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소개된 ‘Learning From a Veteran of Crisi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콘텐츠 공급(NYT 신디케이션 제공)
FBI의 인질 협상과 비즈니스 협상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질 협상처럼 사업 협상도 책임이 크고, 예측 불가능하며, 감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시간 끌기: FBI 인질 협상가의 삶(Stalling for Time: My Life as an FBI Hostage Negotiator, Random House, 2010)>이라는 책을 쓴 게리 노에스너는 전직 FBI 위기협상팀의 팀장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30년간 해 온 위기협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회고하고 있다. 그의 5가지 원칙은 비즈니스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상대방과 교감해야 ‘태도 변화의 계단’을 건널 수 있다
노에스너는 상대가 무엇을 얻든, 아주 힘들게 얻도록 만들면 상대방의 결심이 종종 흐트러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질범은 경찰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 자신을 내버려두길 원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협상가는 무조건 인질범에게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 상대에게 관심과 공감하는 반응을 보여줘 교감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 즉 ‘태도 변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갈 수 있다.
이를 사업가에게 적용해 보자. 특히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상대에게 접근하려 할 때는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우선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교감을 나눠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병행 접근을 시도하라
1993년 2월 28일 알코올, 담배, 무기, 폭발물 등을 담당하는 FBI 강력반이 미국 텍사스 주 브랜치 다비디언 목장에 대한 수색을 시도했다. 그곳에는 유사종교의 지도자인 데이비드 코레시가 신도 및 어린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수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4명의 FBI 요원과 6명의 신도가 사망했다.
작전은 포위 공격으로 이어졌다. 4월 19일, 50일간의 대치 끝에 FBI 전술팀은 최루탄을 쏘고 탱크로 벽을 부수며 진입 작전을 전개했다. 건물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9명에 불과했다. 25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74명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성인 사망자 중 일부는 자살한 흔적도 보였다.
노에스너는 이 사례를 들면서 “FBI 전술팀이 협상팀을 속이지 않았다면 최소한 그들 중 일부는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협상팀은 코레시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고, 21명의 어린이와 11명의 어른을 석방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술팀은 탱크를 앞세우고 한밤중에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대는 등 포위된 상대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에스너는 위기 시 이런 순차 접근(linear approach)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순차 접근은 우선 협상을 시도했다가, 빨리 해결이 안 되면 협상을 포기하고 전술 작전을 펼치는 방법을 말한다. 그 극단적 사례가 코레시에 대한 진압 작전이다. 노에스너는 이보다 협상팀과 전술팀이 ‘한 조직의 두 팀처럼’ 함께 병행 접근을 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이 접근법에서는 협상팀이 성실히 협상에 임하는 동시에 무력 진압을 준비하며 힘을 과시한다. 힘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 인질범은 자신감을 갖는다. 반대로 힘이 지나치면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병행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다.
성공적인 비즈니스 협상 전략이란 협력 전략과 경쟁 전략을 병행하는 일이다. 즉, 전체 협상 과정에서 단계마다 자신의 선의와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시간을 끌어라
보통 인질범은 인간관계의 문제, 실직 때문에 우발적으로 인질극을 벌일 때가 많다. 인질범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질 수 있다. 때문에 노에스너와 그의 동료들은 시간을 끄는 일을 자신들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질범과 협상팀은 극단적 사태를 피하고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마감 기한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협상이 과열될 때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갖거나 다음 날로 연기하는 게 좋다. 시간 지연은 각 참가자가 화를 삭이고 더 건설적인 방법을 찾게 하는 유용한 도구다.
손발이 잘 맞는 팀을 투입하라
인질극 상황에서 FBI 협상팀은 인질범뿐 아니라 뒤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전술팀, 워싱턴의 관료, 그 외 여러 관련자들과도 협상해야 한다. 조직 역량은 필수다. 앞서 말한 와코 사건에서 노에스너는 5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협상팀을 만들어 교대로 투입했다.
각 팀의 구성원은, 코레시 및 건물 내부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는 역할을 맡은 1차 협상자, 협상자의 대화를 모니터하며 전달할 메시지를 제안해 주는 역할을 하는 코치, 전화 시스템과 테이프 레코더 담당자, 주요 논점을 기록하는 서기, 팀장 등이었다. 팀장은 팀의 원활한 운영을 책임지며 FBI 전술팀의 책임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역할을 맡았다. 협상이 끝날 때마다 노에스너 자신이 두 팀을 모두 모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으며, 전화 통화를 준비시켰다.
팀워크는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협상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자기 팀 구성원 각자의 강점을 알고 그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악마와도 흥정하라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미국은 절대로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풀이해 말했다. 하지만 노에스너의 의견은 다르다. 정부가 테러리스트에게 큰 양보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테러리스트와도 대화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가상의 사례로 미국 공항의 비행기 안에서 인질극이 발생한 상황을 들었다. 그는 “협상에 임하는 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을 의미하진 않는다 해도 협상에는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질을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몸값을 지불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납치범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응징하는 것은 다음 문제라는 뜻이다.
우리는 일과 생활에서 상대조차 하기 싫은 사람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을 종종 맞는다. 그래도 우리는 인질 협상가보단 훨씬 낫다. 말썽 많고 믿을 수 없는 상대와의 협상에서 판을 접고 나올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