회사 차원에서 GLP-1 계열의 펩타이드 시장 잠재력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규 모딜리티의 경우 국내 인재풀도 협소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아직 이익이 나는 CDMO 회사가 거의 없어 얼마나 공격적으로 진출하거나 확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2) 셀트리온:
리더의 보부상 정신과 조직 정렬(alig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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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JP모건에서 셀트리온은 주력 사업이던 바이오시밀러 생산을 넘어 ADC와 다중항체 중심의 신약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며 구체적 청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13개 신약의 파이프라인과 임상 진입 계획을 밝힌 것이다.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는 “항체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은 이미 갖췄고 ADC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링커와 페이로드는 국내 기업과 협력을 통해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올해 4개 신약 후보물질 임상에 돌입하는 동시에 자회사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를 필두로 CDMO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2025년 한국 공장 건설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ADC와 CDMO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와 비슷한 시장에서 힘을 겨루게 된 것이다. 셀트리온의 매출 규모도 2년 전 2조3000억 원, 지난해(전망치 기준) 3조5000억 원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삼성바이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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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의 강점은 작은 벤처에서 출발해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들과 차이가 있다. 삼성바이오가 삼성전자의 성공 방정식을 복제해 운영 효율화와 최적화로 승부를 보고 있다면 셀트리온의 경우 시스템보다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의존이 크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이다. 서정진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전 조직이 하나의 목표를 중심으로 정렬(alignment)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회사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조직 체계 및 시스템의 미흡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체질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다 회사의 목표에 맞게 빠르게 진열을 정비하는 데 특화돼 있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특히 서 회장이 단순하게는 ‘좋은 약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번다’ ‘세계적인 제약사가 된다’ 등의 명료하고 공감하기 쉬운 기업 미션(mission)을 중심으로 전 조직과 전 직원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온 게 주된 성장 동력이다. 리더십이 목표 달성을 향한 민첩한 조직 동원을 가능케 하고 있는 셈이다.

한 업계 CEO는 “셀트리온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 객관화가 되는 회사”라며 “강력한 구심점 아래 시장을 개척해 온 게 회사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경영 일선에서 잠시 떠났던 서 회장이 2023년 2년 만에 복귀한 것도 바이오시밀러 판매를 통한 안정적인 현금흐름 창출에 머물지 않고 신약 개발, CDMO, M&A 등 신성장 동력 발굴과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를 향해 조직의 방향타를 잡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서 회장이 직접 발로 뛰면서 북미, 남미, 유럽을 아우르는 글로벌 판매망을 뚫고 있는 것도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 영역이다. 10조 원 이상 자산가인 오너가 쪽잠을 자고 주말 없이 강행군을 이어가며 글로벌 현장에서 병원 이사장을 만나고 영업 최전선에서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보다 더 큰 우리의 자산은 직판 능력이고, 직판망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이 따라오기 힘들다”며 “판매망을 구축하기까지 힘은 들었지만 돈 버는 재미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부상 정신으로 발품을 팔다 보니 시장이 열렸다”고 자평했다. 직판 역량을 토대로 의약품 유통사에 내주던 30%에 달하는 마진 손실을 줄이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빠르게 해외 시장에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이 오리지널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를 모두 판매하는 셀트리온의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CDMO 진출에 있어서도 셀트리온그룹의 전략은 경쟁사와 구별된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빅파마를 주요 고객 기반으로 삼는 대형 CDMO와 달리 셀트리온그룹은 영세한 바이오테크를 지원하는 ‘성장 파트너’로 회사를 포지셔닝했다. 서 회장은 “CDMO 사업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와 논문은 있지만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창업가들을 만나 파트너가 돼주려고 한다”면서 “CDO(위탁개발)로서 개발을 도와주고, CRO(위탁임상)로서 임상을 도와주고 생산시설도 제공하면서 좋은 아이템을 가진 사람들을 사업 파트너로 삼겠다”고 말했다. 제2, 3의 셀트리온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CDMO 시장의 주도적 사업자들은 핵심 고객사인 빅파마와의 장기적인 관계 유지와 발전에 주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바이오테크 입장에서는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론자나 삼성바이오에 물량을 맡기고 싶어도 자금 부담이 크고 협상력이 약할 것을 우려해 엄두를 못 내기도 한다. 이런 애로사항을 간파한 셀트리온은 바이오테크의 니즈를 이해하고 고충을 해소해줄 수 있다는 점을 앞세우며 차별화에 나섰다. 이 같은 동반 성장 모델은 자금 여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바이오테크에 특히 매력적일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싶어 하는 바이오테크 입장에서는 임상, 허가, 상업 생산부터 글로벌 영업까지 직접 다 경험해 본 셀트리온이 우수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셀트리온도 ADC와 다중항체 등 사내에 부족한 기술을 협력사로부터 수혈할 수 있다. 셀트리온 입장에서도 유망 신약 개발 회사와 일찌감치 파트너십을 통해 협업하고 성장을 지원하면 그들의 신약 개발 노하우를 학습해 내부화하는 한편 향후 생산까지 연결해 잠재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서진석 대표는 이어 “시장이 어려울 때가 좋은 M&A 매물을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자금이 필요한 바이오테크에 지분 투자를 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물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셀트리온은 CDMO 진출과 M&A를 신생 바이오테크와의 상생 및 시너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자체 설비투자(Capex)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사 상품의 생산 역량을 확충하는 동시에 여유 설비로 다른 바이오테크들의 물량까지 소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셀트리온그룹이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을 모두 개발하는 회사로서 CDMO 고객사들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 즉 이해 상충의 가능성은 신규 수주의 걸림돌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서 회장은 “바이오는 기술이 대부분 지식재산으로 보호돼 있고 특허 복제가 쉽지 않다”면서 “또한 바이오테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셀트리온도 이미 대부분 보유하고 있고 BMS나 테바 등 글로벌 제약사 수주 경험도 있기에 충분히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울러 셀트리온은 신약 후보물질이 남다른 개발 속도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지만 바이오시밀러로 성장해 온 회사가 가열되는 ADC와 다중항체 신약 개발 경쟁 속에서 얼마나 기술 우위를 점하고 속도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 입증해야 한다.

