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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_2022년 어느 날 코리아

아들이 말했다. “무지한 분노가 공포스럽다”고…

우다영 | 218호 (2017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빈집과 빈 공장만 남겨졌던 위험한 도시에서 제2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난 러스트벨트. 그런 러스트벨트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포토저널리스트 아들이 테러에 휘말려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업테러’가 일어난 것. 포드, GM 등 자동차 회사가 보호무역정책에 따라 멕시코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자 이에 반발한 집단이 모터쇼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보도였다. 아들은 사흘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곧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재킷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사진 한 장을 넣고 다닌다. 오래 전에 넣어두고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몇년 전 어느 날 그는 아들의 신원을 증명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아침처럼 항산화 효과가 있고 당뇨에도 좋은 뜨거운 콩차를 한 잔 만들어 식탁에 앉은 참이었다. 그는 늘 그 시간에 집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주방 식탁에 앉아 차가 식기를 기다리며 태블릿PC로 그날의 주요한 기사들을 읽었다. 몇 년 전부터 노안이 와서 고생하는 것을 본 아들이 선물해준 태블릿PC는 기사를 읽거나 저장해둔 사진을 꺼내 볼 때 요긴했다. 사진은 대부분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을 찍은 것이었고, 유원지의 빨간 꽃밭이나 저녁 고궁의 아름다운 돌담을 배경으로 찍은 특별한 사진들도 있었지만, 그는 아들이 자라며 조금씩 평수를 넓혀나갔던 옛집들에서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더 좋아했다. 사진 속 어린 아들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작고 찐득한 과자를 먹기도 하고 때때로 그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자주 카메라 앵글에 잡혔던 아내의 모습은 이제 그에게 소중한 추억이 됐다. 아내는 3년 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급하게 저세상으로 갔다.



“그러니까 아드님이 맞다 이거죠?”

전화를 건 남자가 재차 물었다.

“예, 예,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뇨. 새벽에 일어난 디트로이트 모터쇼 테러의 참고인으로 지금 조사받고 있는데….”

“테러요?”

그는 반사적으로 물은 뒤 자신이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낸 그 단어와 그가 살아온 삶 사이의 거리를 아득한 기분으로 헤아려 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새 이런 일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전화 너머의 남자는 주차 딱지를 떼거나 공과금 미납을 알려주는 투로 말했다. 그는 남자가 묻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아들은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포토저널리스트이며 최근 행선지는 오키나와를 경유해 미국 동북부로 갔을 거라고 아는 대로 말해줄 수 있었지만 그 애가 평소 어울리는 사람들과 그 무리의 성향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가 진술한 내용을 참고해 아들의 신원을 조사하고 그 자료를 미국 당국에 공조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곧 귀국조치될 겁니다.”

남자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는 우리 아들은 그럴 애가 아니라고, 조금도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심지어 아들의 상태는 어떤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조차 묻지 않은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한동안 식탁 앞에 앉아 망연자실하던 그는 이내 스스로를 타일렀다. 요새는 정말 이런 일이 흔하지 않은가. 툭하면 어디선가 테러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어느 나라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묘한 감정이 생겼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공포와 증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그 감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외국인의 출입국이 엄격해져서 생겨난 크고 작은 문제들, 테러지역에서 1순위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타 국적 사람들이 장기간 구류되면서 벌어지는 분쟁들을 그는 흔한 기사로 이미 접했다. 그리고 그것이 테러를 당한 국가의 히스테릭한 분풀이이자 본보기식 절차라는 것도, 구류 당한 사람들이 대개는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식어버린 콩차를 찻잔째로 빈 개수대 안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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