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1805년 12월 아우스터리츠 평원에서 러·오 연합군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간 전쟁이 벌어졌다. 연합군의 병력은 8만5000명으로 4만 명의 프랑스군보다 두 배에 달했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교묘히 적군을 속였고 생일레르 사단은 전략 요충인 프란첼 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오스트리아군이 나타났다. 생일레르 사단은 완전 탈진해 있었고 탄약도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생일레르 사단에 증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생일레르 고참병들은 빈총에 착검을 하고 오스트리아군을 향해 돌진했다. 사정없이 찔러오는 총검에 오스트리아군은 지레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났다. 나폴레옹은 생일레르 사단이 자신들의 업무를 충실히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부하들의 행동 방식과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천재는 나폴레옹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과 구성원의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분석이 축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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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전투란 백전노장의 장군에게도 공포스러운 것이다.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운명의 여신이 지배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1805년 12월 아우스터리츠 평원에 있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장군들은 승리의 확신에 차 있었다. 유독 주당이 많고 갈 때까지 가는 음주풍속이 있던 러시아 장군들은 전투 전날 거나한 술파티까지 즐겼다.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술이 깨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승리는 확실했다. 러·오 연합군의 병력은 약 8만5000명, 프랑스군은 약 4만 명으로 2배에 달했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초조했다. 조금 전에 트라팔카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이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참패를 당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오직 군사적 승리를 통해 황제가 된 인물이었다. 패전은 그의 정치 이력에 치명적이었다. 당장 파리에서 쿠데타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럴 때 육군마저 패전하면 그건 정말 치명타였다.
나폴레옹은 병력이 열세인 군대에게 절대 불리한 평원으로 프랑스군을 내몰았다. 그나마 전략요충인 평원 중앙, 프란첼 고지라는 작은 언덕까지도 포기하고 물러서야 했다. 언덕을 보존하려면 좌우의 방어선이 너무나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언덕에는 러시아군의 작전 지휘소가 들어섰다.
서두름과 초조함. 이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는다는 압박감. 2배는 우세한 적군. 이런 삼중의 압박 속에서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란 힘들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초조함에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연합군은 유럽의 모든 질서를 뒤엎고 있는 이 망나니를 평원에서 섬멸하기로 결심했다.
Battle of Austerlitz_painted_by Francois Pascal Simon Gerard
2대1의 싸움
병력이 부족한 나폴레옹은 연합군을 상대로 온전한 방어선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좌익에는 2만 정도로 연합군을 상대할 만한 충분한 병력을 배치했지만 그 대가로 우익을 극단적으로 약화시켜야 했다. 겨우 3개 사단, 5000∼6000명이 배치됐다. 다행히 우익에는 앞에 강이 흐르고 두 개의 마을이 있었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강은 물론이고 마을도 곤란한 장애물이었다. 이 당시 전쟁은 병사들이 밀집대형으로 길게 횡대를 유지하면서 적을 향해 걸어서 전진하는 형태였다. 마을의 가옥들은 이 횡대형의 유지를 곤란하게 하고 밀집대형을 분산시켰다. 프랑스군은 집들을 이용해서 밀집대형을 포기하고 병력은 분산시켰다. 소위 산병전술이라는 것으로 공격에는 불리하지만 방어에는 매우 유리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나폴레옹은 우익의 배치에 교묘한 술수를 썼다. 우익과 중군의 사이 공간을 넓혀둔 것이다. 강과 마을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덕분에 러시아군은 우익을 섬멸하고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 더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에게 이것은 그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 전투를 무승부로 가져가 보자는 꼼수 정도로 보였다. 그러면 더 강력한 밀집공격으로 우익을 분쇄하면 된다.
아우스터리츠의 태양
아침 8시경 전투가 개시됐다. 프란첼 고지와 주변의 포도밭에는 아침 안개가 두껍게 피어올랐다. 좌우의 전선에서는 화약 연기로 가득찼다. 예상대로 우익의 프랑스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압도적 우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9시가 넘어가면서 안개가 걷히고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이 평원을 가득히 비추기 시작했다. 이때 프란첼 고지에 있던 러시아군 지휘부는 바로 그들 앞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광채를 보고 자지러졌다. 프랑스군 2개 사단이 안개에 숨어 어느 새 프란첼 고지 앞까지 와 있었다. 러시아군은 그제야 나폴레옹의 흉계를 알아차렸다. 우익을 약화시켜 멀리 떼어놓은 것도, 프란첼 고지를 포기한 것도 미끼였다. 프랑스군이 프란첼 고지를 점령하면 좌우로 길게 분산된 연합군은 완전히 양분되고 측면을 무방비로 드러내게 된다. 프랑스군 포병은 그야말로 신나게 연합군의 옆구리를 난타할 것이다.
