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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사회적 기업

‘붕어빵’ 사회적 기업

이방실 | 89호 (2011년 9월 Issue 2)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그룹 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체인 MRO코리아를 사회적 기업 형태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SK그룹은 지금까지 총 70여 개의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고 이 중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곳은 절반가량 된다. 정부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을 제정, 일정 요건(취약계층 고용비율 30% 이상 등)을 갖춘 기업에 대해 인건비 지원,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주 목적이다. 기존 정부 정책과 기성 기업의 노력으로도 풀지 못했던 난제를 공략하는 만큼혁신창의성이 핵심이다. 일반 기업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윤 창출만 추구하면 되지만 사회적 기업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가치까지 좇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혁신의 발원지가 아니라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정부 인증을 받은 555개 사회적 기업 중 약 60%가 일자리 창출형이다. 그나마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나머지 업체들은 대부분 보육, 간병, 방과 후 학생 지도 등 일부 업종에 몰려 있다. 취약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육성책에 힘입어 급격히 늘었지만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적 아이디어를 무기로 내세우는 회사는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 인증 기업에 지원되는 한시적 인건비 지원이 중단되면 곧 한계상황에 부닥칠 기업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혁신이라는 핵심 요소가 빠진붕어빵사회적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규격화된 빵틀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구워져 나오는 붕어빵은 정부가 정해놓은인증제의 덫에 갇혀 일자리 창출에만 목을 매는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현주소를 연상시킨다. 스스로 혁신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소비자에게 사회적 가치라는 대의명분을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양심을 볼모로 떼를 쓰는 행위와 다름없다. 한 번은 통할지 모르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요원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용 창출이라는 치적을 위한 숫자 놀음이 아니다.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이 큰 기업을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이자 전 세계에서 전도유망한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아쇼카재단(Ashoka Foundation)의 창립자인 빌 드레이튼은사회적 기업가는 혁신적 솔루션을 통해 경이로운 업적을 일궈내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세상을 바꿔나가는 변화창조자(changemaker)이자 사회 변화의 엔진(social change engine)”이라며사회적 기업 활성화에 필요한 것은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협업이라고 지적했다.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회적 기업가들이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자금 조달, 산학 연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생태계를 조성해나갈 때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신가가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기업이 시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기회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사회적 비난을 무마, 혹은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서도 안 된다. SK그룹이 추진하는 MRO코리아의 사회적 기업 전환도 높은 품질과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효율적 비즈니스 모델, 사회적 기업 전환 시 추가로 고용해야 할 취약 계층과 기존 근로자 간 효율적인 인력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 이런 검토 없이 무리하게 사회적 기업화에만 매달린다면 대기업의 MRO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속셈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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