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생명체에겐 아주 가혹하다. 가차 없이 생과 사의 갈림길로 보낸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게는 반드시 살아 있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자연은 무작정 냉혹하지는 않다. 확실한 기준이 있다. 바뀌는 환경에 자기만의 답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엔 가차 없이 제거하지만 자기만의 답을 제시할 경우엔 살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그것이 독창적이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아주 후한 보상을 한다. 자연 속에서 이런 생존전략을 찾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평범한 게 없다는 점이다. 극한 환경에서는 극한의 생존법이 필요하다. 지금 한계라고 생각하는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생존이 가능해진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9월14일 인간이 아닌 색다른 생명체가 타고 있는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 우주선 ‘포톤(FOTON)―M3’에 탄 주인공은 ‘물곰(water bear)’이라고 불리는 완보동물. 녀석들은 우주에서의 생존실험을 위해 특별히 ‘선발된’ 존재답게 산소 마스크 같은 특수 장비를 장착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우주를 체험했다.
12일 후 지구로 돌아온 녀석들은 바짝 말라 있었고 죽은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분과 산소가 없는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그것도 인간이라면 결코 살아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방사선에 노출됐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물을 주자 그중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곳을 갔다 왔는데 살아난 것이다. 우주에 다녀온 많은 생명체들 중 생존에 성공한 경우는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으니 동물로서는 최초였다.
완보동물의 생존 전략
사실 지구에서도 녀석의 생존력은 놀라울 정도다. 햇빛이 없는 해저 800m에서부터 1년 내내 극한(極寒)인 히말라야 꼭대기까지 이 녀석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꼽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남극과 북극은 물론 방사능이 분출되는 뜨거운 온천에서도 버젓이 살고 있다. 영국 BBC 프로듀서인 존 로이드가 하는 말 그대로 전하자면 “여러분의 집에 사는 개가 매일 아침 소변을 누는 곳에서도” 산다. 녀석들의 서식지는 한마디로 ‘어디든지’이고 생존력으로 말하자면 ‘웬만해서는 안 죽는 녀석’이다.
다행스러운(?) 건 녀석들이 워낙 작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녀석들의 몸 길이는 평균 0.5∼1㎜, 길어야 1.5㎜ 정도다. 10만 마리가 모여봤자 물 0.57리터에 다 들어간다. 곰처럼 둥글고 통통한 몸을 가진 덕분에 ‘물곰’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의 정식 명칭은 느리게 움직인다는 뜻의 완보동물(緩步動物·사진 1). 이끼에 주로 살아 ‘이끼 돼지(moss piglet)’라고도 하는데 영어 이름 타디그라다(Tardigrada)는 ‘느리게 걷는다’는 라틴어 ‘tardigradus’에서 따온 것이다.
작고 느리다고 갖춰야 할 걸 갖추지 않은 건 아니다. 동물로서 가져야 할 건 다 갖고 있다. 물론 현미경으로 봐야 하지만 머리와 목은 물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짤막한 다리 네 쌍, 그리고 생식기는 물론 배설기관(항문)까지 있다. 워낙 작아서 빗방울에 튕기거나 바람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살아가는 힘까지 약한 건 아니다. 생존력 하나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녀석들은 어떻게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걸까?
녀석들은 그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 사는 게 어려워지면 신진대사를 최저로 낮추고 휴면상태로 들어간다. 몸을 둥글게 말아 신체 노출을 최소한으로 한 다음 신진대사를 극단으로 낮춘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정도 낮추는 것이 ‘극단’일까.
관련 연구에 의하면 휴면상태에서의 신진대사율은 0.01%에 불과하다. 보통 때 쓰는 에너지의 0.01%, 그러니까 평소 100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면 그 1만 분의 1만 쓴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실낱 같은 생명의 끈만 쥐고 있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살아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