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for CEO - ‘문화와 경영’ 서진영 박사 강연
편집자주 기업 경영에 인문학적 소양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학계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유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DBR은 SK아트센터 나비와 CWPC서평(徐評)이 공동 주최한 최고경영자 교육 과정인 ‘문화와 경영’ 프로그램(주임교수 서진영)을 지상 중계합니다. 제1부 프로그램인 ‘논어(論語)와 경영’ 과정의 네 번째 시간으로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소장의 강연 내용 일부를 요약합니다.
※이 강연의 정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세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익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으로 숭례문이란 이름도 그냥 붙인 것이 아니다. 그는 한양성의 틀을 잡을 때도 유학의 성질을 기반으로 했다. 한양을 ‘유학이 완전히 구현된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4대문의 이름을 유학에 나오는 인간의 본성인 4단(仁義禮智)에서 하나씩 차용해 지었다.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그리고 홍지(智)문이 그것이다(원래 4대문의 북쪽 이름은 숙정문인데 북쪽은 음기가 세기 때문에 열어놓으면 환란이 많이 생긴다 하여 숙정문을 항상 닫아놓고서 홍지문으로 대문을 갈음했다). 가장 중요한 신(信)은 바로 보신각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다. 모든 가정과 국가의 기본은 신뢰다. 왕이 신하를 못 믿고 백성이 왕을 믿지 못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보신각의 타종으로 사대문을 열고 닫았다. 또한 서대문인 돈의문이 없어진 것도 그 이름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의를 찾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일제가 돈의문을 헐고 거기에 형무소를 지은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인의예지신이란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과 의는 현대 경영에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해라(見利思義)’라고 대답했다. 돈을 벌 때 이게 의로운지,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이익을 보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얻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 중에서 한계효용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재화가 돈이다. 빵은 하나 먹을 때는 맛있지만 열 개 먹을 때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돈은 천만 원을 받아도 좋고 천억 원을 받아도 좋다. 돈은 자기 기운이 있고 자기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 중에는 검은 돈과 흰 돈이 있다. 흰 돈은 내가 정말 열심히 해서 월급 받는 것, 정말 멋지게 성과를 내서 성과급을 받는 것,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로 거대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검은 돈은 다르다. 뇌물로 받는 것, 로또 당첨금 받는 것, 이런 돈은 틀림없이 뒤탈이 난다. 돈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논어, 한 손에는 주판
일본이 현재와 같은 저력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자본주의가 들어오던 시대에 철학을 잘 정립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이 ‘석문심학(石門心學)’을 주장했던 이시다 바이칸(石田梅岩)과 메이지 유신 시대의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다. 이 둘은 일본의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었고 단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일본 근대경제의 기조를 탄탄하게 닦았다.
먼저 이시다 바이칸은 오사카 상인들의 상인정신을 만든 사람이다. 옛날에는 물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시다 바이칸은 상대와 자신 모두가 잘되는 것이 상도라고 주장했다. 그전까지는 돈을 만지는 상업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라 봤다면 그는 좋은 물건을 적은 이윤을 붙이고 팔아서 소비자가 만족을 얻도록 하는 것이 곧 상도라고 주장해 오사카 상인들의 상업관념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마음이 든든해진 오사카 상인들의 사업은 급속하게 성장한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에도 말기에 태어나서 메이지(明治)시대부터 쇼와(昭和)시대까지 4시대에 걸쳐서 활동하며 일본 현대 자본주의의 초석을 닦은 사람이다. 그는 부를 쌓는 것이 곧 인이라고 보았다. 2006년 중국 CCTV에서 만든 특집 프로그램 ‘대국굴기(大國屈起)’ 7편에 시부사와 에이치가 나오는데 여기서 그는 한 손에 논어, 한 손에 주판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서양의 경영학은 피터 드러커, 동양의 경영학은 시부사와 에이치다”는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 정부에서 조세국장과 구조개혁국장을 지낸 후 ‘상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면서 서른셋에 관직을 버리고 실업계로 갔다. 그리고 미즈호은행, 태평양시멘트, 철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등 무려 500개 기업의 설립에 관여했다. 그는 ‘도덕과 경제는 하나다’면서 부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 “정당한 부는 부끄럽지 않고 지속 가능한 부이다. 인의(仁義)와 일치하는 부를 쌓아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오늘날 얘기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같은 맥락이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강조했다.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말라. 빈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공자는 결코 부귀를 경시하고 빈천을 중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면서 <논어> 태백(泰伯) 편의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유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비천하다면 부끄러워해야 된다’는 구절을 역설한다. 부를 얻는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경영자는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행복을 주는 부, 사회·국가의 행복과 일치하는 부를 쌓아야 된다는 것의 그의 사상이었다.