3) SK바이오팜:
틈새(niche)시장을 개척해 프랜차이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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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디지털 헬스케어와 AI 활용 전략과 관련해서는 SK바이오팜의 성과가 눈에 띄었다. 올해 JP모건에서 SK바이오팜은 남미 최대 제약사인 유로파마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해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결합한 AI 기반 뇌전증 관리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뇌전증 분야에서 누구나 떠올릴 수 있고 진단부터 예방,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종합 프랜차이즈 기업으로서 환자의 전 주기 관리를 책임지겠다는 계획이다. 뇌전증 환자는 급작스런 발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없을 때 급성 발작이 일어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AI 플랫폼을 활용하면 발작이 일어나는 상황을 예측해 환자와 보호자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환자 접점 플랫폼을 확보해 디지털 헬스케어를 단순히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제약 가치사슬의 핵심 요소로 삼겠다는 게 SK바이오팜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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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행보는 SK바이오팜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뇌전증 치료 시장 한 우물을 파면서 축적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핵심 사업에서 파생된 비즈니스라는 뜻이다. SK바이오팜은 2000년대 초부터 몸집이 큰 글로벌 제약사와 정면 승부해야 하는 큰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틈새(niche)에 있는 뇌전증 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알츠하이머처럼 임상 성공률이 낮고 경험과 자본을 갖춘 빅파마도 실패를 거듭하는 고위험 시장 대신에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높은 뇌전증 치료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 온 것이다. UCB S.A., 재즈 파마슈티컬 등 선발 주자가 있는 뇌전증 치료 시장에 진입하되 발작을 완전히 제거하는 비율을 유의미하게 높인 ‘계열 내 최고(best-in-class)’ 신약 ‘엑스코프리’로 확실하게 차별화해 왔다.

이처럼 암, 비만 등에 비해 규모는 협소하지만 미충족 수요가 있고 다양한 중추신경계(CNS) 질환으로 확대 가능한 뇌전증 시장에서 20년 이상 치료제 개발에 몰두한 결과가 이제야 SK바이오팜의 상업적 성과로 가시화하고 있다. 토종 신약인 엑스코프리 호조에 힘입어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연 매출을 내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종합 AI 플랫폼과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확장 역시 엑스코프리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환자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해외 제약사에 의존하지 않고 긴 기다림을 견디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은 경험을 발판 삼아 진출할 수 있었던 사업이란 의미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하려면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현지 의료진 및 병원과의 협업이 핵심인데 신약을 직접 개발해 본 기업만이 의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의사들 입장에서도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IT 회사나 의료 장비, 의료 기기 회사보다는 실제 약을 개발해 보고 병에 대한 이해가 있는 회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들로부터 ‘왜 약을 팔면서 쌓인 환자 데이터가 있는데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과 협업 제의를 수차례 받아왔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엑스코프리가 성공적으로 미국 FDA 문턱을 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철저한 ‘현지 시장 중심’의 접근이 있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고 미국 기업들의 온쇼어링(On-shoring)과 리쇼어링(Re-shoring)12 본격화 등 제약 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개발부터 판매까지 미국 시장에 최적화된 전략을 수립하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 개발 단계부터 핵심 타깃 시장인 미국 법인에서 임상과 허가를 진행한 바 있다. 나아가 상품 판매에 있어서도 유통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미국을 중심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미국 직판망을 뚫고 있다는 점에서는 셀트리온의 접근방식과 유사하다.

