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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의 새끼가 붉은 소라면?

박재희 | 53호 (2010년 3월 Issue 2)
공자의 제자 중에 중궁(仲弓)이 있었다. 중궁은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제자였다. 공자는 그를 아꼈고 늘 곁에 두었다. 그러나 중궁의 아버지는 신분이 천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인물로 유명했다. 많은 사람들은 공자에게 중궁의 출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중궁을 멀리할 것을 제안했다. 공자는 출신과 성분이 그의 현재 능력에 대한 장애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얼룩소 새끼가 붉은색이고 뿔도 잘났다면 제사를 받는 저 산천이 그 소를 마다하겠는가(子謂仲弓曰, 犁牛之子가 且角이면 雖欲勿用이나 山川其舍諸아)?’
 
여기서 이우(犁牛)는 얼룩소란 의미다. 당시 제사에는 붉고(), 뿔(角)이 있는 소만 사용했다. 얼룩소는 제사에 사용할 수 있는 제물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얼룩소의 새끼라도 붉은색에 잘난 뿔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제사용으로 훌륭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이다. 이우지자(犁牛之子), 출신과 성분보다는 현재의 그 사람이 더욱 소중하며 얼룩소 새끼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제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신분이 중요했다. 부모의 신분과 처지가 좋지 못하면 그의 자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인정받지 못했다. 공자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오로지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인사가 만사라고들 한다. 조직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능력 있는 인재가 먼 곳에서 찾아오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출신과 배경, 학벌 등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 훌륭한 능력과 자질이 있음에도 과감하게 등용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출신과 배경은 좋은데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남들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백락(伯樂)은 옛날에 말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그가 꼽은 말은 여지없이 남들이 보기에는 별 볼 일이 없었다. 백락은 여위고 별 볼 일 없는 말 속에서 명마를 골라냈다. 백락상마(伯樂相馬), 취지어수(取之於瘦). 백락이 말을 고를 때 여윈 말 중에 명마를 뽑아낸다는 뜻이다. 남들은 비록 별 볼 일 없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는 말도 사실은 때와 주인을 못 만나서 그럴 뿐이지, 얼마든지 명마로 거듭날 준비가 되어 있다. 백락은 이런 말을 골라내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리더도 훌륭한 인재를 뽑을 때(聖人相士) 주변에서 늘 있는 사람보다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중에 선발해야 한다(取之於疎). 비록 지금은 멀리 있지만 보석처럼 숨겨진 능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백락(伯樂)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란 훌륭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천리마가 있게 된다.”
 
한나라 때 문장가 한유(韓愈)가 쓴 잡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리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는 백락이 태항산(太行山) 고개를 넘어갈 때 소금을 싣고 힘들게 걸어가는 말을 본 적이 있었다. 백락이 그 말이 천리마임을 알아보고 얼른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었더니 그 말이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천리마의 위용을 갖추었다고 한다. 한유는 그의 잡설에서 이렇게 말을 잇는다.
 
“아무리 명마라도 노예의 손에 이끌려 짐을 싣고 가는 일을 하면 평범한 말로 어느 이름 없는 곳에서 생을 마칠 것이며, 천리마란 칭호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인재를 제대로 쓰려면 그만큼 대접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선비라면 백락이 있고 난 후에야 천리마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당연한 이치다. 좋은 인재는 평범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비록 남들의 주목을 받고 있진 못하지만 그가 가진 잠재력과 능력을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얼룩소의 새끼로 태어났더라도 붉고 뿔 달린 소라면 제사에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오로지 학벌과 출신 때문에 숨겨져 있는 ‘붉은 소’는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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