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중국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일찍이 적극적인 해외 우수 인재 유치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에 발맞춰 중국 민간 기업들 역시 채용, 보상, 조직문화, 인재 육성에 이르기까지 HR 관행을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가며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금전적 보상을 뛰어넘는 임직원 가치 제안(Employee Value Proposition)에 주력하는 한편 혁신 주도형 조직문화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런단허이(人单合一)’라는 독특한 조직문화를 도입해 기업 전체를 4000여 개 스타트업으로 쪼개며 날렵한 조직으로 변모시킨 하이얼이 대표적이다. 특히 개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북돋아 조직 전체가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이끄는 ‘능동적 진화(He Principle, HP)’, 합리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을 관리하는 ‘최적화된 설계(Xie Principle, XP)’를 강조하는 ‘조화관리이론(HeXie Management Theory, HXMT)’은 런단허이 모델의 탄탄한 이론적 근간이 되며 하이얼의 경영 혁신을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인재 위기, 기업 생존 넘어 국가 미래 위협기업은 현재 초연결(hyper-connectivity)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초지능(hyper-intelligence)의 거센 물결을 마주한 채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이라는 짙은 안개를 헤쳐 나가고 있다. 이른바 ‘3초 시대(3-Hyper Era)’를 살고 있는 경영자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하는 수많은 변수와 경영 환경을 둘러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들을 고려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VUCA 세계’에서 지금까지 부단히 잘 헤쳐 나가나 싶었는데 이제는 ‘3초 시대’를 둘러싼 환경에서 경쟁과 생존을 고민해야 하니 경영자들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다.
경영자들은 가치 제안, 고객, 제도, 기술 발전 등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 요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동시에 초연결, 초지능, 초불확실성 시대를 헤쳐 나가는 당사자는 결국 ‘사람’이라는 본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생성형 AI로부터 개인 맞춤형 아이디어와 조언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이런 정보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경영을 수행하는 주체는 바로 사람, 즉 기업의 임직원들이다. 사람 관리(people management)는 기업의 성공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제고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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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관리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과 산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아킬레스건으로는 단연 핵심 인력 부족 문제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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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더불어 숙련된 노동력과 핵심 인재 이탈은 한국 기업과 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은퇴를 하든, 해외로 떠나든 산업의 주역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새롭게 떠오른 신산업의 주인공들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커튼 뒤로 퇴장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특히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 AI, 소프트웨어, 바이오·헬스 등 첨단 분야에서의 핵심 인재 확보는 이미 시급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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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재 위기는 단순히 핵심 인력의 부족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산업 및 국가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기업들의 혁신 역량 저하, 이로 인한 중장기적인 기업의 생존 문제, 뒤이은 산업 전반의 경쟁력 하락까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과 산업계는 시장점유율 하락, 수익성 악화, 혁신 동력 상실 등의 난맥을 좀처럼 뚫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장기적인 인재 위기까지 닥친다는 것은 곧 한국 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야 할 주체들이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의 핵심 인재들과 두뇌들이 빠져나가는 소위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인재 유출은 곧 지식과 기술, 그리고 경험이 동반 유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는 국가 안보와 경제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지식과 기술도 포함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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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국에 유입되는 이공계 인력은 매년 4000명 수준으로 정체돼 있는 반면 유출되는 인력은 연간 4만 명에 이른다. 자원도, 시장도 기댈 곳 없는 환경에 갇혀 있는 한국은 이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와 핵심 기술까지 해외로 대거 유출되는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중국 정부와 기업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일찍이 적극적인 해외 우수 인재 유치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에 발맞춰 중국 민간기업들 역시 채용, 보상, 조직문화, 인재 육성에 이르기까지 HR 관행을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가며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단순히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으로 인재를 유인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들은 표면적인 현상을 너머 중국의 인재 전략과 사례들이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이 직면한 인재 위기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격랑의 ‘3초 시대’와 ‘VUCA 세계’를 헤쳐 나갈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미래를 위한 포석,중국 정부의 인재 확보 프로그램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는 데 있어 핵심 인재가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국내외 전문 인력을 유치하고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핵심 인재 확보에 대한 중국의 절실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마련한 여러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인재 확보를 위한 큰 그림을 직접 그리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표 1)
