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연일 모임과 술자리가 이어진다.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함께 협력해야 하고 만나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관계망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천 잔 술도 맛있다(酒逢知己千鍾少)’는 속담이 있다.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와 함께 하는 술자리는 기분 좋게 취할 수 있고 술도 맛있게 잘 들어간다는 의미다. 반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 술을 같이 마시면 한 잔 술도 쓰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비싼 술과 안주를 먹더라도 술맛이 나지 않다.
친구를 뜻하는 단어는 고전에 많이 나온다. ‘나의 소리(삶)를 알아준다’는 뜻의 지음(知音)이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지기가 친구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이 밖에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동지(同志)’, 같은 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동성(同聲)’,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동기(同氣)’ 등 친구를 의미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친구를 두 가지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바로 ‘주식형제(酒食兄弟)’와 ‘급난지붕(急難之朋)’이다. 주식형제는 말 그대로 ‘술 마시고 밥 먹을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술 마시고 밥 먹을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들이 천 명이나 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좋을 때다. 사업도 잘되고 승승장구한다. 형 동생 하며 친구하자고 사람들이 줄을 선다. 좋을 때이니 평생 함께하자고 굳은 맹세를 한다. 때로는 의형제도 맺고 폭탄주로 재차 확인까지 들어간다.
주식형제는 힘들고 어려울 때 진면목이 나온다. 막상 급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평소 내 앞에서 잘하던 사람이 안면박대(顔面薄待)를 하거나 심지어 나를 궁지에 모는 일도 있다. 그때 실망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급난지붕은 급하고 어려울 때 나와 함께 있어 주는 친구다. 막상 어려운 일을 겪고 보면 급난지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급난지붕을 사귀려면 나이(長), 지위(貴), 관계(兄弟)를 떠나 속을 터놓고 교류하며 마음을 나눠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사귄 친구가 비로소 급난지붕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며 겪는 우환(憂患)과 환난(患難) 속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 위로하고 고통을 나눠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난초를 가까이 하면 난초 향기가 내 몸에 스며들듯이 좋은 친구와 인생을 함께하면 나도 좋은 사람으로 변한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도 어느덧 날마다 발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허나 술 좋아하고 노는 것을 즐기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날이 추워봐야 소나무, 잣나무가 추운 겨울에 시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힘들고 어려워봐야 진정한 친구도 알 수 있다. 술자리가 빈번하고 저녁시간 만남이 잦은 연말에는 누굴 만날까를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고민 없이 만나잔다고 닥치는 대로 약속을 잡아 만난다면 몸도 상하고 인생만 허비할 수도 있다. 연말연시 송년회와 신년회 일정으로 빡빡한 요즘, 오늘 저녁 만남이 주식형제를 만나는 건지, 급난지붕을 만나는 건지 한번쯤 돌이켜 봐야 할 것 같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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