그렇다면 ‘인의와 일치하는 부’는 어떻게 이뤄야 하는가? 시부사와 에이치는 2가지 구체적인 방법론도 역설했다. 첫 번째 방법은 신뢰다. ‘저 사람, 저 기업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다음이 이타(利他), 즉 ‘내가 이루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이루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이념 삼아 성장한 일본의 자본가와 상인들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 시부사와 에이치 역시 민간 경제계 차원에서 일찍부터 일본 자본의 한국 경제 침략을 적극 권장하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황해도 황주군의 3000정보의 토지를 헐값에 사들이면서 한국흥업주식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더불어 한반도 농업침탈의 첨병역할을 했다. ‘도덕경제합일설’을 주장했지만 하는 행동은 달랐다. 또한 ‘부는 정당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면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정한론(征韓論)을 강하게 지지했다. 식민지 수탈은 국가에 좋은 것이라는 엄청난 제국 패권주의적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대한제국의 1엔, 5엔, 10엔권 세 군데에 자기 얼굴을 넣었다. 이것이 일본식 ‘논어와 주판’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몸과 생각이 같다. 그래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우리 한국이다.
한국의 논어 경영
중국에서는 아직 논어식 경영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공자를 완전히 배척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공자의 정신을 이용하겠다고 찾고 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일천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논어 경영은 어떤지 살펴보자.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공자의 말 한마디 글자 하나는 인간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고 세상의 별이 된다.” 또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가장 감명을 준 책으로 <논어>를 꼽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논어>이고 설령 나의 생활이나 생각이 <논어>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
서양의 경영학은 1675년에 프랑스의 자크 사바리가 <완전한 상인>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시작됐다 볼 수 있다. 이것이 독일경영학으로 발전하고 약 230년 후인 1911년에 프레드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의 원리>를 발간하며 미국식 경영학이 시작된다. 피터 드러커는 개인이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모아 과업을 이룬다는 뜻에서 ‘getting things done through the people’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양의 맹자는 2300년 전의 사람이다. <등문공(騰文公)>에서 맹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물건의 값이 똑같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정에 따른 것이니 값의 차이가 배가 되고 열 배가 되고 천 배, 만 배가 되도 문제가 없다. 이것을 나란히 하여 똑같이 하려고 하니 천하를 어지럽히는 짓이다. 큰 신과 작은 신의 값이 같다면 어찌 큰 신을 만들겠는가?” 맹자는 상황도 다르고 들어가는 부가가치도 다른데 이것을 똑같이 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마케팅 강의를 한 것이다. 맹자의 책을 보면 인사관리, 마케팅, 전략에 대한 얘기들이 다 있다.
<시경(詩經)>에는 “영대를 축성해 측량하고 지어보고 하니 백성들이 모여들어 며칠 못 가서 다 이루었네”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經始靈臺(경시영대) 經之營之(경지영지)’에서 경영이라는 말이 나왔다. 즉, 맹자는 축대를 측량하고 짓고 만드는 데 인사관리는 어떻게 했고, 사람 마음은 어떻게 모았으며, 성과는 어떻게 냈고, 그래서 직원들을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 참다운 경영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경(經)의 뜻은 옷감 짜는 날실이다. 옷감의 큰 뜰을 짜는 실을 의미한다. 기업 경영으로 치면 전략이며 사업구조인 것이다. 경(經)에서 나오는 단어가 경세가(經世家: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이 있다. 세상을 잘 다스려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것, 여기서 경제라는 말이 나왔다. 경세제민에서 경제가 나왔고, 경지영지에서 경영이 나왔다.