먼저 1994년 시작한 백인계획은 인재를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중국 장기 전략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중국은 계획 경제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에 막 뛰어들던 시기였다. 과학기술 없이는 경제 발전도 없다는 신념 아래 중국 정부는 해외 선진 지식과 경험을 도입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백인계획을 시작했다. 이 계획은 중국과학원 등 주요 연구기관이 주도하며 100여 명의 소수 정예 해외 인재 확보에 초점을 맞췄고 이후 다양한 인재 유치 정책의 본보기이자 시금석이 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후 2008년 등장한 천인계획은 글로벌 혁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온 카드였다. 해외에 있는 중국인 전문가들을 자국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외국인 전문가들도 중국의 기술 발전에 기여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계획의 특징은 높은 연봉, 연구비, 주택, 자녀 교육 등 전방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비자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소위 ‘VIP 모셔오기’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다. 주로 성과가 검증된 중견급 이상 리더를 타기팅했다. 이 계획으로 한국 인재가 유출되기도 했다. 천인계획에 참여해 지난 10년간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의 핵심 인재는 교수, 연구원, 학자를 포함해 최소 13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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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대부분은 AI,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 분야에서 핵심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인재들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2012년 중국은 만인계획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다수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천인계획이 해외 엘리트에 집중했다면 만인계획은 자국 인재를 포함해 과학기술, 인문사회,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잠재력 있는 고급 인재를 대규모로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해 혁신 및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계획의 특징은 자국 인재 발굴 및 육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천인계획과 연계해 인재의 양적·질적 수준을 동시에 제고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치밀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계명성계획은 중국 중앙정부의 거대 계획을 보완하면서 지역 또는 특정 연구기관 차원에서 잠재력 있는 젊은 과학기술 인재를 조기 발굴해 연구 환경과 자원을 집중 지원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 계획의 특징은 미래 핵심 인재의 씨앗을 키우는 지역 기반의 풀뿌리 인재 양성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지역별 특화 산업 및 연구 분야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며 중앙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기 어려운 지역의 인재 양성 시스템을 보완해준다는 특징을 가진다.
중국 기업 HR의 4대 트렌드앞서 살펴본 중국의 대표적인 인재 확보 프로그램들은 각기 다른 시기와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으나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며 미래 혁신과 경쟁력을 위한 시너지를 창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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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 정부가 주도해온 이런 인재 확보 및 육성 정책들이 중국 기업들의 HR 관행에도 강력한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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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인재들이 몰리면서 중국 기업들은 이들을 붙잡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채용 방식부터 보상, 육성 전략까지 전반적인 HR 관행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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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기업 HR의 주요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벌 인재 확보가 일상화됐다. 중국 정부가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중국 기업들 역시 이들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인재 발굴과 외국인 핵심 인력 채용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화웨이의 ‘천재 소년(Top Minds)’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가 컴퓨터, AI, 수학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2019년 시작한 글로벌 인재 확보 프로젝트다. 