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practice)은 예술의 핵심 요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비즈니스에서는 이 개념이 전무하다. 많은 비즈니스 서적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무언가를 상상해 실행하고 조정하고 다시 실행하는 작업이 바로 예술이다. 하지만 경영대학원(MBA) ‘덕분에’ 비즈니스 종사자들은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말하고 또 말하고, 계획하고 또 계획한다. 그러나 현명한 기업인들은 말하고 계획하는 동안 신속히 시제품(prototype)을 만들고 이를 조정한다.”
경영 구루 톰 피터스 교수의 말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대체로 전략이나 계획보다 실행에 더 집중한다. 개략적인 계획이 서면 일단 실행해가면서 다듬어간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쪽보다 실행해가면서 계획을 보완해가는 쪽이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를 보자. 이 회사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직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보고 만질 수 있는 시제품(prototype)으로 만들어낸 데 있다. 아이디오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으로는 컴퓨터 마우스가 꼽힌다. 이 마우스는 구슬처럼 생긴 방취제 뚜껑 부분을 버터가 담긴 접시 밑바닥에 붙인 시제품에서 탄생했다.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은 실행과 시제품의 중요성을 ‘손으로 생각하기’라는 표현을 써서 강조한다. “중요한 건 속도다. 단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스케치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머릿속의 생각을 실제로 만들어 보는 게 결과적으로는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아무리 조악한 시제품이라도 상관없다. 시제품은 단지 물리적 제품뿐 아니라 서비스, 소프트웨어, 사용자 체험 등에 모두 적용된다. 팀 내부에서만 검토할 수도 있고, 경영진과 함께 검토할 수도 있으며, 시장에 직접 나가 테스트해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손으로 생각하는 행위다.”
크라이슬러의 전 CEO인 리 아이어코카(Lee Iacocca)가 컨버터블(지붕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승용차)을 개발할 때 이야기다. 아이어코카는 회사의 표준 운영 절차에 따라 수석 엔지니어에게 컨버터블 모델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표준 절차에 익숙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답했다. “좋습니다. 앞으로 9개월 안에 시제품을 만들겠습니다.”
아이어코카는 격노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군요. 당장 차로 가서 천장을 잘라내라고요!” 엔지니어는 즉시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크라이슬러의 컨버터블은 대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 초 미국 스탠퍼드대 캐슬린 아이젠하르트 교수 일행이 36개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추진된 72개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조사한 결과, 계획을 세우는 데 적은 시간을 소모하고 실전에서 많은 시간을 소모한 팀이 더 좋은 결과를 냈다. 더 이상 예측도 준비도 불가능한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다. ‘손으로 생각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때다.
곽숙철 대표는 LG전자에서 30여년간 근무하며 생활가전사업본부 연구개발팀장, 품질보증팀장, 조직문화팀장, 경영혁신팀장, 생산팀장 등을 지냈다. 현재 CnE 혁신연구소 대표로 재직하며 개인의 변화와 조직의 혁신에 관한 연구, 집필,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그레이트 피플>, <헬로 멘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