영(營)은 집을 뜻하는 여(呂) 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형(熒)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집을 만들고 영위하다, 집 따위를 짓거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경(經)은 큰 프레임을 짜고 내가 왜 존재하는지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라면 영(營)은 옆에서 지켜보며 관리하는 것이다.
서구식 경영학은 일 시키는 경영학이다. 20세기에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 사람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경영학은 한마음 경영학이다. 구성원의 마음과 능력을 모아 업을 이루고 서로를 돕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100년을 논한 서양 경영학과 3000년을 논한 우리의 경영학, 어디에서 더 깊이와 파워, 힘이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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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노하우, 브랜드의 중요성
다시 숭례문의 비밀로 돌아가자. 처음 한양성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은 화마(火魔)가 들끓는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풍수지리적으로 관악산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관악산이 불타는 모양이고 또 기운이 강한 악산(嶽山)산이다. 그래서 관악산을 바라보는 숭례문의 현판을 예외적으로 세로로 쓰게 됐다. 숭(崇)자가 불타는 모양이다. 불이 위로 타오르라고 현판을 세로로 쓴 것이다. 이걸로 부족해서 광화문 앞에 해치, 즉 수성이 강한 해태를 두 마리나 놔뒀다. 또 경회루에 청동 용을 두 마리나 넣었다. 화마로부터 수룡이 보호해주는 의미다. 그것도 부족해서 불이 날 때마다 우물을 팠다. 그래서 경복궁에 우물이 많다. 이렇게 화마를 대비했다.
몇 년 전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졌다. 유형 문화재인 숭례문이 탔으니 국보 1호로서의 가치가 소실된 것인가? 아니다. 숭례문은 무형적 지식자산들이 중요하다. 몇 번이나 재건했던 겉모습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개국이념과 정신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현판에 담겨 있는 ‘숭례문’이라는 글과 지식에 모든 가치의 DNA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보 1호의 가치는 숭례문 현판 하나로 충분하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치를 이루던 시기는 지나갔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강한 가치를 지닌 시대가 왔다.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보물은 책상, 생산라인, 부동산, 공장, 토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기업이 부도가 나면 그 속에 있던 자산가치는 즉시 없어진다. 즉 보이는 것들에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들 중 첫 번째는 고객이다. 고객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다. 고객을 돈 버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유학경영이 아니다. 두 번째로 보이지 않는 보물은 노하우, 즉 지식자산이다. 숭례문 현판 그 하나에 들어간 지식자산이 국보 1호의 가치를 지니는데 회사의 지식 가치는 어디에 체화(體化)돼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식자산의 노하우가 어디에 있는지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의 지식자산이 어디 있는지를 경영자가 파악하지 못하면 회사관리가 안 되는 것이다. 체화된 노하우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두 번째 보물인 것이다. 일례로 일본이 전후에 패망했다지만 쉽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과 인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미가제 자폭부대에 쓰인 ‘제로 파이터’ 비행기를 만들 때 인체공학을 접목해 조종사의 몸이 움직이는 대로 비행기가 반응하도록 했다. 그래서 빽빽한 탄환 속을 헤집고 자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미가제 전술은 인명을 경시하는 나쁜 발상이지만 비행기 자체는 세계 최고의 기술이었다. 따라서 전쟁에서 진 후에 미쓰비시와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할 때 대장간에서 곡괭이 정도나 만들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로, 반도체로 미국시장에서 일본하고 맞붙고 또 이기고 있다. 이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우리 회사의 지식재산이 어디 있는지, 체화된 노하우를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회사에서 종이 한 장 들고 가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노하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가치는 브랜드다. 브랜드는 곧 신뢰다. 브랜드를 산다는 것은 내가 이 제품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만든 6만 원짜리 커피포트는 중소기업이 만든 2만 원짜리 커피포트보다 더 잘 팔린다. 제품이 폼도 나지만 AS나 사고 후 보험처리 같은 것까지 잘 돼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 그 자체만을 사지 않는다. 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확장된 범위까지 함께 산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그래서 국가가 잘되려면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 따라서 직원이 제대로 일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질문은 ‘당신이 오늘 한 행동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올렸는가’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을 한 것이요, 아니라면 일을 잘 못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브랜드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E&E의 시대가 온다