나이, 학력, 경력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업적을 보이고 두각을 나타낸 인재를 별도 선발해 최고 4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 회장은 이 인재들을 두고 조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며 외부 인재 수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둘째, 금전적 보상을 뛰어넘는 임직원 가치 제안(Employee Value Proposition)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높은 연봉과 연구비는 사실상 기본값이 돼버린 상황에서 여기에 더해 개인의 성장 기회, 업무와 관련된 전폭적인 리소스 지원은 물론 유연한 근무 조건과 주택 제공 및 자녀 교육 지원 등 종합적인 임직원 가치 제안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일례로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업체인 CATL의 핵심 R&D 직원들은 한국 대기업 연봉의 3∼4배에 달하는 기본적으로 높은 연봉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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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스톱옵션뿐만 아니라 최첨단 연구시설과 연구의 자율성 및 글로벌 공동연구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충족되기 힘든 핵심 인재들의 내적 근무 동기를 강화시키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미래 인재 파이프라인의 선제적 확보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도입한 계명성계획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기업 차원에서도 선제적으로 움직여 미래 인재 확보와 육성에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규모의 검색엔진 및 포털 사이트 개발업체인 바이두는 AI 분야 선두 주자로 ‘바이두 스칼러십’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진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3년 시작한 바이두 스칼러십은 매년 컴퓨터 과학 및 AI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중국 학생 8∼10명을 선정해 2년에 걸쳐 20만 위안(한화 약 4000만 원)의 연구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AI 교육 플랫폼 ‘패들패들(PaddlePaddle)’을 론칭해 대학과 공동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를 개발자들을 위한 허브로 활용해 자체적인 개발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 주도형의 조직문화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정부 차원에서 혁신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중국 기업들 역시 R&D뿐만 아니라 각 가치사슬에서의 성과를 내기 위한 혁신 중심의 조직문화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판매량 기준 세계 1위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하이얼(Haier)은 직원과 회사, 직원과 고객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도록 하는 ‘런단허이(人单合一)’라는 독특한 조직문화를 도입하면서 조직 전체를 스타트업으로 쪼개 날렵한 조직으로 변모시켰다. 런단허이 모델은 특정 기회나 과제를 중심으로 5∼20명 규모의 직원이 모이도록 하는 한편 대규모 사업부를 ‘샤오웨이(小微)’라 불리는 스타트업으로 쪼갠다. 현재 하이얼에는 40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 아웃싱커 네트워크스(Outthinker Networks)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조직 모델을 채택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1.5배 더 직원들의 기업가적 행동을 촉발하고, 1.3배 더 나은 재무 성과를 달성하며, 우수 인재를 1.2배 더 잘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0
실제로 4000여 개에 달하는 하이얼의 사내 스타트업은 직원들이 고객과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자율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의사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빠른 혁신을 촉진할 수 있었다. 이런 하이얼의 런단허이 모델은 직원과 회사, 직원과 고객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도록 하는 조직문화 혁신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11
하이얼의 ‘런단허이’와 조화 경영이제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서구식 경영 모델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3초 시대’와 ‘VUCA 세계’의 높은 파고를 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기술, 불안정한 국제 정세,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소비자 요구 속에서 기업들은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중국 기업은 정부의 정책 기조와 발맞춰 HR 전략을 구사해 나가는 동시에 생산성 향상과 생존을 위해 개인의 목표와 조직 전체의 목표를 긴밀히 결합시켜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 위기는 조직과 개인 간의 목표 설정 불일치, 직원들의 부족한 주도성,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과정 같은 내부 관리 문제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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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외부 충격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일궈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중국 기업은 개인의 목표와 조직 전체 목표의 긴밀한 결합이 임직원들의 몰입도를 강화하고 조직의 민첩성과 혁신을 촉진해 치열한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배우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과 조직의 ‘조화(和谐, harmony)’라는 가치에 기반한 중국의 전통 철학과 이를 오늘날 경영 상황에 맞게 적용시키는 독특한 ‘중국식 경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전통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조화’ 사상을 현대 경영 기법과 버무려 개인과 조직 간의 조화로운 균형점을 구축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셈이다.앞서 살펴본 하이얼의 런단허이 모델은 개인과 조직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대표 사례다. 이 모델은 ‘개인과 기업 목표의 통합’ 또는 ‘개인과 기업의 목표가 결합해 서로 윈윈(win-win)하는 모델’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런단허이는 단순히 시키는 대로 일하는 기존의 고용 관계와 딱딱한 피라미드 조직 구조를 허물고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치를 만들고 성공을 나누는 운명 공동체를 지향하는 경영 철학이다. 하이얼에서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人)이 고객의 가치(单)와 직접 연결된다. 직원들은 스스로 팀을 이뤄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발 빠르게 파악해 해결책을 내놓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간다.
