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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 『인간시장』

무법적 정의를 은밀하게 욕망하다

이경림 | 282호 (2019년 10월 Issue 1)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아직 날도 다 밝지 않은 새벽, 서울역에 기차가 멎자 시골뜨기티가 풀풀 나는 두 소녀가 광장으로 나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흰 종이를 연신 들여다보고 서 있는 두 소녀에게 세련되게 차려입은 30대 여자가 다가갔다. 여자는 소녀들에게 ‘선도반’이라는 증명서를 보여주고, 이렇게 무작정 상경한 순진한 아가씨들을 깡패들이 잡아다가 창녀촌이나 술집에 팔아버리기 부지기수라며 겁을 줬다. 여자가 소속된 선도회는 우수 기업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직장 없는 아가씨들을 보호해주고 취업도 알선해주는 훌륭한 단체라면서 말이다. 두 소녀는 상냥한 여자의 뒤를 따라가서 이력서용 사진을 찍고, 이력서를 작성하고, 주민등록증도 확인시켜줬다.

그러나 사실 장밋빛 꿈에 부푼 이 두 소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건실한 취직처가 아니라 강간, 협박, 인신매매라는 끔찍한 현실이다. 선도반이라던 여자는 시골에서 막 상경해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들을 잡아다가 창녀촌이나 술집에 팔아버린다는 그 무서운 깡패들과 한 패였다. 이 무서운 ‘인간 시장’에 말려든 소녀들을 구해낼 방법이 있을까?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안티 히어로 ‘장총찬’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살지 않은 사람은 장총찬이 주인공인 소설 『인간시장』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시장』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고전이나 스테디셀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과서에 한 번쯤 등장한 이름도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1980년대의 베스트셀러이자 한국 소설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다. 이 소설은 1981년부터 1985년까지 1부 총 10권, 1989년까지 2부 총 10권이 출간되는 내내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출간 2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고, 3년 만에 한국 소설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군사정권이 대학가, 노동 현장, 군부대, 해외 근로 현장 등에서 판매금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운 기록이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1980년대에 장총찬을 몰랐다면 정말 ‘간첩’으로 몰렸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데드풀, 장총찬

1980년대 독자들은 왜 『인간시장』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인간시장』이 그리는 곳들은 앞서 소개한 서울역 인신매매 에피소드처럼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음화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곳들이다. 소설에는 점쟁이, 사이비 종교인, 소매치기, 건달, 깡패, 도박꾼, 꽃뱀 같은 밑바닥 범죄자들부터 겉으로는 점잖은 체 행세하는 ‘거물급’ 인사들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한 악인들이 총출동한다. 그런데 이들이 저지르는 악행의 스펙트럼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방대하다. 효험도 없는 굿을 해놓고 비싼 값을 뜯어가는 무당, 허위로 부동산 계약서를 꾸며 덤터기를 씌우는 사기꾼, 외국인인 체하고 남자들을 후려 돈을 뜯어내는 꽃뱀, 가짜 휘발유를 제조해 유통시키는 조직, 고등고시 패스까지 물심양면 뒷바라지한 조강지처를 두고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등등 말이다. 인신매매, 소매치기, 강간 같은 범죄는 물론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거대한 음모까지 한국 사회에서 암약하는 이 모든 악과 대결하는 자가 바로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이다.

작가는 ‘서민’과 ‘빼앗긴 자’ ‘억울하게 당한 자’의 편에 서서 오로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일념으로 악인을 응징해나가는 주인공 장총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총찬의 면면은 오히려 빌런에 가깝다. 어릴 적부터 못 된 장난은 다 하며 동네 꼬마들의 왕초 짓을 해 왔던 장총찬은 십 대 시절 가출해 일찍이 서울의 주먹 세계에 뛰어들었다. 행자승에게 사사한 무술과 표창 던지기를 주특기로 주먹 세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할배’가 됐다. 그런데 그렇다고 어둠의 세계에 완전히 몸을 담근 것은 아니다. 그는 ‘똥통 대학’에나마 이름을 올린 법학과 학생이기도 하다. 이 묘한 이중성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서로 연결돼 있다. 장총찬은 누구보다도 대우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부정부패, 비리, 학연과 지연 등으로 이미 꽉 짜인 판에는 도저히 그가 대우를 받을 만한 자리가 없다. 장총찬은 무식하고 가난한 시골 집안 출신에 서류도 안 쳐주는 삼류 대학생이고 빽도 뭣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의지할 것은 정말 맨주먹 하나뿐이다. 그가 주먹에 재능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 재능도 없었다면 그저 시정잡배로 떠돌다 사라졌을 것이다.

