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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는 학생들에게 항상 다양한 국제화, 세계화 경험을 쌓으라고 강조한다. 모든 학생은 학교에서 주선하는 다양한 해외 방문 프로그램, 해외 인턴십 및 연구 과제 등을 통해 ‘Global Experience Requirement(GER)’를 충족해야 한다. 이 중 특히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 ‘Global Study Trip’이다. 소수의 학생들이 주도하는 이 프로그램은 이들이 10∼12일간 30∼40여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특정 국가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국가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방문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다.
필자는 올해 봄 방학 때 2011 Korea Study Trip을 주도할 기회를 얻었다. 필자는 지난 3월 2명의 동급생과 함께 31명의 학생, 마케팅 분야의 석학인 바바 시브(Baba Shiv) 교수를 안내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 일행은 3월 20∼27일 7박8일 동안 서울, 경주, 울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필자가 MBA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마지막 봄 방학에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 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동급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스탠퍼드 내에서 한국이 중국, 일본, 인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적잖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잘 알려진 대로 MBA 수업은 주로 기업의 실제 사례(Case Study)로 진행될 때가 많다. 중국, 인도 기업 관련 사례는 정말 많다. 중국에서 유학온 친구들이 “스탠퍼드까지 와서 내가 알던 기업을 배우려 한 건 아닌데…”라는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점도 부러울 따름이다. 지난 2년간 한국과 관련된 사례가 한 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부터라도 한국을 제대로 PR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Global Study Trip에서 인솔자로 활동하는 일이 리더십을 쌓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영대학원에서 지금까지 배운 리더십을 졸업 후 실전에서 사용하기 전에 예행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졸업하기 전에 내 리더십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강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7박8일 동안의 여행을 통해 졸업 전 마지막으로 동급생들과 교분을 돈독하게 다지고 싶었다. 여행, 그것도 해외 여행을 통해 쌓는 우정은 학교 캠퍼스에서 쌓는 우정과는 분명 다른 면이 많기 때문이다.
2011 Korea Study Trip
이번 Korea Study Trip의 주제는 ‘폐허에서 번영과 그 너머로(From Ruins to Prosperity and Beyond)’였다. 말 그대로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우선 한국의 오랜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신라의 고도였던 경주의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등을 방문했다. 한국 전쟁 이후의 근대사를 보기 위해 판문점에 가서 분단의 현장도 보고 왔다.
그 다음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을 방문했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국회의원들과 심도있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산업들을 알아보기 위해 온라인 게임회사, 문화산업 관련 회사들도 방문했다.
7박8일 동안 필자의 친구들이 인상 깊게 생각했던 점들이 몇 가지 있다.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들은 1975년에 완공된 국회의사당이 당시부터 이미 통일을 대비해 두 개의 회의당을 마련했다는 점에 상당한 호기심을 보였다. 국회의사당 한쪽 벽에 걸린 국회의원들의 사인이 적힌 액자도 인상적이었다. 1970∼1980년대의 액자에는 대부분의 이름이 한자로 씌어 있어 조금 건조한 느낌을 줬다. 2000년대 이후의 액자에는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다. 개성과 창의성을 살린 톡톡 튀는 사인도 보였다.
DMZ를 방문했을 때는 UN군 대표자들이 우리 일행을 직접 맞아 주었다. 군사분계선에 세워진 건물들의 명칭은 T-1, T-2, T-3다. 여기서 T는 임시(Temporary)를 상징한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는 그 누구도 이 T가 60년 가까이 사용될지 몰랐으리라. 한반도의 분단 현실이 새삼 가슴 아팠다.
T-2 건물 안에는 휴전 협의서 원본과 휴전 협의서가 서명된 책상이 있었다. 친구들은 한국전쟁 휴전 협정 당시 당사자인 한국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사분계선 너머 보이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 제3땅굴에 직접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안전에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한국 국방 수준에 신뢰를 나타냈다.
Korea Study Trip를 마치며
이번 여행을 마친 소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가 홍보의 중요성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스탠퍼드 MBA 학생들은 대부분 많은 해외 여행 및 거주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 밖 세상의 변화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30명이 넘는 이번 여행 참가자들의 소감은 필자를 상당히 맥 빠지게 만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을 흔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으로 여겼다. 한국의 발전 정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한국이 이렇게 현대적으로 발전된 나라인지 몰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다. 한국 대기업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이런 류의 발언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삼성이 한국 기업인 줄 몰랐다는 얘기도 종종 나왔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이 외국인을 덜 환영하는 나라라고 들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후에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배려심에 놀랐다는 평가를 내리긴 했지만 역시 과히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정(情)은 한국인을 설명하는 키워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이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나라로 알려졌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국가 홍보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많긴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한국의 실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둘째, 경제 성장 분야에서도 아직 한국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60년 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과거의 발전 속도를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한 과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21세기에는 단순히 싸고 질 좋은 물건을 남보다 빨리 만든다고 해서 경제 발전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개개인의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극대화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20세기 경제 성장을 이뤄냈을지는 몰라도 21세기의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젊은 창업자나 벤처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듯하다. “젊을 때 한번 해보는 일이겠지 얼마나 가겠어”라는 식의 시선이다. 기초 교육에서부터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리더들을 많이 키워낼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들이 원활하게 창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미약하나마 필자 역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필자는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 경제학을 전공했고,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의 뉴욕 지점에서 IB(Investment Banking), 홍콩 지점에서 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스탠퍼드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는 1925년 설립됐다. 미국 동부에 있는 유명 MBA 스쿨과 달리 서부에 위치해있으며, 실리콘밸리가 가까워 기술 관련 기업으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이 많다. 한 학년의 정원이 900명 내외인 하버드 MBA나 와튼 MBA와 달리 360명 내외의 비교적 적은 정원을 유지한다. 때문에 다른 학교에 비해 교수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