일례로 소비자에게 원스톱 요리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하이얼 직원들은 함께 뭉쳐 자체적으로 스타트업을 조직했다. 그 결과 주인을 인식하는 스마트 레인지와 정확한 시간에 맞춰 레서피를 제공하고 사용자들이 레인지 후드에 달린 스마트 스크린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서비스 등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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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단허이의 핵심은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혁신 기회를 제공해 마치 자신의 사업을 일궈 나가는 것처럼 주도적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숨겨진 잠재력과 창의성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영 철학을 통해 하이얼은 끊임없이 혁신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런단허이의 이론적 뿌리, ‘조화관리이론’물론 하이얼의 성공은 단지 내부 혁신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은 수천 개에 달하는 내부 스타트업이 실시간으로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줬다. 또한 제조업 혁신을 적극 지원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하이얼이 거대한 혁신 생태계로 거듭나는 데 큰 힘이 돼줬다. 해외에서 영입된 뛰어난 인재들도 이런 조직문화 생태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런단허이의 근간을 이루는 ‘조화관리이론(和谐管理理论, HeXie Management Theory, HXMT)’이라는 탄탄한 이론적 뿌리도 하이얼의 경영 혁신을 뒷받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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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시안교통대의 시유민(席酉民) 교수가 처음 제시한 조화관리이론은 중국 경영학계가 오랜 고민과 현장 경험을 통해 다듬어 온 중국 고유의 경영 이론이다. 이 이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나아가 사람과 자연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조화로운 공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전체적인 균형과 조정을 통해 최적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이런 조화관리이론의 가장 큰 매력은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과학적 경영 기법을 절묘하게 융합했다는 점이다. 이 이론은 ‘인간은 오직 경제적 이익만을 좇는다’는 서구 경영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올해 1월 ‘중국 철학 및 사회과학 10대 독창 학술 이론’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화관리이론은 조직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조화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바로 ‘능동적 진화(He Principle, HP)’와 ‘최적화된 설계(Xie Principle, XP)’다. 능동적 진화란 구성원 각자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활용해 조직 내 창의성과 긍정적 행동을 유도하며 조직의 자생적 진화와 문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최적화된 설계란 합리적인 제도 및 프로세스 설계를 통해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고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것이다.15
즉 구성원의 주체적 역량을 끌어내 창의적 행동을 유도하는 사람 중심의 능동적 유도 메커니즘(HP)과 조직 운영의 효율성 및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시스템 중심의 통제 메커니즘(XP)을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병행하며 조직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조화관리이론의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조직 관리는 다음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전개돼야 한다. (그림 1)
1. 조화 주제 설정(HeXie Theme, HT): 경영 환경을 둘러싼 환경 분석과 조직의 전략적 방향성을 토대로 지금 우리 조직에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한다.
2. ‘화(和)’의 원칙 활용(He Principle, HP): 조직 구성원들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촉진하기 위해 유연한 환경과 문화,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내재된 동기와 능력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도록 유도한다.
3. ‘해(谐)’의 원칙 활용(Xie Principle, XP): 조직의 질서와 안정성을 유지하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자원 배분의 최적화, 표준화된 시스템 설계 및 절차 중심의 통제 장치를 마련한다.
4. 조화로운 결합(HeXie Coupling, HX): 조직의 내·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HP와 XP의 비중과 작동 방식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며 사람 중심의 유도 메커니즘과 시스템 중심의 통제 메커니즘이 최적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는 조직의 역량과 구조를 함께 진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성과 달성에 기여한다.
실제로 비야디(BYD), 샤오펑(XPeng), 링파오(Leapmotor) 등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며 보여준 전략은 조화관리이론의 실제 적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 기업은 임직원들의 R&D 역량을 통해 전기차 기술과 스마트 기능 같은 혁신을 강력히 추진(HP)하는 한편 유럽의 높은 관세와 까다로운 데이터보호법, 현지 생산 요구 등과 같은 엄격한 규제 환경에 철저히 적응하는 모습(XP)을 보여줬다. 이는 ‘사람 중심의 혁신(HP)’과 ‘시스템과 규칙을 통한 안정성 확보(XP)’라는 두 가지 가치를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운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DBR mini box I: 조화관리이론을 실제 적용해 본다면?
