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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ion Insight

어렵다고 연구비 줄인 기업, 3년 후 성과 가장 나빴다

안준모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혁신을 위한 기업의 연구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창출하기 힘들다. 기업 입장에선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경기 침체기에는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를 축소할 수도, 확대할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전략적으로 기술혁신을 감행한 기업들은 그만큼 경기회복 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효과적인 기술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자사의 비핵심 기술을 라이선싱해 추가적인 자원을 확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모색해 중장기 기술 개발에 나선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업체 FIAT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꼭 경기침체기가 아니더라도 혁신이 기업 성장에 필수가 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고려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곤 한다.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창출하기 힘들기에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많은 한국 기업이 사내 연구소를 폐쇄하거나 축소했다. 이는 산업인력 공급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외환위기 전에는 이공계 대학 진학을 위한 이과 학생들이 넘쳐났지만 연구개발 부서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이공계 실직자들이 증가하면서 이공계 학생들이 문과로 전과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이 경기침체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전략일까? 허리띠를 졸라매는 감축 일변도의 전략은 기업이 직면한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됐을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도 기업에 도움이 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vehicle),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용어들이 회자되고 있는 시대에선 기술 혁신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 경기침체와 기업 성장 둔화를 이유로 무턱대고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거나 회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성장이 정체된 시기에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업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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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세 가지 전략들

기업은 다음의 세 가지 기술혁신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술혁신을 포함, 가능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긴축정책, 내부 혁신투자를 지속하는 닫힌 혁신전략,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혁신자원을 효과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열린 혁신전략 등이다.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University of Cambridge)의 민셸(Minshall) 교수, 모타라(Mortara) 박사와 함께 영국혁신조사 데이터(UK Community Innovation Survey)를 바탕으로 기업의 기술혁신성향을 분석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로 한 약 9년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의 전략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전략 1 긴축 정책 (austerity plan) - 허리띠를 졸라매자

긴축정책은 기업이 당면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더 나아가 인원 감축까지 하면서 자금에 대한 (일시적인)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전략은 직관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이행하기도 용이한 접근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최우선 당면 과제이기 때문에 당장의 생존 이슈와 거리가 있는 내부 연구개발에 대해 투자를 줄일 수 있고, 이러한 접근법은 기업이 가진 한정된 자원을 단기대응을 위해 재분배(re-allocation)하는 최적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관찰된 이러한 유형의 영국 기업들은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비롯한 모든 유형의 기술혁신 활동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전공 연구 인력을 포함, 전반적인 인원 감축도 단행했다. 이탈리아국립연구회(National Research Council)의 연구국장(Research Director)이자 영국 버벡대 교수인 아키부기(Archibugi) 연구팀이 2008년 전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2008년 영국 전체의 혁신투자액이 2006년과 비교했을 때 약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당수의 기업이 긴축정책을 채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긴축 일변도의 전략은 몇 가지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회복력(resilence power)’이다. 어떤 경기침체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은 경기침체가 끝난 후도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막상 경기가 회복됐을 때, 연구개발 긴축정책으로 인해 기업의 혁신역량(innovation capability)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해됐다면 다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이로 인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 3년 후 기업 매출액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살펴보면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 데이터 분석에서도 긴축정책을 실시한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가 세 그룹 중 가장 저조했다. [표 1]에 나타나 있듯 긴축정책을 펼쳤던 기업들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내부혁신을 한 기업과 외부혁신을 한 기업은 각각 242%, 272% 성장했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 경기침체 시 긴축정책을 펼쳤던 많은 기업 사례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샤프나 히타치, 소니는 연구개발 투자액을 평균 31% 감축했는데, 이로 인해 성장 회복력을 잃어 한국에 디스플레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기침체기 동안 연구개발 투자액을 감축한 GM과 크라이슬러도 시장 장악력을 잃어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 안방을 내줬다.

전략 2 내부 혁신 - 기술투자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기업들은 경기침체라는 외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는데, 기업 내부의 기술투자를 지속하는 닫힌(closed) 혁신전략이 그중 하나다. 여기서 닫힌 전략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기업들이 보인 독특한 대응방식에 기인한다. 필자의 분석에서 관찰된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은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했지만 기술혁신에 필요한 정보를 외부에서 얻는 외부 탐색(external search) 활동은 줄였으며 외부 협력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한 전략을 취한 기업들이 전체 종업원 수는 줄였지만 오히려 과학기술 전공 연구 인력은 늘렸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경기침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부 연구개발 분야를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을 ‘시류에 저항한다(swimming against the tide)’는 영어속담에 빗대기도 한다. 아키부기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상당한 수의 혁신기업들이 경기침체 기간 동안 기술혁신 투자를 오히려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들은 대기업들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론 사내유보금 등 재정 여건이 좋은 대기업들이 어려운 경기침체기에 기술혁신 투자를 늘이는 것이 더 쉽겠지만 흥미롭게도 업력(firm age)이 8년 이하인, 이른바 혁신형 가젤기업(고성장을 보이는 강소기업)들도 경기침체 기간에 기술혁신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슘페터(Schumpeter)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경제침체기에 일어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일부 기업들이 긴축정책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잃는 동안 새로운 혁신형 기업들이 등장해 빠르게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 투자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해 봐도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경기침체기 전에는 기업의 크기(예: 종업원 수)나 경제적 성과(예: 매출액) 같은 지표들이 기술혁신 투자금액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경기침체기 중에는 이러한 지표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내부 연구개발 부서(internal R&D department)를 가지고 있는가가 경기침체기 중의 기업의 기술혁신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 번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들이 반드시 대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립되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일지라도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시류에 역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크게 보면 경기침체가 기업들의 시장 영향력을 재편하는 ‘창조적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며,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고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다.

두 번째 중요한 시사점은 앞서 언급한 ‘회복력’이다. 내부 연구개발 부서 존재 여부가 경기침체기의 기술혁신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내부 연구개발이 회복력을 키우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점을 의미한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경기침체기에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은 동기간 긴축정책을 펼친 기업들보다 경기침체 후 2.4배 이상의 매출액 증가를 보였다. 내부 연구개발 확대가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포석이었던 것이다.

2008년 이후 샤프와 히타치, 소니가 디스플레이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줄였을 때 LG와 삼성은 연구개발을 각각 119%와 37% 늘였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경기침체 후 글로벌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되는 계기가 됐다. 아사히맥주도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기 극복을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해 슈퍼드라이(Super Dry)라고 하는 히트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한층 끌어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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