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마틴 서던캘리포니아대 마셜경영대학원 교수가 영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들을 검증한 실험을 공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이 연구에 따르면 영업 사원들은 보통 ‘제품이 뭔가 부족해 판매에 실패했다’고 여기지만 정작 구매자들은 품질에 있어서는 경쟁 제품 간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매 담당자들은 오히려 다른 요인에 따라 결심을 달리했습니다.
연구 대상이 된 영업 사원은 3가지 유형이었습니다. 제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지만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A, 제품 설명도 능숙하게 하고 친절한 호감형 B, 제품에 대한 지식은 조금 부족하지만 재미, 매력, 카리스마가 있는 C.
나라면 누구와 구매 계약을 맺을까요. 대체로는 B 사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업종별로 선택은 갈렸습니다. 미디어•패션 업계는 성격과 센스가 좋은 C 사원, 제조•의료업계는 전문성이 높은 A 사원을 선호했던 겁니다. 이는 다분히 업종의 성격과 영업 사원의 개인적 특성이 구매 기업과 ‘케미’를 이룬 결과입니다. 마틴 교수는 이처럼 궁극적으로 영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무형적인 직관적, 인간적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정형화된 성공 공식이 없고, 상황과 인간미 등 말로 설명하기 힘든 ‘우주의 기운’이 성패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기에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영업 현장. 이 현장에 미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는 상당했습니다. 대면 영업이 거의 중단된 코로나 사태 초기, 전반적으로 나빠진 영업 환경 속에 오히려 ‘수혜주’로 부상한 업체들도 있었습니다. 해당 업계에서 부동의 1위로 통하는 모 업체가 남몰래 웃음 짓던 곳 중 하나입니다. 이 업체 영업 담당 직원은 “구매 담당자가 여러 기업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어렵고,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내 협의조차 원활하지 않다 보니 상사를 설득하기 쉽고, 시장에서 검증됐다고 믿는 1위 업체에 수요가 쏠린 것 같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이 직원은 코로나 상황이 오히려 편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접대비나 판촉비 없이도 매출이 오르니 사내에서 ‘영업 사원 무용론’이 흘러나왔다”며 불안해했습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를 지나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모든 영업 조직은 팬데믹 이후 반등을 준비하며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한 잰걸음에 나서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활성화된 원격 근무 상황, 그리고 M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약화된 조직 충성도도 변수입니다.
영업 전문가들은 ‘비포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의 사이, 시대적 전환기에 한번 기강을 잡기 위해서는 영업 담당자들의 동기 수준을 높이는 데 먼저 집중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동기부여를 위해 개별 영업 사원들에게 기존 수준 이상의 자율성을 부여할 때는 능력과 동기 수준이 모두 높은 모범 직원을 구별하고,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라는 조언이 눈에 띕니다. 일탈, 방임의 싹이 잠재돼 다른 동료들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썩은 사과’까지 하드캐리하는 것은 빠른 회복을 도모하는 시기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또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된 상황을 반영해 영업 현장에도 고도화된 디지털 툴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많은 연구가 신뢰성을 높이는 영업의 치트키로 인간적 요소를 지적해왔지만 이에 더해 기술 관련 전문성 역시 크게 요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디지털 방식으로의 비즈니스 전환 등의 수요에 대응해 기술적 지식을 가진 영업 담당 직원에 대한 선발, 교육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앞으로는 고객이 원한다고 직접 말하는(what they want) 내용만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불안 뒤 숨은 실제 니즈(what they need)를 찾아 솔루션을 제시하는 컨설턴트적 마인드를 갖는 것은 영업인들의 필수 경쟁력이 될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황을 간파하는 경영 지식, 기술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수적입니다.
영업 전문가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영업 현장에도 혁신의 시대는 이미 성큼 다가왔다고.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가 구태의연한 영업 관행과 마인드세트를 벗어나 영업 전략에서의 ‘넥스트 스텝’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