세상의 구성 요소를 흔히 CLK로 설명한다. C는 자본(capital), L은 노동(labor), K는 지식(knowledge)을 의미한다. 노동을 노동으로만 보는 시스템은 가장 먼저 한계가 왔다. 미국과 구소련이 경쟁을 할 때 소련은 집단농장체제를 갖췄지만 미국은 전 국민의 2%만 농사를 짓는 대신 농업을 산업으로 생각해서 자본과 기술을 넣었다. 소련은 미국보다 농경지가 두 배나 더 컸으나 분배할 시스템이 없어 눈앞에 곡식이 익어도 수확을 하지 못하고 한쪽에서는 사람이 굶었다. 반면 미국은 농업을 산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 전 세계를 먹여 살렸다. 노동을 노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 특히 자본이 투여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본에도 곧 한계가 왔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가족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 상업자본주의를 거쳐 돈이 산업과 사업과 고객을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에 이르렀다. 금융자본주의의 문제는 금융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에는 창조의 즐거움이 없다. 컴퓨터 키보드를 아무리 두들겨도 밖에서는 무엇인가 자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이 잃어야 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게 금융자본중심의 시대에 오면서 생긴 한계이다. 공산주의 역시 한계가 있었다. 맑시즘은 자본과 노동과의 관계만을 중시하고 혁신과 지식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제는 지식사회다. 지식사회에 필요한 인력과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력은 다르다. 초중고 기초교육은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는 데 적합하다. 반면 대학교의 박사과정은 혼자서 사변할 수 있는, 자기가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를 만든다. 지식사회에는 산업사회의 인력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앞으로의 지식사회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동일한 것을 집어넣고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제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이 혁신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절대지(絶對知)와 통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딱 떠오르는 인사이트와 영감은 치열한 논리적 사고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탁 치듯이 밖에서 머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하는 사람은 하늘의 절대지(絶對知), 궁극지(窮極知)와 교감해야 하며 마음이 맑은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혁신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생각해보자. 최근에 돈을 벌었던 사업들을 보면 C&C, 즉 컴퓨터(computer)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었다. 다음 단계는 M&M이다. 모바일(mobile)과 모빌리티(mobility)다. 다음 단계는 R&R이다. 로보틱스(robotics)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이다. M&M이 합쳐지면서 기계가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로보틱스 기술이 나왔고 RFID와 같은 기술을 통해 모든 사물들끼리 통신이 가능한 방향으로 한번 더 진화하고 있다.
R&R의 다음 단계로는 E&E가 될 것이다. E는 감정(emotion)이다. 사람들의 감정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푸근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감정사업이 중요해진다. 두 번째 E는 에너지(energy)다. 자동차도 이제는 연비를 보고 구매하는 시대다. 지금은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 사업, 혹은 에너지를 줄여줄 수 있는 사업이 돈을 번다.
이런 것들이 전부 지식 혁신이다. 지식이 생산하는 혁신 부가가치는 기존의 자본과 노동이 가져오는 부가가치와 비교도 안 되게 크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책 많이 읽고 자료 많이 보고 논리적으로 사고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공자는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라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는 것이다.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여기서 문명이 한 단계 더 진보했지만 누가 사과를 나무 위에까지 올렸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힘, 지식, 절대지, 그리고 부가가치의 근원은 생명이고 하늘이다. 천지인의 정신이다.
