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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관리가 실패 극복보다 어렵다

최명기 | 39호 (2009년 8월 Issue 2)
김 원장은 유명한 ‘네트워크 피부과 병원’의 대표원장이다. 그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사업 수완이 매우 뛰어난 의사로 알려져 있다. 개원할 때 제2금융권에서까지 대출을 받는 무리수를 뒀지만, 다행히 그 무렵 불경기가 끝나고 소비 양극화가 시작됐다. 때마침 미용 관련 시장도 급성장했다. 김 원장은 하루 종일 진료해 돈을 모았고, 밤에는 사업 관계자를 만났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도 거뜬했다.
 
김 원장이 몇 개의 피부과 의원이 모여 하나의 브랜드로 공동 운영을 하는 네트워크 병원을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단독 개원에 비해 리스크가 적고, 공동 마케팅과 구매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네트워크 의원 수는 10개로 늘었다. 10개 중 5개는 파트너 의사들이 운영하는 직영이고, 나머지 5개는 브랜드를 빌려 쓰는 프랜차이즈였다.
 
그러나 불경기로 매출이 줄어들자 수익 배분을 놓고 의사들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특히 프랜차이즈 병원들에서 문제가 생겼다. 프랜차이즈 병원들은 직영 병원들보다 서비스 품질 관리가 미흡했다. 이들 병원의 원장들은, 직영 병원 원장들만 방송에 출연하고 자신들은 방송 출연 등 마케팅 활동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불평했다. 결국 김 원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랜차이즈 병원들과의 계약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김 원장은 파트너들을 설득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막상 화장품 유통 구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다 보니 큰 손해를 입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잠시 의기소침했다가 강남에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를 열었는데, 이 사업도 실패했다.
 
이제 가족들과 파트너 의사들은 김 원장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말리게 됐다. 그 자신도 이제는 진료에만 신경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스닥에 상장된 줄기세포 관련 벤처 회사에서 투자 요청이 왔다. 다른 병원에서 줄기세포 지방 이식을 하고 엄청난 돈을 받는 것을 부러워하던 그는 마침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본인의 사업적 마인드를 믿은 김 원장은 파트너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나 그 회사는 핵심 기술은 전혀 없는 ‘무늬만 바이오’인 회사였다. 김 원장은 남아 있던 자금은 물론 추가로 대출까지 받아 모두 투자했는데, 그 회사가 상장 폐지되면서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남들은 네트워크 피부과의 대표원장인 그가 갑부인 줄 안다. 김 원장도 체면이 있어 모임에서 남들이 치켜세우면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하지만 요즘 그의 속은 타들어간다. 남들은 모르지만 김 원장은 작년에 집을 팔고 전세로 바꿨다. 병원 운영을 위해서는 전세금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인데, 부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성공의 붕 뜬 기분은 판단력을 무너뜨려
 
정신질환 중 ‘조증’이라는 병이 있다. 조증에 걸린 사람들은 극도로 고양된 자신감을 갖게 된다. 미다스의 손처럼 내가 손대는 것은 뭐든지 성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머릿속은 대단한 사업 아이디어로 가득 찬다. 귀에는 칭찬과 아부만 들어오고, 반대 의견은 들리지도 않는다. 말도 많아져 깨어 있는 동안에는 쉴 틈도 없이 말을 한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런 상태가 6개월에서 1년까지 지속된다.
 
문제는 조증이 지나간 다음이다. 이런 사람들은 조증 기간 동안에 무작정 벌려놓은 사업들을 뒷수습하느라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조증이 지나간 후에 우울증이 오기 쉽다는 점이다. 우울증이 온 사람은 조증 때 벌려놓은 사업을 거의 돌보지 않게 된다. 실제로 견실한 기업인이 갑자기 과다한 지출을 하고 비상식적인 투자를 하며 조증 증상을 보인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는 부인과 아이들에게 심한 욕설을 하고 폭력을 행사해 참다못한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왔다. 결국 이 사람은 조증으로 밝혀졌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 기업인은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심한 우울증에 빠져 1년 이상을 두문불출했다. 회사는 부도가 나고, 은행에 저당 잡힌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조증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극도로 기분이 고양된다. 처음 벌린 사업에서 예상을 넘어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주식이나 펀드로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거두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해보자. 직장에서 아무리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주가가 오르고 수익률이 오르는 한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성공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기업인이 한 번 큰 성공을 거두고 나면 새로운 사업에 대해 더욱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여기저기 신규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성공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비판적 사고를 지닌 이를 옆에 둬야만 한다. 성공하면 할수록 쓴소리가 소중해진다.
 
성공을 관리하는 능력은 다르다
 
필자가 듀크대에서 MBA 수업을 받을 때 한 벤처 기업가의 특강을 들었다. 그는 회사를 키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매도를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키우기 시작한다. 왜 회사의 규모를 더 키워 스스로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울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라고 대답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자기 자신보다는 관리에 능한 사람이 기업을 넘겨받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자신은 10명 미만의 직원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사업을 키울 때까지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주위를 보면 오뚝이같이 4전 5기의 정신으로 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 그 불굴의 의지에 존경심이 생긴다. 하지만 다섯 번째의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이 네 번의 실패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 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을 이루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이들도 성공을 관리하는 데에는 초보자와 같을 수 있다. 반대로 대기업 임원을 역임한 관리의 달인도 막상 창업을 하면 백전백패일 수 있다. 하지만 자리를 잡아 일정 궤도에 이른 기업이 관리의 달인의 손에 맡겨지면 물오른 물고기처럼 일취월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이 관리의 능력을 배우거나 타인에게 관리를 의뢰하는 것도 성공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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