천재는 남이 하지 않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증명되지 않은 창의적인 방법에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실험해 보지 않은 방법은 위험하다고
말하면 나폴레옹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뻔한 방법을 따르는 것은 더 위험하다.”
프란첼 고지에 투입한 생일레르와 반담 사단은 나폴레옹군의 최정예였다. 러시아군은 고지에 의지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프랑스군도 필사적이었다. 보기 드문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프란첼을 빼앗겨도 우익에서 승리하면 연합군은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익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어디선가 프랑스군 증원부대가 나타났다. 나폴레옹은 110㎞ 떨어진 빈에 있던 다부 원수의 군대를 비밀리에 호출했다. 다부는 용기병(소총으로 무장한 기병)과 강행군을 견뎌낼 수 있는 최정예 보병 부대만을 이끌고 나흘 만에 110㎞를 주파했다.
마침내 프랑스군이 고지를 점령했다. 이때 운명의 장난이 발생했다. 갑자기 오스트리아군이 프란첼 고지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익으로 파견된 부대였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프란첼로 왔던 것이다. 프란첼을 탈환한 생일레르 사단은 완전 탈진 상태에 탄약도 다 떨어졌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데 나폴레옹은 충분한 예비대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란첼을 지원하지 않았다.
고지를 다시 뺏기려는 순간 생일레르의 고참병들이 빈총에 착검을 하고 오스트리아군을 향해 돌진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투방식이 백병전이다. 신병들이었던 오스트리아군은 언덕의 비탈을 달려 내려오며 사정없이 찔러오는 총검을 보자 공포에 질려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났다. 여기서도 나폴레옹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나폴레옹이 어설픈 부대를 증원군으로 투입했으면 생일레르는 착검돌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증원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밀리면 기세가 오른 그들은 착검돌격에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부대가 극한의 능력을 발휘할 것을 믿고 그들에게 상황을 일임한 것이다.
언덕 아래 포도밭에서 싸우던 반담 사단도 역습을 가해온 러시아 사단을 격전 끝에 물리쳤다. 이 뒤로 몇 개의 전투가 더 벌어졌지만 프란첼 점령으로 이미 승부가 정해졌다. 프랑스군은 예비대를 출동시켜 연합군 중앙을 절단하고 우익을 공격하는 러시아군을 포위해서 섬멸했다. 전투는 나폴레옹의 대승리로 끝났다. 연합군은 2만7000명이 전사한 반면 프랑스군은 7000명을 잃었다.
천재의 조건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군사적 천재로 불리는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승리다. 여기서 그는 천재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과시했다. 천재란 단지 지능이 높은 사람, 학습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첫째, 천재란 관습, 즉 남이 하는 방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작전을 정확히 예측했다. 그가 펼쳐놓은 진형에 연합군이 아주 정상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이런 방식을 합리와 관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재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모험과 창의를 두려워하고 쉽게 승리를 얻으려는 욕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천재는 보통 사람의 행동을 쉽게 예측하고 그들의 머리 위에서 움직인다.
둘째, 천재는 남이 하지 않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증명되지 않은 창의적인 방법에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실험해 보지 않은 방법은 위험하다고 말하면 나폴레옹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뻔한 방법을 따르는 것은 더 위험하다.”
셋째, 극단적인 압박감과 동요를 이겨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폴레옹은 오히려 이런 순간을 즐겼다. 가끔 나폴레옹은 너무 과시욕이 강하고 때로는 자아도취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바꿔 생각하면 극단적 상황을 즐기며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재의 교만은 거부감을 주지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넷째, 어떤 천재라도 극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얼핏 제갈량과 같은 계략은 안 보이는 듯하지만 이 넓은 전쟁터에서 병력운용, 다양한 변수가 컴퓨터처럼 맞아 돌아갔다. 많은 군사전략가들이 이 컴퓨터 게임 같은 전투 운영 능력에 경탄을 한다. 그 비결은 나폴레옹의 인간 파악 능력이다. 나폴레옹은 적장에 대한 예측만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의 행동방식과 능력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의 부하 장군들, 특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을 책임질 부하들은 그 역할을 정확하게 해 냈다. 생일레르 사단의 분전이 그것이다. 이런 능력은 결코 선천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성찰과 구성원의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분석이 축적돼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천재는 착검돌격처럼 구성원이 경험하지 못한 일,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라는 변수까지도 파악하고 그의 활동영역과 임무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폴레옹을 천재로 만든 비결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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