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작년 8월25일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 홈플러스 매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진이 개찰구 앞 기둥과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 설치됐다. 바로 ‘홈플러스 스마트 가상스토어(Homeplus Smart Virtual Store)’다. 500여 개 주요 식품 및 생활필수품 등의 상품 이미지를 실제 매장 상품 진열대와 비슷하게 재현해 놓았다. 제품마다 부착된 QR코드를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장바구니에 쉽게 담고 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구매한 상품은 소비자가 원하는 배송지에서 가장 가까운 홈플러스 매장에서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품이든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원하는 곳에서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4세대 유통점’이 탄생한 셈이다.
홈플러스는 이처럼 스마트 가상스토어를 통해 소비자들이 마트라고 하면 떠올리던 공간의 영역을 파괴했다. 즉, 물건을 구매할 때는 사람이 직접 홈플러스 매장을 찾아야 한다는, 혹은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을 해야 한다는 기본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가능했던 구매의 행위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물리적 공간의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반전의 힘, 영역의 확장
일의 형세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뒤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반전(反轉)의 힘은 바로 이질적인 두 요소가 결합했을 때 파생되는 효과들이 더욱 극적이라는 데 있다.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벗어난 일탈에서 오는 묘미 때문인지 반전이라는 말은 어느 분야에서나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 같은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속칭 베이글녀라는 표현 또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에 예상치 못한 성숙한 몸매를 지녔다는 반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기치 못해 신선하고 때론 충격적이기까지 한, 고정관념을 뒤엎은 새로운 발상으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바로 이 반전을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이 광고를 기억하는가?
한겨울의 스키장. 리프트를 기다리던 청년은 긴 머리를 청순하게 늘어뜨린 분홍색 스키복을 입은 아가씨의 뒷모습에 반해 핫초코를 들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그에게 ‘혼자 왔니’라며 말을 건넨 사람은 바로 ‘국민 할매’ 김태원. 광고를 보던 사람들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한번에 무너뜨린 이 광고는 반전의 요소를 잘 활용해 웃음과 함께 소비자의 기억에 오래 남게 됐다.
이처럼 반전의 요소를 가미한 마케팅적인 접근은 그동안 광고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만 주로 이뤄져왔다. 광고에 반전의 요소가 활용되면 우선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에 좋고 뇌리에 오래 남아 제품 구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품이나 서비스 등으로도 반전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광고나 커뮤니케이션의 반전은 예상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단지 반전의 코드 속에 녹여냈기 때문에 소비자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수준에 그쳐 그 역할이 비교적 제한적이다. 반면 제품과 서비스 자체가 반전이라면 기존 고정관념을 뒤엎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제품의 반전과 서비스의 반전
반전의 묘미를 가진 제품들이 히트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기름 없이 튀기는 에어프라이어와 다이슨(Dyson)의 날개 없는 선풍기다. 으레 튀김기라면 기름을 넣고 튀기는 방식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기름 없이 뜨거운 공기를 이용, 원재료에 함유된 지방만으로 재료를 균일하게 튀겨주는 튀김기가 등장했다. 지방 함량을 줄여 칼로리를 감소시켰을 뿐 아니라 기름의 유해성, 남은 기름의 처리 등 환경문제까지 해결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날개 없는 선풍기(다이슨) 에어프라이어(필립스)
회전축에 붙은 날개를 전동기로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라는 선풍기의 사전적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 제품도 있다. 바로 날개가 있어야만 바람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뒤엎은 날개 없는 선풍기다. 이 제품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함께 날개에 손이 다칠 염려가 없다는 안전성이 돋보여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제품뿐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허를 찌르는 반전을 속속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홈플러스 스마트 가상스토어가 대표적 사례다. 렌터카 사업에서도 반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미국 집카(Zipcar)로 대표되는 카셰어링(car-sharing) 서비스다. 이제까지 렌터카 사업이라고 하면 전문업체를 통해 개인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자동차를 임차하는 시스템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셰어링은 회원들끼리 필요한 시간만큼 차를 사용한 후 지정된 장소에 반납하는 서비스다. 국내에서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그린카(Green Car)는 작년 10월 초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달 만에 1만여 명이 넘는 회원을 유치했다. 회원가입 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시간, 차종, 대여 시간을 선택한 후 전용 주차장에서 RFID칩이 내장된 회원카드를 리더기에 대면 바로 차를 쓸 수 있다. 예약한 시간만큼 쓰고 난 차는 정해진 주차장에 반납하면 된다. 차량뿐만이 아니다. 개인의 집이나 뒷마당을 빌려주는 서비스, 개인의 공구를 빌려주는 서비스 등 그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개인 소유물은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공유할 수 있다는 반전의 사고방식이 일상생활에 혁신을 가져왔다. 온라인 콘텐츠에 한정돼 있던 공유 현상은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오프라인의 소유물까지 그 범위가 확대돼 새로운 서비스 시장을 창조하고 있다.
국내 카셰어링 업체 그린카 홈페이지
반전 요소를 활용할 때의 유의점
모든 반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반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충분히 경쟁력 있고 품질이 우수해야 반전의 요소가 설득력을 갖게 되고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앞서 소개한 에어프라이어나 날개 없는 선풍기 등은 반전의 사고로 탄생한 제품이지만 그 품질이 기존의 튀김기나 선풍기 등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반전의 요소에만 치중해 그럴싸하게 포장한 제품은 일시적인 인기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실질적인 구매와 사용으로 이어지기 힘들고 소비자들로부터 금방 외면당하게 된다.
반전에선 섣부른 ‘미투(me-too)’ 전략은 금물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반전이 가져오는 놀라움의 효과는 반복되지 않는다. 반전의 요소는 한번이면 충분히 고객에게 인식되기 때문에 후발주자는 모방자로 분류된다. 이미 검증된 방식이나 아이디어의 단순한 모방과 추종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식상함을 느끼게 한다. 보다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이 되려면 차별화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혁신적인 노력이 다음 주자에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반전상품을 시장에 안착시키려면 ‘펭귄효과(penguin effect)’를 잘 이해해야 한다. 펭귄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지만 천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한 마리가 물속에 뛰어들면 수많은 펭귄들이 동시에 뛰어든다. 이처럼 어떤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다가 주위의 누군가가 구매하면 따라서 사게 되는 현상을 가리켜 펭귄효과라 한다. 사실 반전의 요소가 가미된 제품이나 서비스는 독특하고 새롭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순간적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소비자들이 선뜻 구입에 나서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품질에 대한 의심과 기존 사용습관과의 불일치가 구매의 장벽이 된다. 따라서 반전상품이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이른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를 효과적으로 공략해 초기 시장을 신속하게 장악해야 한다. 타인의 구매행위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이용해 사용자 기반을 늘려나간다면 그 이후에 시장에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라
반전 요소에 기반한 제품과 서비스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저비용과 차별화된 가치혁신으로 시장을 개척하자는 취지에서 블루오션의 원천이 된다. 소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발칙하고도 매력적인 반전 제품은 종종 경쟁하지 않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는 비전의 무기가 된다. 반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매력 자체가 소비자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진부하고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할 때에는 힘이 있다. 이른바 스마트 혁명으로 모든 비즈니스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제약들을 제거하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새로운 마케팅적 해법이 될 것이다.
심수민 비즈트렌드 연구회 [email protected]
필자는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BIT컨설팅에서 소비재 관련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했다. 연구 관심 분야는 소비자 트렌드 분석 및 브랜드 마케팅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