한국이 새로운 자본주의시대를 이끌어야 하는 이유
이것이 우리가 논어와 경영을 공부하는 이유다. 논어와 경영은 나의 행동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동을 생각하고 한마음으로 함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논어와 경영 안에는 한국의 가치, 한국의 문화, 그리고 경영의 미래가 있다.
이전 강의에서 이기동 교수와 이어령 장관이 한마음과 생명을 이야기한 이유는 다음 시대의 자본주의가 한마음과 생명의 자본주의기 때문이다. 한마음, 생명, 자본주의, 이 세 가지가 같이 가줘야 한다. 맹자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 했다. ‘변치 않는 재산이 있다면, 변치 않는 마음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음은 사람을 노동력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본이 투하된 사람으로만 여기지도 않는다. 자본이 투자돼서 교육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요즘 학교 교육을 보면 산업시대에 필요한 단순 노동력만 생산하고 있다. 이 시대의 교육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 같이 살겠다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자본주의가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다.
그럼 자본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다. 단, 옛날 농사짓던 시절에는 자본은 단순히 지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자본은 항산항심으로 가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이 착하려면 가진 것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식이 옆에서 사흘째 굶고 있는데 아버지 된 심정에 담을 넘어서라도 먹을 것을 훔쳐야 되지 않겠는가? 다 살려고 그러는 것이지 나쁜 짓을 하고 싶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경제이고 경영이다. 부(富)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낳고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자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그러한 ‘상생자본’이 필요하다. 기본의 자본주의는 항상 노동과 자본의 대립, 상극이 있었으나 생명자본주의는 상생으로 갈 것이다. 이게 논어의 철학이며 인의 정신이다. 우리가 노동자를 노동자로 봐서 일을 시킬 때와 노동자를 사람으로 봐서 일자리를 주고 같이 살고 같이 생산하려 할 때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자본가를 볼 때도 ‘나를 착취하는 대상’으로 볼 때와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상’으로 볼 때는 다르다. 한마음, 생명, 자본주의 이 세 가지는 함께 갈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될 수 있고 또 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의 선진국들을 보면 이른바 G7이라는 나라들은 모두 약탈자본주의, 패권주의, 수탈경제를 통해 성장한 국가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었던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일본이 다 마찬가지로 상극의 자본주의를 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해외에서 반도체를 팔고, 자동차를 팔아도 그 지역과 상생을 생각한다. 대신증권에서 라오스에 금융시장을 만들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는 ‘라오스가 이제 좀 잘 되겠구나. 우리도 가서 같이 뭘 잘해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일 미국회사가 라오스에서 금융시장을 만들어준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야, 미국이 라오스에서 한 건 해먹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기존의 선진국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항상 인의 정신으로 남을 살리면서 같이 사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우리가 선진국이 될지는 우리의 노력 여부에 달렸다. 그런데 선진국이 돼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인류 역사 1만 년에 유일한 도덕성을 가진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정신자산과 경영철학은 100년 된 미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경영철학은 사람들이 같이 참여해서, 같이 가치를 창출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행복하게 하는 자본주의다. 그것이 바로 한마음 생명 자본주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을 가진 나라다. 인덕경영이 가능한 나라다. 다음 시대의 생명자본주의가 가능한 나라다.
이런 얘기를 듣고 누군가 “지금 미국에서 도요타의 렉서스가 죽을 쓰고 있는데 이럴 때 현대자동차가 그곳에서 경쟁해서 이겨야지, 경쟁하지 말라고 하면 뭐합니까”라고 물었다. 답은 간단하다. 현대자동차가 도요타를 이기려고 자동차산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목표는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만들어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타면 그만이다. 즉, 우리의 목표는 오롯하게 우리 일을 해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자본주의고,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다음 시대의 경영자다.
정리=조진서 기자 [email protected]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전략경영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성균관대 유학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경영학과 유학을 넘나드는 활발한 강연 및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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