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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푸른 초원에서 펼치는 사냥, 축구 우리 속 원시성 자극하는 전쟁 같은 축제

서광원 | 157호 (2014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축구는 푸른 초원에서 이뤄지는 사냥의 원형을 그대로 경기장에서 구현한다. 팀을 이뤄 사냥감을 쫓는 사냥의 모든 과정이 축구에 모두 그대로 들어 있다. 축구는 골(목표)을 사냥하고 승리를 사냥하는 게임이다. 이 과정에서는 협업이 필요하다. 또 부족들의 전쟁을 상징적으로 치르는 대리전이며 축구의 승리는 공동체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축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구를 원시성 가득한 스포츠라고 한다. 사냥을 통해 그 어느 생명체보다 빠른 진화를 이뤄온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화생태학으로 바라본 축구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이기고 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를 구현하는 인류 전체의 놀이다. 더해서 인간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가 축구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열리면 지구는 자신을 꼭 닮은 지름 22㎝의 공 하나에 울고 웃는다. 그런데 온 지구인이 한자리에 모여, 한곳을 바라보며 이렇게 열광하는 게 축구 이외에도 또 있을까? 인류는 왜 유독 축구에 열광할까? 선수가 아닌 한 축구가 살아가는 데 크게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진화생태학적인 차원에서 축구는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축구는 푸른 잔디 위에서 승부를 펼친다. 푸른 잔디 위 승부, 사실 축구의 기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아프리카 동부, 세계 최대 초원인 세렝게티 초원을 포함한 곳에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마치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이 푸른 초원의 등장은 사실 초기 인류에게 절대 위기였다. 수백만 년 전 대륙을 덮고 있던 열대우림의 숲이 급격한 환경 변화로 초원으로 변하면서 삶의 터전이었던 숲이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숲을 따라 근근이 살아가거나, 아니면 점점 넓어지는 초원에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기로에서 선 인류는 과감하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넓고 탁 트인 초원에는 먹잇감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백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있었고, 자연사 한 동물만으로도 먹고살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인류는 이 넓은 세상에 이미 자리를 잡은 강자들, 그러니까 사자, 표범,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과 경쟁을 벌여야 했고 신선한 고기를 위해 살아 있는 초식동물을 노려야 했다. 이 녀석들 또한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말이 넓은 세상이지 초원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곳이었고 숲 속에서 해왔던 방식은 의미가 없었다. 인류는 걷기 시작한 덕분에 손을 얻었고, 고기를 섭취하면서 뇌를 키울 수 있었지만 덩치를 키울 만한 진화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살아가는 데 덩치가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덩치가 없으면 지배하며 살아갈 수 없다.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게 진화다. 인류는 덩치를 대신할 만한 훌륭한 장치를 찾아냈다. 바로 협력이다. 커진 뇌를 통해 계획을 하기 시작했고 ‘1+1=2’가 아니라 ‘1+1’ 3이 되고 5가 되는 짜임새 있는 협력을 통해 사자 같은 맹수들을 견제하면서 몇 백㎏이나 되는 덩치 큰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었다. 당연히 두 발로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인류는 달리기 시작했고 더 짜임새 있는 계획과 협력으로 생명력을 높여갔다.

 

축구는 푸른 초원에서 이뤄지는 사냥의 원형을 그대로 구현한다. 팀을 이뤄 사냥감을 쫓는 사냥의 모든 것이 축구에 들어 있다. 축구를 원시성 가득한 스포츠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냥을 통해 그 어느 생명체보다 빠른 진화를 이뤄온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안에 내재된 본성에 가장 가깝다는 얘기다.

 

축구는 골(goal·목표)을 사냥하고 승리를 사냥하는 게임이다. 어느 선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월드컵에서는빛나는스타가 아니었다. 축구는 혼자만의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빛날 수가 없다. 각자 자기 역할을 해내는 팀워크가 필수적이다. 팀워크는 숫자 싸움이라기보다 짜임새가 우선이다.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이뤄지면 1+1=5가 된다. 60∼70㎏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 1t이나 되는 버팔로를 사냥할 수 있고, 몸무게 250㎏의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사자를 이길 수 있다. 조직력은 불확실한 세상에 진출한 신참자 인류가 초원을 아우르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오늘날 우리 인류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축구는 순전히 몸과 두뇌가 어우러지는, 땀을 흘리며 뛰고, 달리는 경기다. 인류는 걸으면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달리면서 생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로 부상했다. 인류보다 먼저 초원에 자리 잡은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는 인류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달리기는 단거리용일 뿐이다. 단거리가 아니라 멀리 달리는 능력에서 인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류는 강자들이 잘하는 종목에서잘하는 2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목에서 1등을 지향해 최고가 됐다. 협력을 하면서 누구보다 멀리 추격하는 사냥꾼을 이길 수 있는 사냥감은 거의 없다. 실제로 인류는 말보다 더 오래,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미국에서 열리는 말과 인간의 달리기 레이스에서는 누가 이길지 모른다. 초반에는 말이 월등하게 앞서가지만 오래 달릴수록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의 지구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42.195㎞를 인간처럼 달릴 수 없다. 축구는 이런 인간의 진화적 노력, 다시 말해서 인간이 뛰고 달리면서 땀과 노력으로을 이뤄내는 진화의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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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광원[email protected]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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