장총찬이 악을 처단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르고 싶어서다. 장총찬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참지 않는다. 일류 대학 배지를 단 사람을 보면 자기보다 잘난 게 거슬려서 골목으로 끌고 가 일단 패주고 본다. 누가 건방지게 말대꾸를 하면 계집애건, 아저씨건 간에 따귀부터 갈긴다. 그런데 다행(?)히도 장총찬의 마음에 정의도 불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악이 눈에 띄면 자기 마음대로 응징하는 것이다. 원래 순결하고 고고한 성정이라거나 도덕심이 강건해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총찬은 악을 때려 부순다.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주먹으로 말이다.



악인 잡는 악인, 복잡한 법이나 고귀한 도덕이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단순한 복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영웅. 장총찬은 슈퍼맨이 아니라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데드풀에 가까운 인물이다. 우리는 이제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한 영웅들, 이른바 ‘안티 히어로(anti-hero)’ 캐릭터에 익숙하다. 채널OC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이나 ‘38 사기동대(2016)’의 주인공들은 ‘흉악 범죄자’와 ‘사기꾼’이다. 존재 자체가 정의라는 개념을 훼손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이들이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사회 정의다. 시청자들은 이런 아이러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쁜 놈’인데, 나쁘지 않다. ‘나쁜 놈’인데 오히려 응원하고 싶다. 보고 있으면 통쾌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앉는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너무나도 후련한 쾌감이다.

우리는 곳곳에 악이 도사린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막상 악에 마주쳤을 때는 무력하다. 협박, 사기, 폭행, 강간, 살해 같은 무자비하고 잔인한 악에 대면했을 때,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곳은 법이나 도덕이다. 그런데 법과 도덕에 호소하면 다 될까? 경찰에 신고만 하면 앞서 봤던 인신매매 당할 위기에 처한 소녀들이 강간당하기 전에 무사히 구출될 수 있을까? 인신매매의 부도덕성을 사람들이 몰라서 인신매매가 이렇게 만연한 걸까? 이미 끔찍한 일이 벌어진 다음이라면 이 소녀들을 위해 악은 ‘어떤 식으로’ 처벌돼야 할까? 재판관이 선도반을 사칭한 여자에게 징역형을 언도해 주면 그걸로 다 된 걸까? 정의는 그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하다. 우리가 악을 대할 때 바라는 심정적 정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 원칙이다. 하지만 내 다리를 폭행해서 부러뜨린 범인을 잡았다고 판사가 그 사람의 다리를 똑같이 부러뜨려 주지는 않는다. 억울한 마음 같아서는 손가락이라도 하나 부러뜨려 줬으면 싶은데, 그러한 정의는 법의 정신에 비춰 볼 때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야만적’인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이 구현하는 정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심정적으로 미진한 구석은 언제나 남는다. 날 때린 죄는 300만 원 합의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 같은 정의의 저울은 당사자가 되면 불만족스러울 때가 많다.

