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의장국으로서의 역할까지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한국 기업들도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한국과 한국기업도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중 한국은 아마도 최초로 선진국에 진입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국인과 한국기업이 명실상부한 선진 국민과 글로벌 기업으로 각인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부족한 부분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특히 한국 국민은 문제 해결능력은 뛰어난데, 정작 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약점이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최근 국가 최상위 과제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나 ‘4대강 사업’ 같은 이슈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비용(Cost) 대비 이득(Benefit)’이 사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서 CB 분석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감정이 앞서다보니 숫자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험과 감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의사결정 때문에 비용을 낭비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경험과 직관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국가나 기업의 지속 성장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문제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경영과학(Operations Research and Management Science)’적인 접근법이 보완돼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면 지금과 다른 경영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경영과학은 인간이 생각해낸 최선의 합리적 도구인 수학을 사용하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근거해 발전해왔다. 태평양전쟁 중 미군 승리의 전기를 마련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 제독은 사용가능한 수륙양용 정찰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 즉 적이 진격해올 각도를 예측하고 정찰기별로 정찰 각도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적 함대를 먼저 발견하고 일본군의 항공모함을 모두 침몰시키는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앞서나가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알고 제대로 된 해법들을 적용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소재절단 방법과 관련한 경영과학 기법을 적용해 연간 수십억 원의 이득을 창출한 중소기업, 개선된 간판을 이용해 매출대비 10% 이상의 이익을 창출한 부품 제조사, 같은 업종의 기업들이 모두 적자를 보고 있는 가운데 홀로 5% 이상의 이익을 거두고 있는 기업이 있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법을 모색했다는 데 있다.
작업관리 교과서에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면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A problem well defined is half solved already)’는 격언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A problem identified is half solved already)’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데이터에 의한 경영을 시도해왔다. 미국 경영과학회(INFORMS)는 1972년부터 프란츠 에델만 상이라는 경영과학 활용 우수기업에 대한 시상제도를 시작했다. 미국의 우량 기업들은 대부분 경영과학 기법을 경영에 접목하고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의 홍역을 치른 뒤 기업 경영을 위한 데이터가 본격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의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영과학 응용 사례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진짜 선진국,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국가나 기업 경영에서 데이터와 수학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가 더 자주 등장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 미국 U.C.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한국시뮬레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경영과학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