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선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다. 1월12일 경북 상주에서 터진 웅진폴리실리콘㈜의 염산 누출사고를 시작으로 같은 달 15일과 27일엔 충북 청주의 ㈜지디와 경기 화성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각각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3월2일엔 경북 구미의 LG실트론 공장에서 불산·질산·초산이 섞인 혼합액 누출사고가 일어났고 급기야 14일엔 대림산업 여수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까지 발생해 6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안전 불감증이 극에 달했다는 우려와 함께 체계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은, 이른바 ‘코코넛 위기’ 상황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선 언제 야자나무에서 코코넛 열매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수많은 사고 통계데이터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한 ‘하인리히 법칙’에서도 증명됐듯 세상에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기도 있다. 이른바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은 1건의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유사한 경미한 재해들이 29건 있었고, 그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사고들이 300번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사전 징후만 제대로 포착해도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마이클 D. 왓킨스와 맥스 H. 베이저먼이 2003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제시한 ‘RPM 프로세스’를 참고해볼 만하다. 어떤 사태가 예측 가능한 위기인지를 판단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면 △데이터 분석 및 해석을 통해 현존하는 위험 징후들을 인식(Recognition)하고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인지된 위험 요소 간 우선순위(Prioritization)를 정한 후 △효과적인 자원 운용(Mobilization)을 통해 위험 요소가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왓킨스와 베이저먼 교수는 실제 경영 현장에서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대응에 실패해 큰 위기로 번진 사례로 △2001년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무산된 GE와 허니웰 간 합병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비판적인 유럽 소비자들의 정서를 읽지 못한 몬산토 △199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로 에이즈 치료제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가 국제적 비난 여론에 부딪혀 3년 뒤 스스로 소송을 취하한 39개 글로벌 제약회사 등을 들었다. 모두 ‘RPM’ 각 단계별 미숙한 대처로 조그만 불씨가 큰 대형 화재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GE와 허니웰 간 합병에 대한 EU의 불허 결정은 당초 예견된 것이었다. 양사 합병으로 GE의 제트엔진 사업과 허니웰의 항공 전자부품 사업이 연계되면 독과점이 초래돼 유럽의 항공기 제작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는 EU의 우려가 수차례 제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GE는 합병 규제와 관련한 미국과 유럽 간 차이, 특히 반독점 분야에 강경한 EU의 입장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초대형 합병딜이 무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몬산토의 경우 위험 요소에 대한 우선순위를 제대로 매기지 못해 화를 자초한 케이스다. 몬산토는 광우병 사태 등으로 GMO를 ‘프랑켄푸드(Frankenfood·GMO를 괴기스런 인조인간인 프랑켄슈타인에 빗댄 말)’라고 부를 정도로 식품 안전 이슈에 민감한 유럽 시장의 특성을 간과하고 자사의 생명공학 기술력만 강조했다. 즉,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해야 할 문제에 ‘이성’적으로만 접근해 GMO에 대한 반발만 더욱 키웠다.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한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연합 소송은 자원 운용상 실패로 화를 키웠다. 이들은 국제특허를 받은 에이즈 치료제 대신 값싼 치료제를 수입해 제조할 수 있도록 한 남아공 법률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가 빈곤국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취한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남아공이라는 협소한 시장에서의 특허권 분쟁에서 승소하는 데 역량을 잘못 집중함으로써 다국적 제약업체 전반에 부정적 인식을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흔히 조직에서 어떤 사고나 문제가 일어나면 위기 발생의 원인을 파악한다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위기 상황은 전체 조직 차원에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응력과 복원력(corporate resilience)을 갖춰 대응해야 할 문제이지 마녀 사냥하듯 책임 소재를 가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전 예방을 위한 위기관리에서 신경 써야할 일은 우선 예측 가능한 재해와 불가능한 위기를 가려내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예측 가능한 사고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관리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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