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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의사결정 토론... 통찰을 심어준다

임근형 | 67호 (2010년 10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사람들은 경영대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이 재무, 회계, 마케팅, 인사조직, 경제학 등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수업도 있다. 대표적 예가 경영자의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지도하는 경영관리 의사결정(Managerial Decision Making) 수업이다. 부스 MBA 스쿨에서 이 수업을 강의하는 인기 교수는 중국 출신의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다.
시카고대 부스(Booth) 경영대학원은 1898년 설립됐다. 세계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의 MBA 과정답게 현 교수진 중에서도 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매년 550∼ 600명의 신입생이 입학하며 1000여 명의 파트 타임 MBA 과정, 최고경영자 과정, 박사 과정 학생도 선발한다. 시카고 외에 런던과 싱가포르에 유럽 및 아시아 분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1971년 시카고대 MBA 졸업자이자 투자회사 디멘셔널 펀드의 창업자인 데이비드 부스가 세계 경영대학원 기부 역사 상 가장 큰 금액인 3억 달러를 기부한 후 학교의 공식 명칭을 ‘The University of Chicago Booth School of Business’로 변경했다.
 
그의 수업 내용을 보자. 우선 그는 의사결정자를 두 그룹으로 분류한다. 첫째 그룹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는 ‘이성적’ 의사결정자다. 둘째 그룹은 개인의 과거 경험과 감정, 직관 등을 이용해 의사결정을 하는 ‘일반적’ 의사결정자다. 그는 이성적 의사결정자의 특징을 다음 3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의사결정의 일관성, 둘째, 비용-편익(cost-benefit) 분석에 기반한 의사결정, 셋째,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의사결정. 첫째 특징인 일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한 학생에게 질문 한다. “시카고에서 베이징까지 거리가 얼마일까요?” 학생은 약간 고민하더니 대답한다. “대충 5000마일 아닐까요?” 시 교수는 반문한다. “그럼 베이징에서 시카고까지의 거리는 대충 얼마일까요?” 그러자 강의실에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약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그 학생은 웃으며 답한다. “역시 5000마일이겠죠.”
 
시 교수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0.1%의 확률로 죽을 수 있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병을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이 출시됐습니다. 여러분은 이 약을 얼마에 사서 복용하겠습니까?” 학생들의 답은 적게는 1달러에서 많게는 1000달러였다. 시 교수가 다시 질문한다. “다른 종류의 신약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신약을 먹으면 죽을 확률이 0.1% 있다고 합니다. 얼마를 받는다면 이 신약 테스트에 참가할 의향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학생들은 대답은 적게는 수십 만 달러에서, 많게는 무한대라고 답한다. 절대 먹지 않겠다는 대답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학생의 대답을 듣고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감성은 수백 억 달러라고 말하지만, 제 이성은 이전 질문에 제가 50달러라고 얘기했으므로 이번 질문에도 일관성 있게 50달러라고 대답하라고 하네요.”
 
시 교수가 말했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연장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값어치를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그 가능성은 같은데도 말이죠. 시카고와 베이징의 거리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관성 있는 판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상황이 복잡해지면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게 매우 어려워지죠.”
 
그는 비용-편익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도 설명한다. ‘비용’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대상이 바로 ‘기회 비용’과 ‘매몰 비용’이다. 그는 실생활 속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공짜로 100달러짜리 에릭 클랩튼의 공연 티켓이 생겼습니다. 에릭 클랩튼을 좋아하긴 하지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밥 딜런이라고 합시다. 공짜 티켓의 공연 날에 여러분은 평소 50달러인 밥 딜런 공연을 40달러에 볼 수 있는 할인 쿠폰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러 간다면, 기회 비용은 얼마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10달러, 40달러, 50달러로 골고루 분포했다. 시 교수는 “정답은 10달러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한 학생이 반론을 제기한다. “저는 기회 비용이란 ‘지금 선택에 대한 다음으로 가장 좋은 대안의 가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에릭 클랩튼 공연을 봄으로써 포기해야 했던 밥 딜런 공연의 공정가치인 50달러가 정답 아닌가요?” 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학생들이 오해하는 점이 바로 그겁니다. 만약 에릭 클랩튼 공연을 안 가고 밥 딜런의 공연을 봤다면, 물론 50달러 가치의 편익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50달러를 내야 하겠죠? 결국 그 선택의 가치는 ‘0’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날에만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할인입니다. 즉, 그 쿠폰을 통해 50달러 가치의 편익을 40달러의 비용으로 얻을 수 있기에 그 차익인 10달러가 여러분이 에릭 클랩튼 공연을 봄으로써 포기한 기회 비용이죠.”
 
이성적 의사결정이 중요한 이유
시 교수는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때의 위험도 소개한다.
 
“여러분은 두 달 전에 1만 달러를 A 주식에 투자했고, 현재 수익률이 -50%라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이 주식을 매도할 건가요, 아니면 좀더 보유할 건가요? 이때 모든 거래비용은 없다고 가정합시다.” 대다수의 학생은 좀더 보유하겠다는 의견에 손을 들었다. 그러자 시 교수는 상황을 약간 복잡하게 가정했다. “의사결정을 하자마자 여러분은 친구한테 갑자기 온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의 애완견이 키보드를 잘못 눌러 여러분의 A주식 전량이 -50% 가격에 매각됐습니다. A주식 5000달러를 다시 매입하시겠습니까, 다른 주식을 찾아보시겠습니까?” 대다수의 학생이 A 주식을 다시 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시 교수는 웃으며 말한다. “여러분은 중요한 주식투자 의사결정을 애완견에 맡겼군요.”
 
설명이 이어진다. “여러분들도 이제 알겠지만, 이때도 여러분은 일관성 없는 의사결정을 한 겁니다. 애완견의 실수로 그 주식이 매각됐든 안 됐든, 여러분이 A주식을 보유하겠다고 결정했으면 설사 주식이 실수로 매각됐다 해도 그만큼의 주식을 다시 사서 보유를 해야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이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한 학자가 독일인 1000명과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 항목 중 사후에 장기를 기증할 거냐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설문 결과 독일인의 80%, 미국인의 20%가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해당 학자가 독일인의 설문지에는 장기를 기증 안 하려면 체크를 해야 하고, 미국인 설문지는 아무런 체크를 안 하면 장기 기증도 안 하게 되는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애완견에게 주식투자를 맡긴 사례와 장기기증 설문 사례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한 학생이 답한다.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외부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 아닐까요.” 시 교수는 말한다. “좋은 의견입니다. 누가 이 생각을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좀더 발전시켜 볼까요?” 다른 학생이 나선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외부 환경에 따라 의사결정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놔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야겠죠. 그렇다면 애완견의 주식투자 사례에서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의사결정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긴 적막이 흘렀고, 시 교수가 결국 말한다. “애완견이 주식을 팔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A주식을 팔았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즉, 50% 손실이 난 시점에서 더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면 주식이 아닌, 5000달러의 현금이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이 주식을 다른 주식과 대등한 출발점에 놓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이 주식이 향후에 다른 주식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애완견이 주식을 팔고 안 팔고와 무관하게 여러분들은 일관성 있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교수와 학생의 끊임없는 토론이 이어지는 이런 의사결정 수업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에게 매우 색다른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분석적 접근방식에 강점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소홀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 이러한 소프트 스킬이다. 어떤 일에 대해 100% 정확한 분석을 했다고 하더라도 의사결정의 우를 범한다면, 그 분석은 의미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사결정 방법을 배울 기회를 가진 게 이 수업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임근형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Class of 2011 [email protected]
필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리먼 브러더스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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