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는 안티 히어로는 이처럼 야만적이고도 원초적인 정의에 대한 욕망을 구현해주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기계적이고 차가운 법의 정의가 아니라 편파적이고 뜨겁고 격렬한, 인간적인 정의를 즉각적으로 실천해준다. 1억을 훔쳤다고? 1억을 도로 훔쳐 오면 된다. 법망을 교묘하게 다 피하는 놈들이라고? 법망이 아니라 주먹의 망을 펼쳐주면 된다. 해를 입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해를 갚아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신속하고 명쾌한 정의에 비하면 절차의 적법성이나 도덕성 같은 문제는 정말 코웃음이 나올 만큼 하찮게 느껴진다. 법과 도덕에 호소하면 정의가 다 구현되는가?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법과 도덕은 너무 지지부진하게, 충분한 납득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그렇게 도달한 정의보다 그 정의를 달성하는 데 드는 고통이 더 크다. 그것도 물론 법과 도덕이 정의를 실천하는 데 성공했을 때의 얘기다. 실패할 때도 부지기수니까 말이다. 우리는 참 비극적인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안티 히어로를 찾는다. 현실에서는 즉각 실현되지 못하는 정의를 안티 히어로의 세계 안에서나마 실현해보고 싶어서 말이다. 『인간시장』은 부조리와 부정의가 만연한 1980년대 한국 사회에 철퇴를 내렸다. 독자들은 장총찬이 문자 그대로 악을 ‘쳐부수는’ 모습을 보며 열광했다. 장총찬은 현실에서는 감히 실현할 엄두도 능력도 없는 우리의 욕망을 대신 성취해 줌으로써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만일 장총찬이 고시에 덜컥 패스라도 해서 검사나 변호사가 됐다면 어땠을까?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멀쩡히 걸어 나오는 악인을 보고, 장총찬은 그 턱을 부숴주는 대신 울분에 차 항소심이나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소설에서 보고 싶은 것은 그런 장총찬이 아니다.


장총의 시대는 갔다

‘장총찬’이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작가는 전두환 정권 시절, ‘도둑놈과 도둑님’이라는 콩트집이 국가 원수 모독, 체제 비방, 군 모독죄 등에 걸리는 바람에 계엄사에 불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권총 찬 사람’에게 모진 꼴을 당했으니, 나도 한 번 ‘권총’을 차보자는 오기로 작가는 처음에 주인공 이름을 ‘권총찬’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첫 회가 나간 후 신문사가 주인공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왔다. 검열 압박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장총’을 찬 주인공이 악당을 남김없이 해치우는 서부 영화에서 영감을 얻고 주인공 이름을 ‘장총찬’으로 바꿔 검열을 통과했다고 한다. 검열을 둘러싼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인간시장』이 한국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한 밀리언-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지만 스테디셀러로는 남지 못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인간시장』은 1980년대 한국 사회가 드러내놓기를 꺼리는 부분들만 골라서 폭로했다. 작가는 인신매매와 가짜 휘발유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온갖 부조리와 부정의를 집요한 취재에 기반해 소설화했다. 대상이 교수건, 정치인이건, 종교인이건, 의사건 가리지 않고 더러운 부분만 까뒤집어대는 바람에 고초를 많이 겪었다. 자꾸 체제를 비방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 사복 기관원이 ‘당신이 언제까지 무사하겠느냐’고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기도 하고, 치부를 들킨 이들이 살해며, 가족 유괴며 협박을 해대는 통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고도 한다.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이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밀착해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동시적이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많다는 의미다. 『인간시장』이 확보했던 시대상과의 첨예한 동시성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이 소설에 그려진 세계는 물질주의와 권위주의, 출세주의에 찌든 일반 세계에 반해 인정과 의리가 살아있는 주먹 세계가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맨주먹 하나만 있으면 단번에 재벌 총수와 대면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야 소매치기와 건달에게 신선의 도를 배우고 스님한테서 특이한 무술을 사사해 이름을 날리게 됐다는 무협 소설 같은 설정도 빛을 발한다.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모든 시대의 스테디셀러로 남기는 정말 힘들다. 욕망은 보편적이나 그 형식이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시장』에 열광했던 독자들처럼,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정의를 갈구하는 욕망은 우리 시대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의 문화적 형식은 시대를 타기 마련이다. 적어도 오늘날의 악을 상대하려면 장총찬처럼 그저 야망과 패기만 가지고 표창을 쉭쉭쉭 날리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우리는 ‘권총’과 ‘장총’의 시대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군사정권하의 독자들이 장총찬의 무법적 정의에 환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그런 무법적 정의를 은밀하게 욕망한다. 법보다 가까운 ‘무언가’의 정의. 장총찬이 저 ‘무언가’의 자리에 ‘맨주먹’을 넣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넣어야 할까?

필자소개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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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림[email protected]

    서울대 국문과 박사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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