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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후인

日 온천휴양지 유후인의 ‘절제마케팅’

김민주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입소문이 난 곳이면 지구촌 구석구석 어디든지 찾아 나선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규슈의 유후인(湯布院)도 근래 한국인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온천 마을 관광지다.
 
그간 일본 온천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이 주로 찾던 곳은 규슈 벳푸(別府)였다. 비교적 싼 값에 단체로 온천 관광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는 게 이유다. 벳푸가 왁자지껄한 대중 관광지라면 이곳에서 멀지 않는 유후인은 조용한 고급 온천 관광지다. 유후인을 찾는 이가 많아진 것을 보면 한국인의 관광 취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즉,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쾌적함과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유후인의 인구는 1만2000명으로 우리나라 읍 소재지보다 적다. 그런데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에 이른다. 관광객 4명 중 1명은 이곳에서 하루 이상 머물고 간다. 관광객이 이 마을에 주는 경제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낮에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면 유럽의 동화 마을에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유후인은 1000m 이상의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600m 고지의 산악분지에 위치하고 있다.후쿠오카에서 리조트 특급열차 ‘유후인노모리’(由布院の森)를 타고 유후인으로 가는데, 열차는 ‘유후인의 숲’이란 이름에 걸맞게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원시림을 가로지르며 내달린다. 객실이 운전석보다 높아서 전망도 탁 트였다. ‘리조트 차량’에 걸맞은 카페테리아, 간이 스낵코너 등이 갖춰진 콘셉트형 객차가 딸려 있어 관광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관광객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차 속에서 유후인의 분위기에 흠뻑 빠진다.
 
유후인의 주변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일본의 여느 명승지와 비교해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온천 이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유후인으로 향한다.
 
삶의 질을 선택한 유후인 주민들
유후인에는 현대식 관광호텔도, 사람과 자연을 윽박지르는 위압적인 건물도 없다. 마을 중심지는 옛 골목길 그대로다. 길을 따라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줄지어 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네온사인도, 흔한 술집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불현듯 ‘아, 여기가 시골마을이지’라며 오감으로 느끼는 그런 곳이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옛 모습과 정취를 쫓아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유후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지만 오늘날의 유후인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이미 50년 전에 시작됐다. 이 마을은 원래 눈이 오면 자주 고립되는 시골 마을이었다. 지역에 딱 부러진 수익원이 없으니, 경제적 자립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지진으로 큰 어려움까지 겪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재건을 위해 삽을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 찬 도시를 모방하기보다 ‘삶의 질’을 선택했다. 부동산 열풍이 불던 시기에도 단기 차익보다 대대로 이어져온 가업을 유지하고,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일본 전역을 휩쓸던 메가 프로젝트 개발도 따르지 않았다. 오직 유후인만의 특성을 살린 장거리 달리기를 묵묵히 시작했다. 한때 풍부한 물과 온천을 놓고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구상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찬반으로 분열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개발과 보전을 놓고 벌어진 논쟁 속에서 전통과 자연을 지켜낸 노력이 오늘날의 유후인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청장년층으로 구성된 마을 가꾸기 조직을 꾸리고, 젊은 일꾼을 육성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마을 젊은이들을 독일의 온천휴양지 바덴바덴으로 시찰을 보내고, 유후인을 체류형 휴양지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본래의 마을 풍광을 간직하기 위해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하고, 고도를 제한하는 등 제도적인 노력도 기울였다. 이곳 특산품도 최대한 활용했다. 지역 자원의 활용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유후인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자원을 끌어오기 위해 안달하지도 않았다. 대규모 단체 관광객도 받지 않는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오면 호젓한 느낌이 들지 않고 온천물도 과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인기 온천 휴양지 중에서 온천물과 수돗물을 섞어 쓰는 곳이 적지 않은 이유다. 유후인 사람들은 적절한 규모의 관광객이 최고의 만족을 느끼도록 만드는 절제의 미학(美學)으로 마을을 개발했다. 차분하고 호젓한 분위기의 유후인은 가족, 여성 관광객을 위한 여행지로 제격이다.
 
유후인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 역사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다. 그는 이 마을을 매우 좋아했다.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그의 대표작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金隣湖) 호수까지 이어지는 큰길가에는 두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과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나라도 집어 들지 않고서는 길을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앙증맞고 깜찍한 기념품이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디마케팅으로 더 큰 가치 창출
유후인에는 여느 일본 관광지처럼 관광객의 미각을 깨우는 조그만 맛집도 많다. 특히 수타 소바, 롤 케이크를 파는 집이 유명한데, 하루에 한정 수량만 팔고 더는 팔지 않아 오후 2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이곳에선 문 열기 1시간 전부터 가게 앞에 관광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곤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바람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후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건축 시설물 등 가시적인 성과와 무조건 많은 관광객 유치에 개발의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절제하는 마케팅과 쾌적하고 고급 이미지로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개발에 힘써야 한다. 과도한 마케팅과는 반대로 절제하는 마케팅, 즉 ‘디마케팅(demarketing)’이 유후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주민 모두가 살기 좋고, 기분 좋은 마을이 훌륭한 관광지가 된다’는 교훈이다.
 
제주 올레길이 갑자기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다. 다만 과도한 인파는 경관과 생태를 망가뜨리기 쉬우니, 도를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올레길의 친환경적 개발에 힘쓰는 한편, 부작용이 커지지 않도록 다른 지역에 더 많은 올레길을 만들어 과도한 집중을 분산시키는 것도 좋겠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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