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0년 주기로 발생한 두 차례의 금융위기는 한국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바꿔놓았다. 1998년 금융위기가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던 한국 기업에 비유기적(inorganic growth) 성장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국경 간 인수합병(cross-border M&A)’에 대한 열망을 낳았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외환위기 이전 14% 수준이었던 한국 기업의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평균 6%대에 머무르고 있다. 더 이상 국내에서 유기적 성장만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글로벌 인수합병(M&A)은 전략적 투자자가 단기간에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재무적으로도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KPMG가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림 1>의 비유기적 성장전략 가운데 글로벌 M&A는 신성장 동력과 글로벌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넘치는 사내 유보금과 외부 유동성을 바탕으로 해외기업 인수합병 시도를 점차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통계 수치는 해외 투자의 매력도가 높은 만큼 목표 대비 성공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기업 간 합종 교배가 활발한 해외에서도 예외가 없다. 2001년 <비즈니스 위크> 발표에 따르면 당시 조사 대상 M&A 302건 중 M&A 이후 개별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통합 회사의 시가총액이 더 큰 경우는 2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병된 회사 중 68%는 개별 회사의 시가총액이 더 크고 12%는 시가총액이 이전과 변함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최소 68%의 기업이 M&A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잘 다루면 매력적인 성장카드가 될 수 있는 전략적 M&A가 실패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서로 다른 문화 충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함으로써 조직 결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화권이 다른 해외 거래에서 이 같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란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M&A를 추진하는 많은 기업들은 인수 과정에서의 시간 지연, 프리미엄 상승, 추진 피로감 등을 이유로 문화 간 충돌에 대한 사전 대비작업을 소홀히 한다.
M&A 이후 조직통합=고난도 변화관리
조직 커뮤니케이션 이론상 M&A 이후의 조직 통합은 변화관리의 영역에 속한다.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흡수함으로써 혁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변화 절차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변화관리가 요구하는 성공 요소에 더해 이질적 조직 간 융화작업은 그 성공을 위해 이질적 문화 간 통합과 상이한 시스템 간 통합이라는 요소를 추가로 적시에 확보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이질적 문화의 통합은 동질적 문화 내의 혁신보다 더욱 어렵다. 따라서 전략 추진 단계부터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다. M&A는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절대 기밀엄수를 요구한다. 추진하는 기업 내부에서조차 추진단계에서 이를 아는 직원들은 최고경영진과 추진 태스크포스 정도다. 보통 이들은 인수를 위한 가치산정, 시너지 효과 분석, 협상, 실사라는 거래과정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때문에 단기간의 거래성사를 금과옥조로 받아들인다. 두 기업의 문화 충돌 방지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면밀한 조사와 계획은 언감생심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제약과 이상 간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솔직히 지름길은 없다. 그래도 시간·인력·재원 등 여건이 허락된다면 변화관리 황금률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존 코터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변화는 조직감정의 관리다. 흔히 감정관리라고 하면 조직원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사실 중요한 것은 조직원들 내부에 부정적 감정이 흐르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가장 성공적인 변화 프로그램은 가치(신념)를 매개로 대규모 조직 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이 연계를 정량적 목표와 연동해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플레시먼힐러드 CCW(Communication Consulting Worldwide)에서는 이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을 ‘MBO(Management By Objective) x MBB(Management By Belief)의 융합식’이라고 제언한다. (그림 2) 피인수기업 조직원들의 감정을 관리해 통합 이후 조직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에 연동시켜 같은 신념에 접속하도록 하는 게 이 융합식의 골자다. 이 작업이 선행된 후 통합 조직의 목표가 숫자로 명확하게 제시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키워드는 ‘예측 가능성’이다. 피인수기업의 모든 조직원, 혹은 최소한 핵심자산이 되는 조직원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기본 욕구’를 충족시킨 후 자연스럽게 새로운 조직에서 자아실현을 계획할 수 있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예측을 허락해야 한다. 이는 합병 전후의 명확한 목표 메시지와 상세 로드맵을 인수 직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해 인수·피인수기업 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변화 과정을 알리는 것으로 실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최소한 피인수 조직 내 변화의 중추 및 주변부의 감정을 관리하고 조직원 대부분으로부터 신뢰를 쌓은 후 가치(신념) 체계를 면밀하게 통합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림 3)
M&A 이후의 변화관리를 성공시킨 기업의 사례를 보면 변화관리추진팀을 신설해 실천의 중추역할을 맡기곤 한다. 팀은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내 핵심인재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초기 단계에는 주로 ‘문화실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양 사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이 간격을 좁히는 데 주력한다. 본격적인 ‘변화 전도사’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은 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 통합이 이뤄지는 시점부터다. 변화관리추진팀의 주요 과제는 1)변화를 위한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조직 내에 알림 2)대화 촉진 3)다양한 프로젝트의 조정과 정돈 4)메시지, 활동, 정책, 행동들이 부합하는지 여부의 모니터링 5)집단 지성의 발현을 통한 새로운 창조의 기회 기획 및 실행 등이다. 종합하면 변화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 전체 학습과 창조를 위한 설계자, 촉진자, 코치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사전에 면밀한 조사를 거쳐 거대한 통합의 문화 융합 시나리오까지 수립하는 게 여건상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조직문화의 유형과 이에 따른 핵심 메시지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문화갈등을 피하고 효과적인 융합의 줄기는 잡을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이를 인수합병 대상의 유형별로 정리한 후 각 유형에 맞는 조직문화 통합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