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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십이 답이다

오너십을 확보하고 싶은가 나무 아닌 숲을 보여줘라

김정수 | 218호 (2017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오너십’의 필요조건은 그 사안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아무리 업무처리 능력이 우수하다고 해도 문제의 전후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너십을 가지고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렵다. 따라서 상사든, 부하든 상대방이 오너십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무작정 짧게, 빨리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는 명료하되 스마트하게 핵심을 전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상대방과 보고주제의 본질에 따라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외국계 기업 전략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한 부장에게는 때가 되면 돌아오는 이사회 안건을 챙기고 결정 사항들을 처리, 보고하는 것이 가장 큰 업무 중 하나다. 이사회에서 다루는 안건 자체가 워낙 중요하고 영향력이 크기도 하지만 이사진 한 명 한 명이 모두 경험이 많은 중량급 인사들이어서 회의 준비나 진행 자체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사회에 직접 참석해 논의 사항들을 들을 수 있는 인원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전략기획팀에서 한 부장 한 명밖에는 배석할 수 없다는 것도 큰 애로사항 중 하나다. 웬만한 회의들은 차장이나 과장들이 같이 들어와서 듣고 회의록도 작성할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사항들은 직접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알아서 후속 작업들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사회는 한 부장 한 사람만이 모든 논의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시 팀원들에게 잘 전달하고, 이사회에서 논의한 취지대로 일이 잘 처리됐는지도 직접 챙겨야 한다. 이번 정기 이사회도 전략기획팀에서는 한 부장만 실제 배석을 해서 논의 내용을 듣고 주요 내용들을 받아 적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 전 있었던 구매 비리 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사진은 이미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의 구매 시스템을 상세히 분석해올 것을 주문했고, 이 참에 회사의 구매 비리를 근절하는 것은 물론 경쟁사 대비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대책까지 수립하려고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나 구매 절차가 안건으로 올라오자 이사회장은 열띤 토론에 접어들었다. 구매팀장이 경쟁사와의 구매 효율성 비교 차트를 띄워 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꼼꼼히 뜯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경쟁사보다 같은 품목들을 5∼10%씩은 더 높은 가격에 구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이유를 들어 보니 경쟁사들은 시중에 다양한 공급사가 존재하는 품목들은 늘 공개 경쟁입찰에 붙여서 최저가 구매를 하되 공급사가 많지 않은 품목들은 특정 회사와 다년간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양사가 협조해 원가를 낮추기 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구매 품목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구매 절차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사진은 그동안 이런 구매 전략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 장시간에 걸쳐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구매를 한 부서에서 책임지다 보니 비리 발생의 소지가 높아진다는 점도 주요 지적 사항이었다. 구매 절차가 잘 갖추어진 다른 회사들은 앞의 예에서와 같이 품목 특성에 따라서 구매 절차를 달리 수립하는 이른바 ‘구매전략 부서’와 실제 구매를 진행하는 ‘실행 부서’를 나누어 운영함으로써 두 부서 간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했다. 납품업체들 입장에서도 어느 한 부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원가 경쟁력이 없으면 납품할 수 없다는 인식을 확실히 갖도록 권한을 적절히 분산시켜 놓았다. 하지만 한 부장이 소속된 회사의 경우 아직도 그런 견제와 균형이 없다 보니 납품업체들이 무리한 방법으로라도 납품 기회를 만들어보기 위해서 구매 부서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구매 부서와의 유착이나 비리 발생의 가능성이 높았졌다. IT 시스템도 문제였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고 웬만한 품목들에 대해 전산상으로 구매를 공지하고 여기에 입찰한 업체들이 제시한 가격이 IT시스템상에서 자동으로 비교가 돼 최저가 구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업계의 추세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아직 이런 과정들을 사람이 직접 처리하고 있었다. 이사회에서는 이 때문에 입찰가격이 사전에 유출되거나 최소한 그럴 수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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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문제 하나만 놓고 2시간 가까이 토론이 이어졌고,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이사회에서 논의된 모든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한 부장은 회의 내내 그 많은 내용들을 다 받아 적느라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팀원들에게 구매 절차 개선안을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내일로 미룰 수는 없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한 부장은 사무실로 올라가서 팀원들을 소집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에 팀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회의 탁자에 둘러앉았다. 한 팀장이 노트를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많은 내용을 다 전달해야 하나 고민하던 한 부장은 어차피 이사회의 분위기를 다 전달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빨리 지시 사항만 전달하고, 팀원들이 당장 해야 할 일들만 간략하게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기 말이야…. 할 일들을 전달해주겠어. 우선 구매부서를 구매 1팀과 2팀 2개 부서로 나누는 방안을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리고 구매 절차를 IT화해서 비리의 소지를 없애는 방안도 만들어보라고. 마지막으로 주요 납품 업체와 다년간 계약을 통해서 원가를 낮추는 협력 체계를 만드는 방안을 만들어보라는 지시야. 특별히 질문 없으면 이대로 진행하지.”

직원들은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어정쩡한 기분이었다. 사실 구매 비리 사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직원들에게는 제대로 공지가 안 된 상황이었다. 한 부장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은 이번 이사회에서 왜 구매 절차와 부서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많이 있었는지조차 그 배경을 알 수가 없었다.

한 부장이 퇴근하고 나자 차상급자인 노 차장 주변에 모여 앉아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간단한 회의를 가졌다. “왜 갑자기 구매에 대한 지시가 이렇게 많이 떨어졌을까요?” “구매 부서를 왜 2개로 나누라는 건지 혹시 아세요?” “전사적으로 IT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구매 시스템만 먼저 하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요?” “납품업체와 다년간 계약을 한다면 오히려 특혜 의혹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특정 업체만 다년간 계약을 해주면 지금과 같이 건별로 공개 입찰을 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어긋날 텐데요.”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부장님이 떠나고 그 자리에 모인 5명은 아무리 서로 머리를 맞대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업무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결국 노 차장이 정리를 했다. “왜 구매 얘기가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홍 과장은 구매부서가 2개 이상으로 나누어져 있는 업체들에 대한 사례 조사를 하고, 최 대리는 구매 IT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봐. 박 대리는 다년간 계약을 해줄 만한 우수 납품 업체를 선정할 방법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고.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그렇게 해보자고.” 다들 헤어져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도대체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이었고, 자신들이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기 위해서 조사와 분석을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이 통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이들이 암묵적으로 내린 결론은 일단 지시 사항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부장님에게 보고를 하고, 그 다음 또 부장님이 하라는 방향으로 추가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자, 일단은 조사를 해서 정리가 되는 대로 부장님께 보고하고 그 다음 어떻게 할지 여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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