이동훈 사장은 “BMS,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사와 합작사를 세우지 않고 직접 세일즈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SK그룹 차원의 장기적인 안목이 있기에 가능한 결단”이라면서 “단기 성과가 중요한 전문경영인이 투자 회수에 수년이 걸릴 것을 감수하고 판매망을 뚫는 데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오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오랜 기간 투자해 온 오너의 지원 사격이 신약 개발 및 허가를 넘어 판매에서도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그룹 차원의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에 따라 이동훈 사장도 현재 전미 10개 지역에 퍼져 있는 100여 명의 현지 영업맨과 스킨십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미국 시장에서 엑스코프리를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 원 이상 의약품) 반열에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업의 핵심 열쇠인 지점장들을 관리하고 동기부여해 엑스코프리 매출을 확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와의 통합, 즉 AI 엔진 개발과 고도화도 미국에서 진행한다. 이 사장은 “미국 현지에서 임상을 책임지는 PI(Principal investigatior, 책임연구자)같이 영향력 있는 의사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처방 경험이 쌓여 용량에 대한 감이 생기고 발작 소실 등 약효를 관찰한 의사들이 엑스코프리를 지속적으로 처방하고 있는 만큼 2029년까지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뇌전증 시장에서는 가치사슬을 서서히 완성해 가고 있지만 회사의 매출이 단일 제품(One Product)에 의존한다는 점은 SK바이오팜의 한계로 꼽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가 떠안고 있는 과제는 후속 제품(Second Product)의 개발이다. SK바이오팜은 차기 제품 개발에 있어서도 뇌전증 분야에서의 성공 경험을 살려 규모가 큰 시장보다는 글로벌 제약사와 견주어 경쟁력이 있을 만한 틈새시장에서 기회를 물색하고 있다.

현재 차기 파이프라인으로 구상하고 있는 RPT(방사성의약품 치료제)와 TPD(표적단백질분해기술) 시장에는 아직 압도적인 선발 주자나 시장 주도적 사업자가 없다. 이에 경쟁사와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추월도 가능한 시장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이 분야의 후보물질 도입과 계약 등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활용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 온 SK바이오팜은 기존의 저분자 약물 중심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새롭게 확장하는 RPT, TPD 신약 개발 영역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AI 기술에 많은 자원을 쏟고 있는 SK그룹의 전략적 방침에 따라 AI 활용이 필연적인 숙제인데 더 복잡한 약물 기전과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RPT, TPD 영역이야말로 AI 활용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SK바이오팜은 2018년부터 일찌감치 20여 년간 축적한 자체 화합물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왔다. 디지털 헬스케어팀을 두고 SK그룹 IT 계열사 전문가들의 지원사격을 받아 2020년 자체 플랫폼을 도입, 연구 현장에 투입해 왔다. 이 사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RPT나 TPD 같은 구체적인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AI를 적용하기로 했다”면서 “구글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 분야를 혁신한 것처럼 더 복잡한 분석이 필요한 신규 모달리티에 특화된 AI 플랫폼을 확보해 연구 효율성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 기회로 해외 시장 문 두드려야

이처럼 국내 기업들도 바이오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미래 먹거리를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에 뒤늦게 합류하는 회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령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3년 BMS가 보유하고 있던 미국 뉴욕주의 시러큐스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약 2000억 원에 인수한 뒤 ADC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있으며 JP모건에서 ADC 플랫폼 ‘솔루플렉스 링크’를 처음 공개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부사장이 직접 참석해 제임스 박 신임 대표와 함께 고객사 미팅을 챙기기도 했다. 다만 경쟁이 심해지는 환경에서 시러큐스 공장의 운영 및 품질 관리 시스템을 학습해 수주 이력을 만들고 ‘롯데’ 브랜드를 각인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SK바이오팜, 유한양행 등 토종 신약을 상용화해 블록버스터 제품 판매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긍정적이다. 올해 JP모건에서 J&J 호아킨 두아토 CEO도 “(유한양행의)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병용요법은 시장에서의 잠재력이 저평가된 약물”이라며 “기대수명이 3년이던 폐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1년 이상 연장하는 성과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런 한두 개의 신약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블록버스터급 약물이 더 출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신약 개발보다 CDMO에 더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변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제기된다. 바이오 투자 시장이 점점 더 안정적인 후기 임상 단계 기업을 선호하고 보수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이 위험을 분담하고 신약 개발에 더 투자해 혁신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거세지는 미·중 갈등과 생물보안법 입법 추진으로 중국이 위축되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표적 약물을 발굴하고 혁신을 시도하는 한국 기업엔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릴 적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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