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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알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한근태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가 간 역학 관계 중 대부분은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최근의 북한 문제도 엄밀히 들여다보면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차이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티베트의 문제도 그렇다. 티베트는 황허, 양쯔, 메콩강의 수원이 있는 중국의 급수탑이다. 엄청난 인구를 거느린 중국에 물은 소중한 자산이고, 결국 티베트 이슈는 중국에 인권 문제가 아닌 지정학적 안보 문제다. 만약 압록강과 중국 사이에 히말라야산맥이 있었다면, 우리가 호주처럼 대륙과 먼 섬나라에 있었으면 훨씬 평화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지리가 역사를 설명한다.
 

요즘 북한 때문에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북한을 더 세게 압박하라고 밀어붙인다. 그런데 중국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앞으로도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북한은 좋은 완충지대다. 그게 사라지면 자신들이 바로 미국과 접해야 하고, 그러면 위험이 더 커진다. 미국과 서유럽이 잘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서도 스페인과 그리스가 못사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큰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이 쪼잔하게 섬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아프리카와 남미가 못사는 이유는? 지리적 요인이 크다. 이번에는 그런 이슈에 대해 통찰력을 줄 책 <지리의 힘>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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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강국을 꿈꾸는 중국

먼저 중국을 생각해보자. 중국은 4000년 만에 처음으로 대륙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을 꿈꾸고 있다. 이제껏 중국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북쪽에는 고비사막이 있어 적의 접근이 쉽지 않고 적이 접근해도 미리 알 수 있다. 일종의 조기경보 방어체계라 할 수 있다. 왜 중국은 티베트 문제에 목숨을 걸까? 중국은 지정학적 공포를 느끼고 있다. 만약 티베트를 통제하지 못하면 언젠가 인도가 나설 것이고 인도가 티베트의 통제권을 얻게 되면 거침없이 중국의 심장부까지 밀고 들어갈 수 있다. 또 티베트는 중국의 급수탑이다. 여기에 황허, 양쯔, 메콩강의 수원이 있다. 인구가 미국의 다섯 배인 중국에 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티베트를 인권문제로 보지만 중국은 이를 지정학적 안보 문제로 본다. 그래서 쿤룬산맥 때문에 라싸로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는 전문가의 선입견을 이기고 2006년 기어이 기차를 개통해 하루에 네 번씩 승객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철도로 티베트의 생활수준이 높아진 건 물론 700만 명의 한족 정착민도 함께 들어왔다. 티베트 문화권에서 티베트인은 이미 소수로 전락했다.


만주, 내몽골, 신장 등에서는 이미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신장지구 역시 중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신장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까지 합해 8개국이다. 신장지역은 30, 40년대 두 번이나 독립국가를 선포한 적이 있고 2009년에는 대규모 민족분규가 발생해 200명 넘게 사망했다.


하지만 베이징의 대처 방식은 명확했다. 첫째, 반대세력은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둘째, 그 지역에 돈을 쏟아붓는다. 셋째, 꾸준하게 한족을 이동시킨다. 이곳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신장은 8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중국 심장부의 완충 역할을 한다. 다량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핵무기 실험장도 이곳에 있다. 신장지구에는 중앙정부에서 투자한 공장에서 일하려는 한족들로 넘쳐난다. 우루무치에서 136㎞ 떨어진 스허쯔시는 65만 명 인구 가운데 62만 명이 한족이다. 수도 우루무치도 한족이 다수 민족이 돼 가는 중이다. 따라서 그들의 독립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중국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광활한 땅덩어리와 긴 국경선, 그리고 짧은 바닷길 덕분에 굳이 해양 세력이 돼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막강한 대양 해군력을 구축해 해양 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땅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21세기에는 국제적인 해군력 없이는 패권국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한 중국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여러 대양과 해협에서 영유권 분쟁을 치르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해상 항로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경로를 통해 자국의 상품이 해외로 나갈 수 있고 또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자원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만약 가스와 원유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해협들과 교역을 가능케 하는 대양이 봉쇄된다면 중국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기후의 축복을 받은 미국

둘째, 미국이다. 미국은 지리적 축복으로 세계 최강국이 됐다. 미국은 한마디로 기후와 지리의 축복을 듬뿍 받은 곳이다. 대서양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지역까지 통합을 이루면서 무력으로 침범하기 어려운 지리적 위치를 확보했다. 1723년 미국은 조지아주를 마지막으로 초기 13개 식민지주가 성립됐다. 1775∼1783년 사이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애팔래치아산맥은 2414㎞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영국 정부는 애팔래치아산맥 서쪽 지역에 주민들이 정착하는 것을 반대했다. 관리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1803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1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 지역의 지배권을 샀다. 덕분에 영토가 두 배로 늘었다.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는 “투자 대비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일은 이제껏 없었다”라고 평한다. 미시시피강은 2897㎞에 달한다. 미니애폴리스 근처에서 발원해 멕시코만에서 끝난다. 해상 운송은 육로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천연 수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1819년 스페인은 플로리다뿐 아니라 덤으로 꽤 넓은 토지까지 미국에 넘긴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두 나라는 마주 보는 형국이 된다. 1821년에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 북부 끝까지 지배하고 있었고 텍사스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 인구는 620만 명, 미국은 960만 명이었다. 두 나라의 세력은 비등비등했다. 1835년부터 벌어진 텍사스혁명으로 백인 정착민이 멕시코인을 몰아냈지만 대접전이었다. 미국의 자본과 사상의 수혜를 받은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1845년 미국에 귀속됐다. 1846년부터 미국과 힘을 합쳐 스페인과 싸웠다. 결국 멕시코는 리오그란데강 남쪽으로 쫓겨간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의 일부가 포함된 미국의 국경이 확립된다. 1867년에는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는 720만 달러, 에이커당 2센트에 알래스카를 사들인다. 처음엔 쓸데없는 냉장고를 샀다고 놀림을 받았지만 1896년 금광이 발견되고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자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1869년에는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다. 1898년 스페인의 힘이 약해지자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는다. 모두 좋은 땅이었지만 특히 괌이 유용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비좁은 말라카 해협에 있다. 이 해협을 통해 매일 1200만 배럴의 원유가 지나간다. 외국 원유와 가스에 대한 중국의 갈증은 점점 커지지만 미국의 니즈는 줄어들고 있다. 셀 가스 덕분에 2020년부터는 에너지 수출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편 걸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다. 걸프 지역은 새로운 파트너로 중국을 찾을 것이다. 미국 5함대는 바레인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쇠락을 점쳤지만 이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이 나라는 에너지 자급자족마저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나토국가들의 방위비를 합친 것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인구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고령화되지 않았다. 세계 인구의 25%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 세계 최고의 대학 20개 중 17개가 미국에 있다. 비스마르크는 1세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신은 바보들과 주정뱅이, 그리고 미국에 특별한 섭리를 베푸신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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