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디자인 시대다. 디자인은 사용자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다. 과거에는 상품의 형태, 소재와 용도 등을 진화시키고 새로운 가치와 개성을 표현하는 게 디자인의 역할이었다. 소득이 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자인은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에게 정서적인 감동과 행복을 주기 위한 경험적 활동이나 서비스디자인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기업 경영 전략도 바뀌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대표되던 산업화의 고도 성장기를 지나 문화와 감성의 시대로 진입한 21세기에 기업 생존을 담보할 확실한 자산이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디자인은 이제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 요식, 관광, 방송, 통신 등 많은 분야에서 경쟁우위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 경영에서 디자인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 기업경영의 핵심요소는 창의와 혁신인데 이 중심에 디자인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발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창의이며, 혁신은 이러한 활동이 결과로 구현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디자인은 이 과정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굿 디자인’은 새로운 고객과 시장을 만들어낸다. 기존의 시장이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제로섬(Zero-Sum) 경쟁을 바탕으로 했다면 디자인은 ‘플러스 섬(Plus-Sum)’ 즉, 새로운 가치를 통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낸다. 무한의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기업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많은 선진 기업들은 디자인을 이미 경영의 핵심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를 경영진에 발탁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디자인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을 지원하는 보조 프로세스가 아니라 상품의 기획에서 유통까지 기업 가치사슬 전체와 연결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아이데오(IDEO)와 같은 디자인컨설팅 업체들이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기업 고유의 가치와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자신의 정체성(identity)으로 만드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모든 사업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원형적 콘셉트를 개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용자들이 브랜드에 대한 애착과 차별성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지적 능력과 창의력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과 역량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구성원 단위의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활용해 전략적 안목을 높이고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일관된 솔루션과 디자이닝 프로세스를 통한 집단적 감성지수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멋있고 감성적이며 사용이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에 언제든지 지갑을 열 용의가 있다. 디자인 경영을 통해 높아진 기업의 이미지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다. 창의와 혁신을 위해 디자인을 접목, 개발하고 절대강자로 부상하는 디자인 한국의 기업들을 기대해본다.
필자는 한양대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으며 일본 치바대에서 공업디자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인전략팀장(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삼성디자인학교(SADI)의 학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 비즈니스위크가 ‘아시아의 스타 25인’(2005년)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저서로 <디자인으로 미래를 경영하라(공동 번역, 2006년)>와 <미래를 위한 투자, 디자인(공저, 2010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