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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와 조직 불안

‘직장 내 괴롭힘’ 쉬쉬했다가는, 우버 사태에서 배우는 교훈

이경민 | 237호 (2017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을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으로 한정시켜 볼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직에 내재된 문화가 직장 내 괴롭힘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 글로벌 운송 스타트업인 우버가 대표적 예다. 우버는 최근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가해자가 좋은 성과를 낸다는 이유로 눈감아 준 것이 발단이 됐다. 이는 우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현상이다. 더 빨리 가르치기 위해서, 더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서 부하직원을 괴롭히거나 동료를 폄하하는 것이 용인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기업의 실적을 깎아먹고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조직문화를 면밀히 진단하고, 임직원 모두가 숙지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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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에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나서면서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Bullying)’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나친 상명하복의 문화 속에서 쉬쉬하거나 심지어 관성으로 받아들여지던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우리 기업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경영공학 교수도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다룬 두 번째 저서 『The Asshole Survival Guide(또라이로부터 살아남는 법)』에서 성과만능주의에 빠진 많은 미국 기업들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과 압박이 심한 회사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최근 세계 최대의 차량 공유업체 우버 사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연초부터 계속되는 스캔들과 보이콧 확산 끝에 결국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이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이 모든 사태를 촉발한 최초의 사건은 사내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회사를 나온 전 직원의 폭로였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해당 매니저의 실적이 좋았고 이전까지 그런 일이 보고 된 바가 없다’는 이유로 그 사건에 대해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인사팀으로부터 “당신 스스로에게는 문제가 없었느냐”는 말과 함께 “다른 팀으로 옮기든지, 그 매니저의 평가를 받으며 팀에 남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직장에 남기보다 우버를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직원이 자신의 경험담을 블로그와 언론에 폭로하자 놀랍게도 유사한 사례를 겪었다는 직원들이 줄을 이었다. 우버가 가해자에게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문제를 처리해 온 것이 드러났다. 암묵적으로 가해자의 행동이 용인되면서 그릇된 문화가 우버 내 정착된 것이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가 더 많이 발생했고, 이런 일들이 누적돼 외부로 알려지면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 겪는 극단적인 형태의 사회적 스트레스이며 피해자 개인의 건강과 안녕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상적 사건(traumatic event)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행동으로 거론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성희롱 행위 등을 포함)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의 반복 2. 특정인의 업무나 개인적 특성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3. 업무와 연관된 활동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기 4. 특정인이 쓸모없고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하는 말과 행동하기 5. 업무와 무관한 의미 없는 일을 시키기 6.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업무를 시키기 7. 직장에서 알아야 할 정보를 일부러 알려주지 않기 등이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될 경우 피해자 개인의 스트레스 증가, 중증 신체 질환 또는 정신질환의 발병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속한 의료계도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수련 과정에서 혹독한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간호사의 경우 이직률이 평균 34%에 이르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태움 문화’라고 불리는 독특한 괴롭힘 문화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혼을 내서 태운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실수를 한 신규 간호사를 주임 간호사가 몇 시간이고 인격적으로 꾸짖고 물건을 던지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주는 등의 행동을 말한다.

태움 문화는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신규 간호사의 실수를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도를 넘어 개인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등의 지나친 괴롭힘도 상당하다. 이로 인해 신규 간호사들이 100일을 채 못 채우고 그만두는 일이 많고 심하게는 스트레스로 인해 임산부 간호사가 유산, 사산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고,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 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있다는 것이다. 단시간에 조직에 맞는 수준으로 직원을 교육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부하직원을 혹독하게 대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 같은 엄격한 문화는 조직의 미래를 위한 ‘필요악’처럼 여겨졌다. 개인의 인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조직에서 형성된 암묵적 동의가 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일을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감정의 배설구로 직원을 다루는 배드 보스(Bad Boss)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그릇된 행동이 조직 내에서 묵시적으로 용인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로 “발로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어떻게 이런 직장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너처럼 무능한 사람은 처음 본다”는 등의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것이나, 서류를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것 등의 행동을 겪었다는 사례를 수도 없이 접한다.

이런 폭언, 인격적 모독, 따돌림, 업무의 불균형 등은 결국 개인의 자존감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 더 나아가 상대에 대한 분노를 안으로 축적하게 된다. 분노를 직장 내에서 적절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맡은 일을 느리게 처리한다든지, 상사 뒤에서 몰래 험담을 하는 등의 수동적인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적으로 이것을 수동-공격성(passive-aggressive behavior)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화를 처리하는 것이 단기간에는 일종의 해소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게 되면 결국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는 그 화가 자신 안으로 향하면 스스로를 공격해 “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지,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패배주의적인 사고에 빠지게 된다.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며 모든 일에 자신을 잃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일과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우울해지고 눈치만 보며 자포자기하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괴롭힘을 당한 개인은 이런 일련의 심리과정을 통해 이직을 하게 되거나 신체적, 정신적 병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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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민[email protected]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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