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이번 G20 정상회담은 자국의 이익과 권익을 위한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의 무대였다. 경상수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상대국에 개방과 관세인하를 요구하거나, 환율방어를 위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져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렇게 각국의 정상들이 국제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는 모임이 있었다. 이를 회맹(會盟)이라고 했다. <춘추(春秋)>에는 회맹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원전 651년 하남(河南)성 규구(葵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황하 유역 나라들의 정상들은 공동의 과제에 대해 회담했고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했다. 이 정상회담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치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주재 하에 열렸다. 환공은 춘추전국시대 진(晋)나라 문공(文公), 송(宋)나라 양공(襄公), 진(秦)나라 목공(穆公), 초(楚)나라 장공(莊公)과 함께 5명의 패자(覇者). 즉 오패(五覇) 중 가장 먼저 패자가 된 인물로 당시 황하유역 국제 사회를 좌지우지했다. 정상들의 만남, 회맹은 당시 각 지역을 통치하던 제후들이 모여 국제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맹은 소와 양, 돼지를 희생(犧牲)으로 바치고 그들의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만남의 의미를 더했다.
이 회맹의 주체는 원래 천자(天子)였으나 천자가 더는 이런 국제회의를 이끌 능력이 없자 패자(覇者)들이 천자를 대신했다. 기원전 651년에 있었던 제나라 환공 주재 하의 규구의 회맹에서는 다음과 같은 5가지 항목의 공동합의문을 채택하며 끝을 맺었다.
첫째,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처벌해야 한다(誅不孝). 한번 정해진 후계자를 바꿔서는 안 된다(無易樹子). 첩을 처의 자리에 올려서는 안 된다(無以妾爲妻). 부모와 자식, 부인 관계 등 가정사에 관한 합의다.
둘째, 현명한 사람을 우대하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尊賢育才). 인격이 된 사람을 표창해야 한다(以彰有德). 인재를 키우고 인성 함양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제도에 관한 합의다.
셋째,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한다(敬老慈幼). 떠돌이들과 나그네들을 빠뜨리지 말고 우대해야 한다(無忘賓旅). 노인, 어린이,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합의다.
넷째, 관리들이 벼슬을 세습해서는 안 된다(士無世官). 여러 관직을 한 사람이 총괄해서는 안 된다(官事無攝). 관리들을 뽑을 때는 반드시 그 능력을 보고 선발해야 한다(取士必得). 대부들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無專殺大夫). 관직은 세습돼서는 안 되며, 권력은 분산돼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함부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인사제도와 관련된 합의다.
다섯째, 황하의 물줄기를 자신의 나라에 유리하게 구부려 제방을 쌓으면 안 된다(無曲防). 흉년이 든 나라로 이동되는 곡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無).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 보고 없이 해서는 안 된다(無有封而不告). 당시 황하의 물줄기는 농업경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의 나라에만 유리하게 물줄기를 틀어서는 안 되며, 곡물의 국제적 이동을 보장해야 하고 도시 개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경제와 관련된 합의 사항이다.
그리고 합의문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했다. ‘우리 동맹국 정상들은(我同盟之人) 이번 동맹 후에(旣盟之後)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言歸于好).’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2600여 년 전 열린 규구지회가 떠오른다. 당시의 회맹은 오로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 없이 각을 세우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번 회의에서도 반듯한 가정 가꾸기 선언이 나오고, 자유롭고도 공정한 거래를 하자는 합의가 도출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업의 역할이 거론되며, 공정한 인사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을 했다면 그 의미는 후세에 길이 전해졌을 것이다. 훗날 자손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면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