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협업 땐 ‘작은 쪽’을 부각해라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월마트 식품 매장 안에 ‘그로운(Grown)’이란 식당 체인점이 문을 열었다. ‘유기농 건강식 패스트푸드’ 식당을 표방하는 그로운은 작년 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 후 큰 인기에 힘입어 뉴욕주 북쪽의 코네티컷의 대학 서점 내에 2호점을 개장했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월마트 안에 3호점이 들어선 것이었다. ‘억지로 키우지 않고(not made)’ ‘공학적으로 제조되지도 않은(not manufactured)’ 채 ‘자연스럽게 자라난(grown)’ 식재료만을 사용한다는 데서 브랜드명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운이 월마트에 입성하는 걸 두고 월마트 본질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로운의 커피와 주스, 음식 가격은 각각 4달러, 9달러, 16달러부터 시작한다. 이는 월마트 기존 제품들과 비교해 봤을 때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이를 두고 “1센트 단위로 가격을 따지는 이들이 월마트 소비자인데 누가 이렇게 비싼 음식을 월마트에서 사겠냐?” “그로운 입점은 ‘매일 최저 가격(Everyday Low Price)’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월마트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것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기자는 저소득층 고객들이 월마트로 행하는 발길 자체를 끊어버릴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정말 그렇게 위험하고 도발적인 시도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브랜드는 본질은 변하지 않더라도 운용방식과 외양은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기농 식품은 가격을 따지기 전에 꼭 갖춰 놓아야 할 제품군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브랜드 가치 훼손을 걱정하며 비싼 유기농 식품을 외면할 게 아니라 이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접목해야 할 것인지다. 혼자서 트렌드에 맞추기 힘들 경우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바로 브랜드 협력(brand collaboration)이다. 이번 그로운의 입점도 브랜드 협력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월마트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유기농 제품 공간을 넓혀왔고, 2014년에는 유기농 식품 업체인 와일드오츠(Wild Oats)의 브랜드 공간을 따로 마련하며 25% 가격 할인 공세를 펼쳤다. 유기농 분야의 선두 업체인 홀푸즈(Whole Foods)를 겨냥한 브랜드 협력이었지만 최저가라는 월마트의 고유 가치를 앞세운 전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와일드오츠는 2년 만에 월마트에서 퇴출됐다.
월마트라는 거대한 브랜드 속에서 와일드오츠가 가진 브랜드 속성은 아무 흔적도 없이 용해되다시피 했다. 협력하는 두 브랜드 간에 규모나 인지도 측면에서 격차가 크게 날 때는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의 중심을 어디에 맞출지 고민해야 한다. 월마트와 와일드오츠의 협력에서는 ‘25% 할인’만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됐을 뿐 유기농 업체로서 와일드오츠의 전문성은 묻혀버리고 말았다.이번 그로운의 입점은 달랐다. 무엇보다 그로운의 원래 가격이 그대로 적용됐고, 홍보의 초점도 그로운에 맞춰졌다. 월마트나 그로운처럼 브랜드 간 현격한 차이가 나는 브랜드끼리 협력할 때에는 ‘약자’, 즉 ‘작은 쪽’을 부각시키는 게 좋다. 애초에 협력을 하게 된 이유도 대부분 작은 쪽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큰 쪽에서 활용하려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로운 도입을 통해 월마트가 취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고급스런 유기농 이미지다. 여기서 굳이 월마트의 브랜드를 지킨다고 ‘최저가’를 강조하며 떠들 필요는 없다. 월마트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유기농 식품 카테고리에 대한 연결고리가 생긴 이후에 월마트 브랜드를 강조해도 늦지 않다.
한국은 대기업 브랜드들의 힘이 절대적인 시장이다. 브랜드 협력도 현격한 격차가 나는 가운데 갑을 관계처럼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이나 홍보의 주도권을 거대한 브랜드 쪽에서 쥐고 자신의 메시지만을 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브랜드 협력에서 초점은 될 수 있는 한 작은 브랜드에 맞추는 게 좋다. 그래야 두 브랜드 모두에 이득이 된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email protected]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글로벌 마케팅 기업인 하바스그룹 한국법인에서 트렌드 분석 및 마케팅 실행,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플래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