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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원칙

이방실 | 157호 (2014년 7월 Issue 2)

민들레는 흔히 잡초의 대명사로 불린다. 매년 봄이 되면 산과 들은 물론이고 길가나 담벼락,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꿋꿋이 피어오른다. 질긴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잡초이기에 겪어야 할 숙명도 있다. 바로언제든 밟히거나 뽑힐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알레르기 환자들에게 민들레는 온 사방에 흩날리며 재채기를 유발하는 천덕꾸러기.

 

하지만 민들레는 쓸모없는 잡초 따위가 아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열독을 풀고 악종(惡腫)을 삭히며 멍울을 깨트리고 음식 독을 풀며 체기를 내리는 데 뛰어난 효능이 있는 약초다. 실제로 민들레 뿌리엔 간 기능을 개선하는 콜린 성분이, 잎에는 항암 작용을 하는 실리마린 성분이, 꽃에는 시력 보호에 효과적인 루테인 성분이 각각 들어 있다고 한다.

 

똑같은 민들레를 놓고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잡초 취급을 할 수도, 약초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원사에게 민들레는 푸른 잔디밭의 조경을 해치는 주범이다. 반면 약재상에겐 환자의 병을 낫게 하는 명약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 중엔 괴팍하고 특이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들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고 외면해 버릴 수도, 기업을 이끌어갈동량’으로 키워나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덴마크 기업 스페셜리스테른(Specialisterne)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소프트웨어 검사 및 품질 관리 업무를 대행해 주는 스페셜리스테른은 전 직원의 약 75%가 자폐 성향을 갖고 있다. 자폐의 대표 증상 중 하나는 제한적이고 반복적이며 일정한 방식이 유지되는 행동이나 활동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정상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창업자 토킬 손(Thorkil Sonne)은 바로 이 점에 집중했다. 소프트웨어 테스트 작업은 매우 반복적이어서 정상인들은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쉽게 지쳐버리지만 자폐증이 있는 이들에겐 즐겁게 일하며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을 간파하고 2004년 회사를 창업했다.

 

현재 스페셜리스테른은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SAP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서비스에 만족한 SAP는 심지어 자폐 성향을 가진 이들을 직접 고용해 그 비율을 2020년까지 전 직원의 1%로 높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벨기에 파스베뤽(Passwerk), 독일 아우티콘(Auticon), 미국 애스피러텍(Aspiritech) 등 스페셜리스테른처럼 자폐 성향을 가진 이들을 컨설턴트로 고용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의 로버트 D. 오스틴 교수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민들레 원칙(dandelion principle)’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폐 성향(민들레)’조차장애(잡초)’가 아닌남다른 경쟁력(약초)’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라는 것이다. 사람들 개개인에게 숨겨진 강점을 간파해 내는 것은 마치 민들레의 효능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 진가를 아는 사람만이 민들레를 잡초가 아닌 약초로 활용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스틴 교수는 이런 민들레 원칙이야말로 21세기 혁신 기반 경제에서 기업들이 중시해야 할 인적자원 관리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대량 생산이 중시됐던 20세기에는 효율성을 높이는 게 지상 과제였다. 바람직한 인재상은평균에 수렴하는 인재였다. 틀에 박힌 직무분석표에 따라 정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와 혁신이 중요한 21세기엔 다양한 성향의 인재풀을 확보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평균과 동떨어진아웃라이어(outlier)’들을 적극 수용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끔 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이고 할 것 없이 흔히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 전에 먼저 회사가 얼마나 다양한 인재들을 채용하려 노력하고 있고, 조직원들 각각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그저 상사의 명령을 잘 들을 것만 같은 평범한 사람들만 뽑아 놓고 지시대로 일처리만 하라고 닦달하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재능은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괴짜들도 과감하게 채용하고, 이들이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쓸 만한 인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업이 먼저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아내 갈고 닦는 노력을 할 때, 더 이상 잡초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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