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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정부조달시장 공략

‘황금어장’ 정부조달시장을 공략하라

안덕근 | 33호 (2009년 5월 Issue 2)
해외 출장이 잦은 임원들은 실감하겠지만 인천 국제공항의 시설과 서비스는 세계 최고다. 인천 공항은 국제공항협회(ACI)가 실시하는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2005년 이후 4년 연속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 뽑혔다. 굳이 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외국 공항을 이용해보면 인천 공항의 우수성을 절로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인천 공항 건설 문제로 한국 정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신공항 건설공단은 1999년 인천 공항 교통센터 건설을 위해 약 200억 원의 승강기 구입 조달을 진행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승강기 업체인 미국 오티스(OTIS)와 한국 LG산전이 입찰 경쟁을 벌였다. 당시 신공항 건설공단은 외국 기업의 단독 입찰을 막고 한국 기업과 공동 또는 하도급으로만 참가하도록 규정했다. 또 OTIS와 같은 외국 업체가 국내에 생산 설비를 갖춰야만 사업 허가권을 부여했다. 결국 LG산전이 사업자로 선정됐고, 미국은 이 입찰 조건이 WTO 정부조달협정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를 WTO에 제소했다.
 
회원국들에게 자동 적용되는 여타 WTO 협정과는 달리, WTO 정부조달협정은 WTO 회원국 중 이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국가들에만 적용된다. 2009년 4월 현재,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포함해 총 39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부터 이 협정을 적용했으며, 현재 대부분의 중앙부처, 지방정부, 공공기관들이 적용 대상이다.
 
당시 쟁점은 과연 신공항 건설공단이 협정 적용 대상인 건설교통부의 산하 기관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였다. 신공항 건설공단의 조달 절차와 조달 요건 자체는 명백하게 정부조달협정 규정을 위반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신공항 건설공단이 건설교통부와 무관한 독립 기관이므로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행히 한국이 승소함에 따라 인천 공항 건설은 차질 없이 이뤄졌다.
 
이제 다음번 출장길에는 비행기 탑승 게이트로 이어진 무빙워크를 눈여겨보라. 어떤 무빙워크에는 LG, 다른 무빙워크에는 OTIS라는 상호가 찍혀 있다. 하지만 LG-OTIS나 OTIS-LG처럼 두 회사의 이름이 나란히 명기된 것도 있다. 두 회사의 분쟁이 WTO 소송까지 불러왔는데 어찌 된 영문일까. 사실 WTO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OTIS는 LG산전의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인수하고 2000년부터 회사 이름을 LG-OTIS로 사용했다. 이후 2003년에는 OTIS-LG, 2006년에는 OTIS로 개명했다. 이제 독자들은 인천 공항의 무빙워크나 승강기 로고를 보면 본인이 서 있는 인천 공항 구역이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급성장하는 정부조달시장
전 세계 정부조달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한국이 대표적으로 수혜를 얻고 있는 부문이 플랜트 수출이다. 한국의 플랜트 수출은 2007년 422억 달러를 기록했고, 2008년에도 약 5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부조달사업에 따르는 각종 까다로운 법 규정, 이질적인 사업 환경, 개발도상국의 심각한 정부 부패 문제 등으로 아직 웬만한 기업은 이 시장에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많이 변했다. 우선 개발도상국들이 정부조달시장을 속속 개방하고 있다.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등 최근 EU에 가입한 12개 신규 가입국들은 모두 WTO 정부조달협정에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만, 파나마, 그루지야 등도 가입을 추진 중이다. 선진국들도 정부조달 관련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있어 국제 입찰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미국 조달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연방정부의 조달 규모는 4000억 달러에 달한다. EU 회원국 전체의 정부조달 규모는 무려 2조 유로에 이른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로 민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어 경기 부양을 위한 각국 정부의 조달사업 규모가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09년 1월, 올해 총 정부조달 수요를 작년 51조 원보다 훨씬 많은 78조 원으로 책정했다. 이 중 70%인 55조 원을 중소기업에 집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급증하는 세계 정부조달시장을 주시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 조달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해외 업체가 수주한 미국 정부조달사업은 약 348억 달러다. 이 중 한국의 조달 금액은 약 9억 달러에 불과해 연방정부 조달 총액의 3%에 그쳤다. 이는 달리 말하면 사업의 성장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까지 감안하면 미국 정부조달시장의 확대 가능성은 더욱 크다. 조만간 한국과 FTA를 체결할 EU 역시 세계 정부조달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정부조달 관련 WTO 규범
WTO 정부조달협정을 적용받는 각국 정부는 조달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물론 모든 정부기관의 조달을 국제 입찰로 실시할 필요는 없다. 각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명기한 협정 적용 대상만이 그 대상이다. 현재 한국은 조달청을 비롯한 42개 부처, 서울시를 포함한 15개 광역단체, 석유공사, 수자원공사, 가스공사 등 18개 공공기관이 협정 적용 대상이다.
 
당초 정부조달협정으로 해외 업체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한국 기관은 한국통신이었다. 한국통신이 공기업이던 1980∼1990년대에는 교환기 등 주요 통신장비가 정부조달 대상이었다. 막대한 금액의 통신장비 판매를 원하던 미국과 유럽은 한국 정부에 집요하게 정부조달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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