직원 자율적 아이디어 채택… 실행 가능한 프로세스 설계해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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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 조화관리이론을 실제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아래는 조화관리이론 프레임워크 5단계를 가상의 한국 기업 마케팅팀에 구체적으로 적용해본 예시다.
1. 명확한 핵심 과제 정의 [HT 정의]
소비자 니즈 조사 및 조직 내부의 가용 자원 분석 등을 바탕으로 마케팅팀의 향후 방향성을 ‘친환경 제품 인지도 ××% 증가’로 설정한다. 이후 팀 워크숍을 통해 “우리 회사를 업계의 지속가능성 리더로 인식시키자”라는 비전을 팀원들과 공유하고 관련 캠페인 추진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2. 자율성과 창의성 유도 [HP 활성화]
팀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환경 캠페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팀원들에게 소비자와의 직·간접적 소통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슬랙(Slack)과 같은 협업 플랫폼을 통해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한다. 브레인스토밍과 투표 과정을 거쳐 ‘DIY 재활용 챌린지’ 캠페인이 최종 채택되고 아이디어를 낸 팀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율적 참여를 더욱 독려한다.
3. 실행 가능한 구조와 프로세스 체계화 [XP 설계]
선정된 캠페인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구조와 절차로 구체화한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게시물 업로드→담당자 인증→모바일 앱 회원 인증→CRM 시스템 연동→그린 포인트 지급’이라는 일련의 워크플로를 수립한다. 이 과정에서 IT 부서 등 타 부서와의 협업 체계도 필요하다면 함께 설계하고 전체 캠페인의 타임라인, 예산, KPI(예: 월간 팔로워 참여자 수 500명)도 명확히 설정한다. 이런 XP 설계는 창의적인 HP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HT 달성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역할을 한다.
4. HP와 XP의 동적 균형 [HX 조율]
약 1∼2주간의 파일럿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주간 팀 리뷰를 통해 전략을 조정한다. 팔로워 참여율 저조 시 HP를 활성화해 추가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해본다. 반대로 XP 측면에서 일부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고객 접점을 직관적으로 개선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HP와 XP의 유기적 균형을 조율함으로써 조직 내 창의성과 시스템 간의 최적화된 상호작용, 즉 HX를 달성하며 핵심 과제를 실현한다.
5. 성과 평가 및 개선 방안 도출 [HXMT 최적화]
캠페인 결과를 평가하고 향후 캠페인을 위한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단계다. 캠페인 전후 설문을 통해 HT 달성 여부를 점검하고 성공 및 실패 요인을 분석한다. 예컨대 HP 기반의 창의적인 초기 캠페인 전략이 소비자 주목도 제고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후반부 XP 설계 미비(CRM 시스템 연동 오류)로 인해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불만이 발생했다는 점을 파악한다. 이런 성찰을 기반으로 향후 캠페인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가이드를 수립한다. 예를 들어 초기 HP에 집중했던 자원을 중후반 XP 단계에 더 할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조화관리이론(HXMT)은 단순히 전략 수립을 넘어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꾸준히 학습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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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재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1. 선제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노력중국의 인재 전략은 인재 확보를 위한 정부의 선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정책적 노력이 민간기업 등 개별 경제 주체들에게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중국은 백인계획을 시작으로 최근 계명성계획에 이르기까지 인재 확보 및 양성이라는 일관된 전략 아래 국내외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혁신을 견인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한국 정부의 ‘지역 맞춤형’ 광역형 비자 제도와 외국 고급 인재 ‘무제한 거주’ 톱티어 비자 시행 소식은 고무적이다. 