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미국의 한 목사가 자신의 교회 앞에서 코란(이슬람 경전)을 불태웠다. 그가 코란을 소각하겠다고 공언한 지 약 보름이 지난 뒤였다.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 이슬람권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일부는 과격 유혈 시위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유엔 사무소가 공격 받아 유엔 직원 7명이 숨지는 등 총 2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가 코란을 소각하겠다고 밝혔을 때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까지 나서 자제를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코란 소각 사건 이후 아프간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 목사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의 행동을 막을 수도, 그를 처벌할 수도 없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그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지도층은 계속 이 목사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이슬람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킨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의 한 TV 프로그램과 미국의 한 언론이 일본 원전 사태를 웃음거리로 삼아 일본 정부의 항의를 받은 사례는 사소한 것일 뿐이다.
2005년 9월 덴마크의 한 신문은 이슬람의 예언자인 마호메트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풍자 만화를 게재했다. 예언자들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 이슬람의 규범을 어겼을 뿐 아니라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에 비견하기까지 한 이 만화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치 아래 벨기에,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를 포함한 22개국의 매체에 번역돼 실렸다.
이슬람 각지에선 당연히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흥분한 군중들은 덴마크 국기를 불태웠고 서방 대사관을 공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1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슬람 정부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이란,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정부는 덴마크에 파견한 대사를 불러들였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문화적 테러”라고 일갈했다.
결국 이 신문의 편집장이 이슬람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때늦은 사과였다. 이슬람권에 진출한 덴마크 기업들은 처참한 결과를 맞았다. 덴마크의 대표적 낙농 회사인 알라 푸드(Arla Foods)의 중동 지역 매출은 연간 4억6500만 달러에서 ‘0’으로 뚝 떨어졌다. 이 회사가 중동 지역에서 40년 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도, 부랴부랴 게재한 사과 광고도 소용없었다. 칼스버그, 레고 등 대표적인 덴마크 회사들의 매출도 급감했다.
급기야 일부 덴마크 기업들은 ‘Made in Denmark’ 라벨을 ‘Made in European Union’으로 바꿔다는 원산지 물타기까지 시도했다. 머스크와 같은 덴마크 해운사들은 이슬람 국가의 항구에 들어갈 때 덴마크 국기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슬람인들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덴마크는 전체 수출의 3%를 차지하는 중동 시장과 함께 자국 내 일자리 1만 개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2차대전 후 덴마크가 맞은 최대의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이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기본적인 덕목 중의 하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들의 인권 수준과 경제 발전 수준,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덴마크 신문의 행동이 법을 어긴 건 아니라고 하지만 과연 윤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표출된 ‘자문화 중심주의’ 또는 ‘자인종 중심주의’는 아닐까.
국가든 도시든 기업이든 21세기 초경쟁 시대의 성공 키워드는 창조와 혁신이다. 가장 창조적인 도시로 일컬어지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은 외부의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했다. 이들 지역의 지도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전 세계의 우수 인력들은 계속 이들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름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생각의 방식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마련이다. 가장 창조적인 혁신 기업들이 이들 지역에서 계속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AT커니에서 금융·보험·정보통신·헬스케어 업체의 신사업 및 해외진출, 마케팅 전략, CRM, 위기관리 관련 컨설팅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한인재 경영교육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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