지역 맞춤형 비자를 통해 지역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인재를 수혈할 수 있고 톱티어 비자는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분야 인재의 문호를 개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톱티어 비자의 신청 자격은 세계 100위권 이내 대학 석박사 학위 취득자로 연 1억4000만 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경우로 한정한다고 하니 해외에 있는 고급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재 확보를 위한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이 한국 기업의 HR 관행과 미래 노동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2. 한국에 맞는 유연한 적용‘3초 시대’와 ‘VUCA 세계’에서 중장기 생존 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정부 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결국 인재들이 머리를 맞대야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미래의 경영 환경을 그나마 효과적으로 예측하며 헤쳐 나갈 수 있다. HR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중국 정부가 취해온 주요 인재 확보 프로그램들과 중국 민간기업들이 강조하고 있는 HR 전략, 그 밑바탕에 깔린 중국 고유의 조화관리이론을 한국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이 처한 정치적 환경과 경영 환경, 노동시장이 매우 상이한 탓이다. 실제로 정부 주도의 하향식 변화가 강한 중국과 달리 한국은 민간의 자발적인 혁신과 변화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상향식 동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엇보다 선행돼야 하는 작업은 개별 조직이 속한 업계와 조직 고유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글로벌 HR 트렌드를 어떻게 벤치마킹할지, 조화관리이론의 핵심 원리인 ‘사람과 시스템의 조화’를 조직의 실정에 맞게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앞서 살펴본 임직원 가치 제안 등 중국 기업들의 HR 전략은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단기적인 인재 유인책으로 도입됐다가 흐지부지되고 있는 건 아닌지, 단기적인 성과 지표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닌 HR 전략이 조직의 인재 철학과 시스템 전반에 얼마나 깊이 내재화돼 있는지, 나아가 인구구조 변화 및 신성장 동력 확보 같은 국가적 과제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는지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채용 및 보상과 같은 개별 HR 관행들을 각각 살펴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핵심 인재의 확보-육성-활용-유지까지의 전 과정이 하나의 일관된 시스템과 철학 아래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뒤처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수준인지 냉정하게 평가해봐야 한다. 조화관리이론 관점에서 우리 조직이 임직원 중심의 혁신(HP)과 제도적 장치 및 프로세스(XP)가 상호 역동적인 균형과 시너지를 이루는 소위 ‘양손잡이 조직’이 되기 위해 얼마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중요한 성찰 포인트다. 이제는 단순한 모방이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성숙을 바탕으로 한 내실 있는 인재 전략에 집중해야 할 때다.
3. 최고 수준의 보상이 전부가 아니다중국의 인재 전략이 기업 차원에서 줄 수 있는 또 다른 시사점은 글로벌 인재 채용과 최고 수준의 대우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재를 ‘확보’하거나 ‘유지’해야 할 자산으로만 보는 프레임을 탈피해야 한다. 단순히 외부 인재를 수혈해 새로운 혁신 엔진을 차용하는 것을 넘어 그 혁신 엔진이 조직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렵게 새로 영입한 인재들이 혹은 기존 핵심 인력들이 단순히 높은 연봉에만 만족하고 머무른다면 조직의 기대를 뛰어넘는 혁신은 요원할 수 있다. 게다가 MZ세대 이후 구성원들은 자율성과 성장 기회, 조직과의 관계성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하이얼 사례에서 엿볼 수 있었듯 직원들이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현하며 진정한 혁신과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하는 조화로운 내부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국의 인재 전략은 사람(HP)과 시스템(XP) 중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이 둘의 역동적인 균형과 시너지 작용이 바로 조화관리이론이 강조하는 핵심이다. 조직이 ‘시스템적 매력’과 ‘사람의 매력’을 조화롭게 결합해 나갈 때 비로소 임직원들은 조직과 자신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이에 투자하려는 동기를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이 글에서 논의한 관점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해온 기업들에는 더 깊은 질적 성찰의 기회를,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는 미래를 위한 HR 방향 설정과 실천 방안 모색에 있어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